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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하는 노래

by 별사탕
바람이 전하는 말.jpg



장르 음악 다큐멘터리, 전기

감독 양희

각본양희, 최수진

촬영 허욱

등장인물 김희갑 양인자 조용필 양희은 장사익 혜은이 김국환 임진모 김문정 지명길 박성서 장유정 윤항기 강헌 김광석 김홍탁 임희숙 추가열 최진희 임주리 임인섭 남윤서 김정해 김종진 김성헌 김수나 윤호진

제작사 욱희씨네

배급사 판씨네마

개봉일 2025년 11월 5일

상영 시간 101분

상영 등급 전체 관람가



10년에 걸친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지금 뇌경색을 앓고 있는 36년생 김희갑의 모습은 건재하지 못하다. 예능, 재능, 기능과 같은 분야를 우리는 타고난 끼에 무게 중심을 두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천부적 재능설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타고난 것이 천재적 소양으로 가지고 있으면 재주를 연마하는 시간을 단축시켜 빨리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평양출신인 그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피난 왔을 때, 삼촌을 찾아갔다. 그의 삼촌은 한국건축의 거목 김중업이다. 대구에 정착해 허드렛일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이런 집안 내력을 보면, 타고나는 재능과 에너지는 분명 유의미하다.

지금도 하루에 4시간 이상씩 기타 연습을 한다는 그는 기량적으로 실력이 더 나아지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하기 위해 연습을 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송창식의 기타 연습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타고난 재능에 더하여 연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대중들과 동료들의 인정이겠다. 그 분야의 대가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결국 연습이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우아하게 물 위에 떠있는 백조가 알고 보면 물 밑에서는 끊임없이 자맥질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연습의 결과는 사람이 찾아오게 만든다.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기타를 잘 치는 학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시 미 8군 소속 악단장이 집을 수소문해서 찾아왔으니까. 그 일이 김희갑이 미 8군 무대 서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섬세하고 조용한 성격의 김희갑은 무대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 같다. 이봉조 같은 경우는 색소폰 연주로 TV앞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김희갑 악단을 만들어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는 일을 충실한 업으로 삼았던 듯하다. 김국환이 타타타로 뜨자 김희갑악단으로부터 독립하여 나간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증언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본 짧은 선택이었다.

야, 곰례야의 가수 김주리는 이은하에게 줄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중간에서 인터셉트한 경우다. 히트 칠 거란 예언에도 불구하고 곡이 빛을 보지 못하자 임주리는 미국으로 살러 가버렸고, 일주일 후 드라마에서 김혜자가 불러 삽시간에 인구에 회자된 바가 되어 급히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가수들과의 인연들은, 크레디트에 올라가 있는 가수들의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다. 미처 다 편집하지 못할 만큼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중에 자니리의 이름도 나오는 것을 보면, 그는 또 어떤 인연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각자의 삶을 기록해야 할 때, 누구의 자료에 선뜻 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임희숙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나 예정에 없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 진정 난 몰랐네.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까다롭다는 조용필은 또 어떤가. 출연자의 무게가 압권인 작품이 되었다. 김희갑의 가요사적 존재감을 '진정 난 몰랐'다.

아쉬운 접이 있다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야 할 부분의 자료가 약간의 구술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전쟁 후 미 8군 무대에서의 김희갑의 활약과 노래, 연주 이런 것들이 어우러졌더라면 더욱 입체감 넘치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양인자와 재혼 전의 부인,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가수 리나박에 얽힌 이야기들을 정리해 봤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양인자의 대부분의 가사는 사랑을 느끼는 여자의 마음을 통속적으로 표현한 데 그 특징이 있다. 때로 서정적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사춘기 소녀 같은 미성숙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써낸 것이 양인자 가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가사는 전부 미성숙한 상태의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어떤 것으로도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를 드러내 버린 가사.

사실 김희갑의 작곡은 고상하고 품위가 있는 쪽이 많다. 클래식한 쪽이 강하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곡은 바뀐다고 본다면, 리나박 시절의 곡과 양인자시절의 곡이 다르다는 것, 그것을 스타일로 부를 수 있다면, 출연자 중 유일하게 조용필이 김희갑의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다는 접이 흥미롭다. 그래서 김희갑의 스타일에 대한 분석(가사가 아니라)도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그런 점이 보강되었더라면 보다 전문성을 띤 다큐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상아의 노래, 눈동자, 향수, 하얀 목련, 그 겨울의 찻집, 타타타, 킬리만자로의 표범, 뮤지컬 명성황후의 레퍼토리에까지 이르는 여정을 스타일로 정리해 보는 것도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이 평생 상아온 행적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김희갑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에 우리를 가 닿게 한다.


그래서, 결국 이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가?


가사는 양인자가 썼고, 곡은 김희갑이 썼다. 그럼 노래는? 조용필이 불렀다.


이 노래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르크스적 관점으로 보면, 이들 모두는 저마다의 재능을 들여 노동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글쓰기, 작곡, 노래 모두 생산을 위한 노동이다. 누구를 위해 생산한 걸까? 인민 대중이다. 그렇다, 예술은 인민대중에게 복무하기 위해 노동하고 생산한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대중예술은 더 그렇다. 가수는 대중을 대신해서 노래 부른다. 대중들이 부르는 노래를 작사가와 작곡가가 만들어준다. 그것이 프로파간다가 되었건 고상한 사상의 고취가 되었건 그 종착점에 대중이 있는 것이다. 대중들이 모두 함께 노래부르는 것,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 거기에 예술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노래는 노래하는 사람의 것이다.


영화도 그렇다! 제작자 감독 배우가 만든 것은 관객에게로 돌아간다. 만든 사람과 완성하는 사람이 다르다. 부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완성을 위해 존재한다. 이 다큐를 완성하기 위해서, 관객이 노래하도록 만들어야 할 사명이 감독과 제작자에게 있다.

어서 빨리 서른 다섯 곡이 사용되었다는 싱어롱 편집본이 극장에 나왔으면 하는 축원을 미리 발원해 본다. 그 영화의 제목은 '바람이 전하는 노래'다.


바람이 전하는 말2.jpg

양인자의 '그 겨울의 찻집'을 함께 읽으면 김희갑의 노래들이 더 생생해진다. 음원들을 큐알로 제작해 노래를 바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부담없이 짧고 명쾌한 이야기들로 써내려간, 양인자의 글이 가진 정갈한 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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