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여름가을을 품은 겨울
12월에 접어들면 세상은 점점 땅의 색을 입는다. 거리와 숲을 수놓았던 초록과 단풍은 대부분 그 색을 잃고 말라간다. 시든 잎들은 추위와 바람에 하나둘 땅으로 돌아가지만, 일부는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겨울을 보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이 시기 나무의 이야기가 들리고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뭇잎 옷을 벗은 맨몸으로 추위와 역경을 견디는 모습에 끌렸던 것일까. 생기와 물기를 잃어가는 엄마의 얼굴, 점차 작아지고 가느다래지는 몸처럼 낯설지 않았기에. 그런 황량한 겨울 풍경과 나무의 매력을 섬세하게 그려낸 화가가 있다.
부드러운 황금빛 언덕이 펼쳐진 화면을 길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가로지른다. 언덕에 빼곡한 풀들이 눈부신 햇살을 품고 있어 긴 가지는 더욱 돋보인다. 제멋대로 뻗은 가지와 겨우 매달려 있는 시든 잎들은 바짝 말라 있고, 언덕의 풀잎 하나하나까지 바스락거리는 질감이 느껴진다. 하나도 같지 않은 나뭇잎의 극적인 포즈와 색감, 거기에는 자연만이 조각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과 무한한 개성이 깃들어 있다. 햇살의 온기가 언덕을 감싸고 있지만 전경에는 녹지 않은 흰 눈이 남아 있다. 아무도 없는 갈색조의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가로가 성인의 키만큼 큰 캔버스의 주인공은 봄여름가을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겨울날의 쓸쓸한 나무다.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하던 20세기 중반에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 1917~2009)는 지역색이 돋보이는 사실주의를 이끌었던 변방의 화가였다. 펜실베이니아주 채즈포드에서 유명한 삽화가이자 화가였던 뉴웰 컨버스 와이어스(1882~1945)의 다섯째 막내로 태어나, 몸이 약한 소년은 홈스쿨링을 하며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아버지는 유명한『월든』(1854)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비롯한 자연주의자들을 흠모했고, 자연과 교감하고 내면과 접속하며 자유롭고 단순한 삶,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방식을 아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와이어스는 자연의 학생이 되어 예리한 관찰력을 키웠다.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을 세밀하게 연구했던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에게 이끌렸다.
고향 채즈포드와 가족의 여름 별장인 메인주의 해변 마을 쿠싱은 와이어스의 세계였고, 두 곳의 풍경과 사람들은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초기에 와이어스는 미국의 풍경화가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36~1910)의 영향을 받아 빛과 움직임의 순간성을 포착한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스무 살 화가는 첫 개인전(1937)에서부터 주목을 받으며 작품이 모두 팔려나갔다.
1940년대 와이어스의 시선은 대상에 가까워지고 언어는 정교해진다. 수채와 구아슈, 흑연과 잉크로 그린 <오크 나무>는 화가의 시선처럼 나무를 올려다보며 바로 앞에서 몸통을 마주하게 한다. 파릇파릇한 잎사귀는 마음을 청량하게 하지만 결국 눈길이 계속 머무는 곳은 오랜 세월 자라고 풍파에 거칠어진 묵직한 몸통이다. 노인의 피부 같은 주름과 옹이, 벗겨진 부분과 껍질에 자란 붉은 털 같은 식물까지 만져질 듯 세밀하다. 연륜 깊은 줄기와 대조적인 매끄러운 나뭇잎은 여린 생기를 품고 있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나무는 저기 날아가는 까마귀에 가닿을 듯하다. 긴 세월과 풍파를 몸에 새긴 나무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온다.
