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순수한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나무는 우리에게 산소와 종이를 제공하는 삶의 필수적인 존재였다. 살림을 꾸리면서 곁에 두고 싶은 가구와 도구의 재료였고, 아이들에게 읽어준 동화에서는 줄기와 가지, 밑동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좀 답답한 이였다. 실용적인 인간 중심의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던 시선은 몸을 다치고 팬데믹으로 이어진 매일의 산책에서 차차 변화되었다. 나무는 매일 만나는 이웃에서 어느새 마음속의 말을 건네는 친구가 되었다. 여전히 조용했지만 하루하루 변하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때때로 감탄하거나 위로받았고, 그들의 지혜를 하나둘 배울 수 있었다.
여태 살펴본 것처럼 화가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시선과 초점에 따라 나무를 바라보고 표현했다. 그들을 줄지어 배열하면 맨 마지막 화가는 '사막의 수행자'로도 불리는 아그네스 마틴이 될 것 같다. 나무와 관련된 그림을 몇 점 남기지 않았지만, 나무에 대한 그녀 특유의 비전은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로 표현되었다. 마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커다란 정사각형 캔버스에 아주 옅은 파스텔톤의 줄무늬 그림들이다. 직접 마주해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밋밋한 그림은 서서히 광채를 내뿜으며 평온과 기쁨, 아름다움 등 존재의 긍정적인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마틴의 경력에 가장 중요한 분깃점은 그 이전에 격자의 언어를 발견하며 완전한 추상에 이른 순간이었다.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선은 다름 아닌 나무를 떠올리면서 탄생한 것이다.
정사각형의 하얀 캔버스에서 흐릿한 회색의 줄무늬가 반복된다. 이를 구분하는 가로선과 촘촘한 세로선이 전면에서 교차한다. 첫인상은 그림이라기보다 모눈종이나 줄무늬 노트에 가까워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줄무늬도 물감이 아닌 더 촘촘한 선으로 메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연필로 그은 선은 때때로 흔들리고 굵어지거나 흐려지며 화가의 손길을 전한다. 뒤로 점점 물러나면 선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줄무늬도 흐려지다 텅 빈 캔버스만 남는다.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듯한 그림은 커다란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수백 개의 선들과 불완전한 흔적들을 계속 유영하게 만든다.
나무의 선들은 직선을 찾아보기 어렵건만 마틴은 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격자선으로 표현한 것일까. 그녀처럼 자연과 나무를 연구했고 결국 격자와 삼원색의 언어로 세상을 그려낸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이 떠오를 것이다. 인상주의에서부터 상징주의,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와 표현주의적인 붓질까지 다양한 양식을 실험했던 몬드리안은 그림에서 곡선과 사선을 점차 제거하고 결국 수평선과 수직선만 남겼다. 마틴도 몬드리안처럼 사물의 근원에 도달할 때까지 나무의 형상을 정제하며 요소들 간의 관계를 조형화한 것일까. 게다가 마틴의 나무는 계절 따라 변하는 무한한 색들이 증발된 무채색이라 더 의아했다.
캐나다 서부 평원 서스캐처원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은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어머니가 네 아이의 생계를 꾸려나간 각박한 환경에서 자랐다. 미국식의 자유와 해방에 매료된 마틴은 1932년 워싱턴주로 이주해 교사가 되려고 했다. 1940년대 초 뉴욕에서 사범 대학을 다니면서 그녀는 미술가의 꿈을 품게 된다. 조지아 오키프처럼 서부 사막을 사랑한 마틴은 뉴멕시코에서 그림을 배우며 가르치는 일을 병행했다. 점차 추상화된 그림은 호안 미로(1893–1983)나 아쉴 고르키(1904~48)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와 그녀만의 은은한 색조가 돋보였다. 유명한 갤러리스트 베티 파슨스의 눈에 띈 마틴은 제안에 따라 1957년 뉴욕으로 돌아간다.
