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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08. 2024

회귀, 저 반짝이는 연어처럼

  힘겹고 고통스런 일을 치러낸 것 같았다. 그건 그녀가 제안한 모텔이나 내가 제안한 호텔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통은 길었고, 지리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달리는 기분, 출구 없는 어둠에 갇힌 시간이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춘 채 처가쪽 식구들을 만나서 생각없는 사람처럼 떠들어 대고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혜가 가는 날이었다. 붙잡고 안고 감싸며 친정식구들이 이별의 정을 나누었고, 눈물을 흩뿌리는 정혜를 태우고 공항으로 갔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공항 2층 한식당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시키고, 세관 검색대로 들어가는 출국장 통로의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느낌과 감정도 없이 그저 자동인형처럼 걸어다니며, 그들은 웃고, 떠들고, 어깨를 잡고 흔들고, 손을 마주 잡았다.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만이 깨어있는 듯 했다. 그리고, 골똘한 생각에 잠긴 고개숙인 아내가 옆에 앉아 있었다.


  "커피 마실래?"

  "소변이 자주 마려워, 오래 갈 땐 물 종류를 안 마셔."


  나이가 들어간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니였다. 이제 막 47세였다.


 " 아직 50도 안됐는데..."

  "갑자기 나이가 든 거 같아."

  "살 날 보다 산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됐지."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


  아내는 훌쩍이며 울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아내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 보았다.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감정에 공감한다기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말라는 제스쳐에 가깝다. 한편으론 그래도 내가 아직은 정혜의 남편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으로 정혜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다시 정혜는 품에 들어와 흐느꼈다. 어떤 설움이 이렇게 회한에 젖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여자의 눈물이었다. 공감할 수 없는 슬픔, 아마 그 슬픔은 자신의 삶이 망가진 데서 오는 슬픔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눈물 없이도 이미 나는 그런 슬픔에 잠겨 있었다. 통화내용을 엿들었던 그 새벽의 순간, 옆자리에서 들렸던 스피커폰의 목소리에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훨씬 전부터,  이미 나는 슬펐다.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슬펐던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안고 있는 이 모든 시스템, 상황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혜처럼, 나는 울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 오히려 마음은 평온하다, 아무 것도 들추어 낸 것은 없었고, 정혜의 남자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확인 되었을 뿐이었다. 나의 사정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정혜에게 그 미지의 남자가 있다면, 내겐 혜연이 있었다.


  "난, 내 인생이 갑자기 너무 허무한 거야."


  그녀가 딸 둘을 모두 서울대학에 보내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바닥을 내려다 보며 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때, 그 남자를 만났어."


  혜연이 나를 만나기 전, 2년을 만났던 남자였다. 딸 애들이 다녔던 대치동 재수반 논술담당 선생이었다. 큰 애가 논술에 성공하자, 작은 애도 그 선생에게 맡겼고, 결국 작은 애까지 모두 서울대학에 붙여 준 사람이었다. 둘째가 합격하기까지 큰애가 1년 작은 애가 1년, 꼬박 2년간 맺었던 내연의 관계였다.

  혜연은 학원에 가서 살다 시피했고,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도 태우고 다녔다. 집과는 반대방향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뭔들 못하겠냐는 심정이었다. 혜연은 선생과의 외도를 정확히 횟수를 기억했다. 37회, 그와의 동선을 그려가며 하나씩 하나씩 머리에 입력했고, 이제 그건 스토리가 되어 혜연의 뇌속에 저장되어 언제든 꺼내서  대화와 표정과 몸짓까지 하나하나 음미하며 추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원장은 그녀를 포함해서  학부모가 대기할 수 있도록 작은 방을 하나 비워줬다. 탕비실이었다. 커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눌 수 있어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엄마들과 입시 정보를 나누며 요긴하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통의 관심사, 그건 서로 다른 종류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흔한 일상 중에 선생들에 대한 품평도 심했다. 누가 성격이 어떻고, 누가 세심하게 가르치지 못한다, 하다 못해 화장실 갔다 와서 손을 닦지 않는다는 말까지 할 수 있는 말은 죄다 은밀하게 주고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논술선생에 대한 뒷담화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칭찬이 많았다. 아마도 엄마들의 민원을 세심하게 다 들어주었고, 그때 그때 방향을 잡아 아이들이 적용했고, 엄마들 역시 아이들의 말을 통해 그런 처사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던 거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소통이 잘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둘째가 합격하고 나서, 내가 축하받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좀 소홀했어. 물론 감사인사는 이미 다 끝낸 다음이었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내가 그이 집으로 찾아 갔지. 성남쪽 빌라에서 혼자 살았거든, 눈이라도 내리면 차로는 절대 못 올라가는 높은 지대에 살았단 말이야."