1940년대 초 아버지의 제자이자 자형이 된 피터 허드에게 배운 템페라 기법은 곧 와이어스의 주된 매체가 된다. 안료에 달걀노른자를 섞어 만드는 템페라는 빠르게 마르고 붓의 움직임이 제한적이지만, 작은 붓으로 여러 겹 쌓아 올려 세부와 질감을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 중세 시대 성화의 주된 매체였던 이 기법은 맑고 절제된 색조와 무광택 질감이 고요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와이어스는 특히 템페라의 황토와 갈색, 적색 계열을 아우르는 흙빛 색조에 매료되었다. 자국의 향토와 흡사해 보였던 이 색채들은 그가 사랑하는 겨울과 가을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템페라로 그린 <펜실베이니아 풍경>의 중심에는 복잡하게 가지를 뻗어낸 플라타너스가 서 있다. 잎을 거의 다 떨군 가지와 줄기에는 이 나무만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다. 낮은 언덕 위에 고목은 보는 이를 포획할 듯이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뒤쪽에 색색으로 펼쳐진 브랜디와인 밸리는 미국독립전쟁 시기 브랜디와인 전투(1777)의 현장이고, 왼편의 집은 전투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400살이 넘는 플라타너스는 전투는 물론 이곳의 긴 역사를 지켜본 터줏대감이다. 근처에서 흐르는 작은 강물은 실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마치 공중에 떠서 바라본 듯한 모습은 화가가 여러 요소들을 합성해 만들어낸 고향 풍경이다.
세러데이 이브닝 포스트 잡지의 커버를 장식한 <사냥꾼>은 와이어스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다. 또다시 플라타너스가 중심에 있는데, 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이례적인 시선과 극적인 구도가 흥미롭다. 얼룩덜룩한 무늬에 구불구불한 가지는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매달린 잎들, 들판의 풀과 나무들도 황갈색으로 물들어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그런데 나무 위에서 저 아래 들판을 가로지르는 사냥꾼을 바라보는 이는 누구일까. 그가 사냥하려는 새의 시점에서 바라본 풍경임을 깨닫게 되면, 화가의 재치와 묘사력에 반하게 된다. 이 그림은 새의 눈으로 가을의 풍광을 즐기며 자기를 찾고 있는 사냥꾼을 바라보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선사한다.
1940년에 결혼해 아이를 둔 스물여덟의 화가에게 비극은 갑자기 찾아왔다. 1945년 가을, 아버지와 세 살 조카가 집 근처 철로에서 차가 고장 나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다복한 가족의 행복과 낙관주의는 갑자기 무너졌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편으로 와이어스의 작업에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진지한 주제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해 겨울 내내 그린 <1946년 겨울>에서 한 소년이 황톳빛 언덕을 가로지른다. 와이어스에 따르면 침울한 소년은 혼란에 빠진 그였고, 허공에 떠 있는 손은 더듬거리는 자유로운 그의 영혼이었다. 사고가 난 철로가 언덕 뒤편에 있었기에, 이후 언덕은 아버지와 죽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어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와 <묘지기>(1950) 등 와이어스의 대표작이 나온다. 전자는 다리가 불편한 이웃의 세계를 담아내며 몸은 연약하지만 독립적이고 강인한 그녀의 내면을 드러냈다. 묘를 파는 노동자를 그린 후자는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고립과 죽음이라는 은유적인 주제를 전한다. 와이어스의 작품은 대부분 황량한 언덕과 농장,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 이웃과 떠돌이를 그려 지역색이 돋보인다. 일견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하지만 사진처럼 보이는 자연주의를 넘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 '마법적 사실주의(Magic Realism)'라 불린다. 와이어스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고 실체를 꿰뚫어 보려는 열정으로 현실의 본질, (그의 말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그림자'까지 담아내고자 했다.