마틴은 맨해튼 남부 코엔티스 슬립에 정착해 엘스워스 켈리와 로버트 인디애나 등 이웃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전후 경제 호황과 함께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된 뉴욕에서는 추상표현주의에 반하는 미니멀리즘과 팝아트가 부상하고 있었다. 마틴은 파슨스가 대표한 마크 로스코(1903~70)와 바넷 뉴먼(1905~70) 등 재현을 넘어 존재의 상태, 감정과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추상' 화가들에게 동감했다. 검은 색조의 간결한 추상화로 미묘한 뉘앙스를 드러낸 애드 라인하르트(1913~67)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 때때로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겪었던 마틴은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다가가는 선불교와 동양철학에도 심취했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마틴의 작품은 점차 기하학적 형태와 맑은 미색으로 표현된 추상으로 나아갔다.
1960년경부터 마틴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하는 '격자(grid)'의 언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산과 숲, 강과 바다, 들판과 돌, 꽃 등을 다루면서 격자의 형태와 색, 매체와 구성을 변주해 나갔다. (색)연필과 잉크로 그린 드로잉은 <섬들>에서처럼 채색된 캔버스에 포개지기도 했다. 편안한 연갈색으로 채색된 화면에 연필로 그은 조밀한 격자, 그 위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하얀 점선의 배열은 정사각형을 이루었다. 작은 섬들이 모여 이룬 큰 섬은 수많은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 같다. 그곳은 획일화된 사회일까, 아니면 개성과 질서과 공존하는 곳일까. 또한 우리 안에 수많은 타인과 인연이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격자 드로잉과 함께 등장하는 테두리 선이나 점선은 직조나 바느질을 연상시킨다. 마틴은 부인했지만 한동안 연인이었던 섬유 예술가 레노어 토니(Lenore Tawney, 1907–2007)의 영향도 지적된다.
이 시기에 캔버스는 손이 닿을 만큼의 6피트(약 1.8m) 정사각형으로 고정되었고, 단색 바탕에 격자 드로잉이 결합되며 점차 점과 점선, 테두리도 사라진다. 마틴에게 대각선은 비어있음이, 원은 확장된 느낌을 전했지만, 수평선과 수직선은 어떤 것과 연관되지 않고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격자가 그녀만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마틴은 20여 년의 작업 끝에 '사물도, 공간도, 그 어떤 형태도 없는' 진정한 추상에 도달했다. 그런데 격자무늬는 좋아하는 나무를 생각하다가 처음 떠올랐고, 마틴은 그것이 나무의 순수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나무의 외형이 아닌 나무(자연)에서 화가가 느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왜 나무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이 격자가 마음속에 이미지로 떠올랐습니다. 작품을 완성한 후, 그것이 나무의 순수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후 무제 연작에서, 내 그림 대부분은 순수함에 관한 것입니다."
뉴욕의 활기와 유명세, 정신적 불안이 교차하던 시기에 마틴은 이례적으로 과감한 색채와 금박도 사용했다. 그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작품 <밤바다>는 청록색 색면에 금빛 격자선이 보일 듯 말 듯하다. 그림에 다가가면 마치 광대한 밤바다에서 달빛이 일렁이는 듯하다. 그런 바다 한가운데서 느끼는 고요와 황홀함, 떨림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청금석 물감을 바르고 테두리와 격자선을 금박으로 입힌 후에, 각각의 직사각형에 청록색 물감과 크레용을 쌓아 올려 색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금박으로 선을 붙이는 작업은 인내심을 요하는 수행에 가까웠고, 반복된 노동과 형상은 화가가 갈망했던 평온을 안겨주었다.
마틴의 작업은 항상 흔들의자에 앉아 영감을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비우고 의식에 집중하면 몇 주 혹은 몇 개월 후에 초월적인 영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우표 크기의 작은 비전으로 나타났고, 이를 6피트 캔버스에 실현하기 위해 마틴은 복잡한 계산을 마친 후에 붓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통해 화가는 관객을 명상적인 공간, 그 감정의 공간으로 이끌고자 했다. 그래서 '마치 텅 빈 해변을 가로질러 바다를 바라보듯… 시야 속으로 들어가'기를 제안했다. 풍경 앞에 선 듯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 의미를 묻기보다 음악처럼 리듬과 음색, 감정적 분위기를 느끼면 된다는 것이다.
