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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레비탄의 <황금빛 가을>

: 환희와 감사의 향연

by 권연희


가을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준비 없이 그 향연에 초대되면 황홀하면서도 어리둥절하다. 샛노란 불이 켜지고 울긋불긋한 색채가 더해져 익숙한 풍경은 사뭇 특별해진다. 살랑이며 춤추던 잎들은 어느새 세찬 바람에 하나둘 떨어진다. 땅으로 돌아가기 전 온몸을 불사르는 듯한 나무의 외침은 감격스러우면서도 애틋하다. 스쳐 지나가는 이 축제를 사진에 담아둘 수밖에. 특히나 러시아의 길고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짧은 가을의 서정과 감흥을 섬세하게 담아낸 화가가 있다.



이삭 레비탄, <황금빛 가을>, 1895년, 83.6 x 127.2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작은 강이 흐르는 초원에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특히 전경의 나무들은 하얀 줄기에 마치 불을 붙인듯하다. 멀리 지평선까지 울긋불긋한 숲이 층층이 켜를 이루고, 언덕배기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을의 투명한 공기와 살랑이는 바람, 햇살의 온기, 나무와 풀의 바스락거리는 질감까지 전해진다. 푸른 하늘과 잔잔한 구름은 강물에서도 어른거린다.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풍경에서 생을 한껏 누린 자연의 기쁨과 감사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이삭 레비탄(Isaac Levitan, 1860~1900)은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현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태어났다. 십 대에 이주한 모스크바에서 소년은 형이 수학하고 있는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몇 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통역일을 하던 아버지마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 형제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집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전전하던 레비탄은 주변의 도움과 장학금으로 근근이 학교를 다녔다. 소년기의 불행과 고독, 유대인에 대한 핍박까지 더해져 청년은 섬세하면서도 우울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레비탄이 성장하고 활동한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은 차르의 전제 정치와 낙후된 경제, (1861년까지 지속된) 농노제의 여파로 사회 구석구석이 곪아가고 있었다. 서구의 진보적인 사상을 접한 지식인들은 1870년대 농촌 계몽을 위한 ‘브나로드(Vnarod, 민중 속으로)’ 운동을 펼쳤다. 부조리와 모순 가득한 사회에서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들이 탄생했고, 사회 문제와 민중의 삶을 민감하게 담아낸 문학이 예술 전반을 이끌었다.



이삭 레비탄, <가을날. 소콜니키>, 1879년, 캔버스에 유채, 63.5 x 50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아카데미 전통에 저항하며 1970년 설립된 '이동파(Peredvizhniki, 移動派)'는 여러 도시를 다니며 전시를 통해 민중을 교화하고자 했다. 러시아의 역사와 민중의 삶, 터전인 풍경을 담아낸 이들의 그림은 러시아 사회에 대한 애정을 고취시켰다. 이동파 화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레비탄은 특히 '무드 풍경화(mood landscape)'를 개척한 알렉세이 사브라소프(1830~1897)를 영적인 스승으로 따랐다. 이상적인 고전주의 풍경화나 눈길을 끄는 픽처레스크 풍경화가 그려지던 시대에, 사브라소프는 러시아의 평범한 시골 풍경에 주관적인 감흥과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녹여냈다. 그는 야외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일상적인 모티프에 시적인 감성을 불어넣도록 제자들을 이끌었다.


열아홉 레비탄의 <가을날. 소콜니키>는 모스크바 근교의 공원을 보여준다. 쭉 뻗은 산책로를 따라 암녹색 나무와 노랗게 물든 작은 나무들이 서 있고,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이 길을 홀로 걷고 있다. 이동파 화가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던 컬렉터 트레티야코프는 가을의 고독과 분위기로 충만한 이 풍경화를 구입하고 레비탄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삭 레비탄, <숲 속의 봄>, 1882년, 캔버스에 유채, 43.4 x 35.7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숲 속의 봄>은 숲에 깃든 봄의 기운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어수선한 작은 물가는 초록풀로 무성하고, 전경 나무에는 하얀 꽃망울이 보일락 말락 하다. 새싹이 곧 돋아난 것 같은 초록 기운도 어른거린다. 뒤쪽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 미묘한 색채의 연무도 봄의 온기와 움트는 생명력을 내뿜는다. 깊은 숲 속까지 찾아온 봄소식을 전하며 화가의 몸과 마음도 몽글몽글해졌을 것이다.


자주 여행을 떠나 작업했던 레비탄은 특히 소박한 시골과 숲을 좋아했다. 1880년대부터 진한 우정을 나누며 휴가를 함께 보낸 의사이자 소설가 안톤 체호프(1860~1904) 숲이야말로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고결한 감정을 고취한다' 여겼다. 그림에서 드러나듯이 레비탄은 특히 자연의 에너지와 공기, 빛의 상호작용과 미묘한 색조를 관찰하고 연구했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화가는 자연 속에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풍경에 따라 느꼈던 기쁨과 황홀감, 우울, 사색과 명상에 이르는 다양한 정서를 그림에 반영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인상은 변형되고 서정성과 생동감이 더해졌다. 특히나 변화하는 계절인 봄과 가을 풍경은 더욱 풍성한 감성을 담아낼 수 있었다.