  그날은 함박눈이 내린 날이었다. 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에 차를 대고 살살 걸어 올라가리란 예상을 하고 기다시피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혜연의 시야에 건너편 차에서 내리는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운전석에서 내리고, 뒤따라 남자가 조수석에서 내리는 모습이었다. 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바닥을 들어 내리는 눈을 잡는 시늉을 하면서, 뭐에 홀린 사람들처럼 한발 한발 눈을 밟으며 혜연의 차 쪽으로 걸어 나왔다.

  여자는 정호엄마였고, 남자는 선생이었다. 놀란 가슴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혜연은 숨을 죽인 채로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선생들의 품평을 할 때 잠자코 있으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듣기만 했던 여자였다.


  "글쎄 이것들이 내 차 앞을 지나 여관엘 들어가는 거야. 난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는 것처럼 놀랐잖아. 2년전에 나하고 드렁갔던 그 여관이야. 그 때도 아마 눈이 왔을거야."


  저것들은 저 아래 시장 골목에서 소주도 한잔 걸치고 음주로 올라온 게 틀림없을 거라고 혜연은 말했다. 그녀가 그랬으니 정호엄마도 그럴 거라고.

  

 "여관 입구로 드러가는 정호엄마 머리채를 잡아서 바닥에 패데기를 쳤잖아."


  여관 앞의 공터에 난데 없이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놓고 벌어진 활극이었다. 결국 선생이 뜯어 말리면서 두 사람은 떨어졌지만, 술을 마신 정호 엄마가 숨을 가쁘게 헐떡이며 주저앉아 버리는 것으로 싸움은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

 

  "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 알아?"


  그렇게 고함을 고래고래 쳤다고 했다. 눈밭에 침을 한 덩이 퉥 뱉어 주고, 혜연은 차를 몰고 골목을 돌아 나와 버렸고, 그길로 선생과는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선생이 전화를 해서 그때일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내 것도 아니잖아. 주인없는 물건 아무나 막 돌려 쓰는거지 뭐."


  혜연은 득도한 사람처럼 허한 웃음 소리를 내며 손뼉을 마주쳤다. 손바닥에서 스님이 참선할 때 죽비로 어깨를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42키로까지 내려갔어, 다들 그러다 죽는다고 하더라구."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혜연은 우울증을 앓았다. 어찌 보면 식음을 전폐하고 방구석에 놓여진 물건처럼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서 지냈다고 했다. 그 상태에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치유라는 강의를 맡아서 일년을 강의 하던 나를 만났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손에 잡혀 1년 만에 세상밖으로 끌려 나온 거였다. 그러면서 밥도 먹기 시작했고, 뭣에 홀린듯 그녀는 나를 따라나섰고, 우리 둘은 산천을 구경하듯 전국을 떠돌았다.

  순천이었을 것이다. 운주사의 와불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경내로 들어섰을 때 어디가 경내인지 어디가 사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절의 풍광과 내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감흥이 몰려왔다. 키낮은 동산들이 엄마품같이 편안하게 아기를 감싸듯 절이 품고 있었다. 거기에 눈꼬리가 축 처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부처라니! 극락정토나, 미륵의 세상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혜연과 나는 근처 여인숙에 들었고, 주인이 집을 비워 준 안방에서 혜연은 하염없이 울었다. 온돌 방 바닥에 몸을 붙이고 엎드린 채 꺼이꺼이 마음 놓고 울어버렸다.  