"들판의 돌에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은 마치 커튼과 같아요.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죠. 저는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반응, 즉 단순한 기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는 대표작 <나무>처럼 하얀 바탕에 섬세한 연필 드로잉만으로 구성되었다. 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잎사귀는 벽돌을 세워 쌓아 올린 듯한 격자무늬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벽처럼 견고하기보다 안이 텅 빈 거미줄처럼 가볍고 발랄하다. 눈부신 햇살을 뿜은 잎사귀들처럼 맑고 투명하다. 바람에 너울거리거나 햇빛에 따라 각도를 조절하는 나뭇잎들의 리듬감도 느껴진다.
이 작품을 전시장에서 마주했다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솔 르윗(1928~2007)의 입방체나 도널드 저드(1928~94)의 금속 상자들처럼 단순한 형태가 반복되는 미니멀리즘이라 여겼을 것이다. 일견 따분하고 차갑게 보이지만 다가가 균일하지 않은 선들을 발견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니멀리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적인 손길은 시간을 늦추고 자세히 바라보며 미세한 차이에 집중하게 만든다. 아무리 촘촘하게 짜였어도 채색한 캔버스에 선을 그으면 울퉁불퉁하게 보이고 표면의 질감이 미세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화가의 실수나 우연이 개입하면 더 많은 흔들림과 결함들이 생긴다. 생동감을 더하는 화가의 손길과 엄격한 격자무늬의 조화는 따듯한 속삭임으로 말을 건다. 미세한 목소리가 때론 우렁찬 목소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마틴의 그림을 통해 깨달았다.
선과 함께 마틴은 색채로 감정을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하얀색은 마틴이 나무에서 느낀 '지식과 행동에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순수한 마음 상태'를 전한다. 갓난아기에게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함과 무해함, 주변을 밝히는 반짝 거림 같은. 나무는 싸우거나 계산하지 않고, 씨앗의 설계도와 주변 환경에 따라 창조를 이어갈 뿐이다. 수많은 존재들을 깃들게 하고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이런 존재에게 거룩함을 또한 상징하는 흰색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겠다. 그렇게 텅 빈 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만든다. 행복과 사랑, 자유와 평온 등 긍정적인 마음을 주로 다루었던 마틴의 그림들은 그래서 존재를 밝게 만드는 만트라에 가깝다.
"이 그림들은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것입니다."
마틴은 재개발로 작업실을 잃은 데다 절친인 라인하르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신경쇠약이 악화되자 1967년 55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뉴욕을 떠났다. 픽업트럭과 트레일러를 몰고 홀로 캐나다와 미국 서부 사막을 일 년 넘게 여행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뉴멕시코 외딴 지역에 정착했다. 마틴은 메사 위에 어도비 양식의 흙벽돌집을 짓고 은둔한 채 고독 속에서 글쓰기와 명상에 몰두했다. 자연에서 방랑하는 소년을 통해 아름다움과 순수함이라는 주제를 탐구한 영화 <가브리엘>(1976)을 제작하거나 정원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7년 만인 1974년 65세에 마틴은 그림 작업에 복귀했는데, 정사각형 캔버스에는 이제 격자 대신 수평 또는 수직의 줄무늬가 등장한다. 옅은 하늘색과 복숭아색, 연노랑은 뉴멕시고 사막의 따듯한 색조나 아련한 어린 시절에 맛본 솜사탕을 떠오르게 한다. 줄무늬의 간격과 색채를 변주하면서 마틴은 차차 수평 줄무늬에 집중했다. 말년까지 ’세상을 등지고‘ 작업했던 줄무늬 그림들은 그녀가 사랑한 수영과 바다, 고향과 뉴멕시코의 대평원의 경험과도 연관된다. 후반기 그림들은 자연 세계의 사물이나 경험을 묘사하는 대신 대체로 ‘무제'라는 제목으로 미묘하게 다른 감정들을 보는 이가 더 자유롭게 느끼도록 했다. 마틴이 90대까지 그려낸 밝은 감정들은 그녀가 아름다운 생에 감사하며 후대에 남긴 선물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행복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 그림으로 그린다. 아름다움은 완벽에 가깝고 행복으로 이어진다. 풀밭의 바람, 빛나는 파도, 푸른 하늘, 어두운 밤은 내게 행복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행복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
몬드리안의 나무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imlostinart/146
이미지 출처: 각 소장처 미술관
<섬들> https://www.pacegallery.com/artists/agnes-martin/
<감사> https://www.arthistoryproject.com/artists/agnes-martin/grati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