템페라 작업을 위해 와이어스는 보통 수십 점의 드로잉과 수채화 연구를 거쳤다. 수채화 <소작농을 위한 벽돌집 연구>는 템페라 완성작과는 다른 매력으로 인기 있는 작품이다. 헐벗은 나무와 벽돌집을 나란히 그렸는데, 미완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겨울 풍경과 어울린다. 벽돌집은 섬세하게 묘사된 부분도 있지만, 자유롭고 즉흥적인 붓질과 닦아내고 긁은 흔적도 보인다. 와이어스는 건물의 외관뿐 아니라 건물의 역사와 거주자들에게도 매료되곤 했다. 그는 영감을 받은 대상을 천천히 관찰하고 깊이 몰입하며 느꼈던 감정과 표현력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을 시도했다. 꼼꼼한 완성작과 다른 스케치는 자유롭고 생동감이 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곳으로 돌아갈 때면 언제나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릅니다. 저는 겨울과 가을을 좋아합니다. 그때는 풍경의 뼈대 같은 구조, 그 고독, 겨울의 죽은 듯한 느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에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지만, 모든 이야기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와이어스가 고향 채즈포드에서 가장 자주 다룬 소재는 이웃 쿠에르너 가족의 농장과 부부였다. 작업실에서 가까운 농장은 소년 때부터 산책하며 스케치했던 공간으로, 와이어스는 특히 황갈색으로 물든 가을 들판과 눈 덮인 겨울 언덕의 추상적인 풍경에 사로잡혔다. 독일인 부부는 1920년대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 기관총수로 복무했던 칼 쿠에르너는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흡인력이 있었다. 와이어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칼에 깊은 애정을 느꼈고, 70년이 넘게 이곳과 인물에 대한 반응을 천여점의 이미지로 담아냈다.
<봄>은 칼이 백혈병에 걸려 임종을 앞둔 시점에 그린 것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스케치했던 와이어스는 농장 언덕 기슭으로 그를 옮겨 놓았다. 벌거벗은 노인이 차가운 눈에 갇혀 언덕에 누워 있는 모습은 기묘하고 초현실적이다. 몹시 춥고 연약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평생의 터전인 농장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멀지 않은 철로에서 와이어스의 아버지가 20여 년 전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화가에게 상실은 두 배가 되었다. 대리 아버지이기도 했던 칼을 이 언덕에 묻으며 와이어스는 두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풍경은 쓸쓸하고 서늘하지만 제목은 재생과 탄생을 암시하는 봄이다. 어쩌면 화가는 칼을 농장에서 새롭게 살려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그림은 이렇듯 꼬리를 무는 사유와 명상을 이끈다. 저기 초승달이 점차 차오르듯이, 겨울은 끝이 아니고, 죽음도 마지막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10년 후의 작품 <긴 나뭇가지>는 흥미롭게도 <봄>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도 없지만 비슷한 지점에 눈이 남아 있고, 잎을 거의 떨군 가지가 그 위를 지나간다. 와이어스는 "저 눈 덮인 곳은 내 무덤이고, 저 나무의 시든 잎들은 세상을 떠난 내 친구들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마치 칼을 언덕에 묻었듯이 70살경에 자신의 무덤을 그려보고, 먼저 떠난 자들이 이 나무로 자라났다고 상상한 것일까. 이 그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언덕을 감싼 눈부신 햇살이다. 실제로 화가는 베네치아에서 구한 순금을 물감에 섞어 그림을 완성한 후 전체에 덧발랐다. 그래서 언덕은 차원이 다른 빛과 온기를 품게 되었고, 마치 비잔틴 성당의 금빛 모자이크처럼 영원성을 느끼게 한다.
겨울의 쓸쓸한 나뭇가지는 또한 말한다. 나는 살았노라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때는 여린 새싹이었고, 뜨거운 햇살과 장대비에 자라나 초록 활기를 내뿜다가, 언젠가 화려하게 물들어 원숙한 모습도 있었다고. 지금 비록 쪼그라들어 잿빛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내 안에 찬란한 봄여름가을을 품고 있다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와 자주 이야기 하면서 그것을 느꼈다. 방금 전에 먹은 음식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지만 놀랍게도 옛 기억은 영화처럼 선명하게 들려주셨다. 마주한 모습이 늙고 초라해 가엽고 불쌍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안에는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적인 사건과 열정과 모험이 가득했다. 아장아장 평양에서 서울로 피난 가는 길, 가난한 대식구의 삶, 아빠의 뜨거운 사랑과 생계를 위해 억척스럽게 했던 여러 일들, 국내의 명산들을 오르고 뒤늦게 대학에 가고 세상곳곳을 여행하며 심해로 들어가고 하늘을 날았던 것까지. 그렇게 지금 마주한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겨울의 엄마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