  그런 혜연이 내 옆을 지키며 지난 2년을 함께 했다. 미국에 있는 정혜의 남자도 그런 쪽일까? 정혜가 한 말을 곰곰 되씹어보면, 고맙고 감사하긴 하지만 결혼 상대로는 아니라고 말한 것은 어떤 거짓도 들어 있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으로 고맙게 다가온 사람과 몸을 섞으며 깊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면서, 이왕 나와의 관계도 온전치 못한 마당에, 결혼 상대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 이유는 뭘까?

  나는 되짚어 생각해봤다. 혜연이 내게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서, 그녀를 결혼 상대로 보지않는 것이나, 정혜가 그 남자를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나 같다. 그럼, 나와 정혜의 관계가 틀어지고 나면? 그래도 온전하게 혜연과 나는 몸의 관계로만 남을 수 있을까? 과연 마음 속에서 한번 굳어져서, 우린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그 생각을 타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표명한다고 해서, 말처럼 그 관계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까 하는 의문이 남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관계는 변한다. 고대그리스때부터 만물은 변한다고 정의를 내린 바있었고, 변증적인 발전단계에서도 그렇고. 주역 역시 음양의 끝없는 변화와 조화로 우주가 굴러가고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말인즉슨, 고정불변인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정혜의 말도 상황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그 기능과 역할들이 자신이 고수하는 생각과 뜻에 관계없이 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시점, 그 말을 했을 바로 그 때, 정혜의 생각이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혜가 내 손을 잡고, 플어진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놓고 출국장 레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정혜가 들어갔고, 다시 문이 닫히자 정혜가 사라졌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며 다시 문이 열리자 정혜가 저만치 한걸음 더 멀어진 뒷모습이 보였고, 다시 문이 닫혔다가, 또 문이 열리면서 더 멀어진 정혜의 뒷모습이 바라보였다.

  검색대를 향해 걸어가던 정혜의 뒷모습은 아주 섬뜩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마치, '무서운 영화(Scary movie)'에서 두피라는 경찰 보조역할을 했던 가짜 장애인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극중에서 그는 장애인이자 말도 더듬고, 몸도 뒤틀린 지체 부자유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등장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두피는 비틀린 몸을 바르게 하고 가짜로 붙인 수염도 떼버리고, 앞으로 발을 차나가며 멀쩡한 미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반전의 장면을 보여준다. 감독은 연쇄살인범 악한이 승리하는 '이상한' 영화에 충격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마무리를 보여주고, 관객들은 지질한 장애인에서 뛰어난 외모의 미남으로 변신하는 주인공 두피의 연기에 탄성을 질렀다.

  정혜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모습은 두피가 꺾어서 절던 발을 바르게 하고, 가짜 경찰복을 벗어던지고, 코밑에 붙였던 수염을 떼버리는 행위와 완전히 일치했다. 슬픔에 숙였던 고개가 점점 들려 올라갔고, 힘없이 풀려있던 발걸음이 격식있는 병정의 발걸음으로 바뀌었다. 뒤로 묶어 올린 머리채는 개선장군의 투구처럼 의기 양양한 상징처럼 그녀의 뒷머리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그렇게 당당한 뒷모습의 정혜는 출국심사대를 빠져 나가는 동안, 내가 서서 지켜보는 뒤쪽을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정혜는 그녀가 되어 또박또박 가야할 곳으로 가버리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가 돌아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정혜는 그 남자에게, 나는 다시 혜연에게로 돌아가야만 했다. 서로가 간직한 15년간의 슾픈 역사였지만, 각자의 선택이었다. 비록 그 선택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상 어떤 선택도 감정은 남는다. 잘한 것이 있으면 못한 일이 있듯이, 빛이 밝을 수록 어둠이 더 짙어질텐데, 지금은 어둠이 빛을 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돌부리에 부딪혀 제 살에 상처를 내고, 물살을 가르는 긴 여정에 영양분이 모두 소진되어 볼품없는 몰골로 물위로 떠오를지라도, 일단 한번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햇살 아래 찬란하게 그 비늘을 빛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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