"자연에는 너무나 많은 공기와 에너지가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작은 나뭇가지가 비명을 지르며 레비탄의 캔버스에 담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 안톤 체호프




이삭 레비탄, <겨울 숲 속에서>, 1885년, 캔버스에 유채, 55 x 45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


물론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풍경은 일 년의 반을 차지하는 겨울 풍경이다. 10월 말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쌓여가다 이듬해 4월 말에나 녹아내린다. 길고 긴 한파는 견디고 이겨내야 할 시련으로 여겨졌기기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눈의 나라 러시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이동파 화가들은 본격적으로 겨울 풍경을 다루기 시작했다.


레비탄의 <겨울 숲 속에서>는 눈 내린 숲 속의 고요한 풍경을 보여준다. 순백의 하얀 눈과 먹빛의 나무들이 대조를 이루고, 동료 화가가 그려 넣은 늑대의 등장으로 쓸쓸한 풍경은 살짝 온기를 품게 되었다. 늑대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듯한 숲 속 풍경은 보는 이를 차분히 관조하게 한다. 잎을 모두 떨구고 복잡한 가지를 뻗어낸 맨몸의 나무는 최소의 몸짓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다.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늑대도, 그리고 우리도 이 계절을 감내할 수밖에. 레비탄은 겨울숲 풍경에 자기만의 정취와 분위기를 담아냈다.



이삭 레비탄, <자작나무 숲>, 1889년, 캔버스에 종이, 유채, 28.5 x 50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에도 여름이 있을까 싶지만 찬란한 태양과 건조한 바람이 어우러져 더없이 쾌적하다고 한다. <자작나무 숲>은 그런 여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가로로 긴 작은 캔버스는 풀과 꽃이 무성한 대지와 자작나무의 몸통 부분을 주로 담았다. 화가는 초지와 나무줄기에서 춤을 추는 듯한 눈부신 빛의 유희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싱그러운 러시아의 여름숲 풍경은 겨울과 대조되는 활력과 열정을 내뿜는다.


<황금빛 가을>에도 등장하는 자작나무는 러시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라나무다.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 더욱 울창해져서 '러시아 자작나무의 날'이라는 명절도 지정되어 있다. 예부터 자작나무는 슬라브족에게 사람을 보호하는 신의 선물로 여겨져 주변에 많이 심겼다. 또한 보드카를 만들 때, 감기의 약재나 이콘의 액자로도 활용되며 오랜 세월 러시아인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해 왔다. 일반적으로 봄과 재생, 희망을 상징하는 자작나무는 19세기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영혼이라는 상징도 더해지며 풍경화에서 자주 다루어졌다.




이삭 레비탄, <고요한 거처>, 1890년 캔버스에 유채, 87.5 x 108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1890년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레비탄의 대작들이 줄지어 나온다. <고요한 거처>는 볼가강 유역에서 본 여러 인상과 정취를 엮어낸 풍경화로, 다음 해 이동파 전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오래된 목조다리가 있는 강물은 노을빛에 물든 하늘과 저 너머의 풍경을 비춘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고 들꽃 가득한 초원길을 따라가면 숲에 파묻힌 그곳에 이를 것이다. 뾰족한 종탑이 있는 수도원은 영적인 삶을 수행하는 수도자들의 거처이고, 양파 모양의 돔이 특징적인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이들이 예배하는 신의 집이다.


그림은 그렇게 우리를 초대한다. 세속의 짐을 벗고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품속에 있는 고요한 안식처로 오라 한다. 이곳을 비추는 황혼의 빛과 성당의 반짝이는 십자가는 자연에 깃든 신성과 축복을 느끼게 해 준다. 풍부하고 시적인 색조의 풍경은 화가가 강변에서 느꼈던 마음의 평화와 황홀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거울 같은 강물은 또한 나를 비춰보게 한다. 이러한 정취와 사색을 이끄는 레비탄의 풍경화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 그림에 매혹된 체호프는 소설에서 풍경과 주인공의 감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우리 땅에서 넘쳐흐르는 강들이 모든 것을 생명으로 되돌리는 상상을 한다. 러시아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는 없다. 러시아에서만 진정한 풍경화가가 될 수 있다.” - 이삭 레비탄



이삭 레비탄, <영원한 평화> 1894년, 캔버스에 유채, 150 x 206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1892년은 레비탄에게 여러모로 비극의 해였다. 폴 세잔과 소설가 에밀 졸라의 우정이 깨졌던 것처럼, 버팀목처럼 든든한 친구 체호프가 발표한 단편소설 『메뚜기』로 인해 레비탄은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 무정한 남편과 보헤미안 부인, 그녀의 연인인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화가의 이야기가 레비탄과 그의 연인을 암시해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 해 레비탄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모스크바에서 굴욕적인 추방을 당했다. (지인들의 청원으로 이후 복귀한다.)


이 무렵 레비탄이 열정을 다해 완성한 대작 <영원한 평화>는 가장 '레비탄적인' 그림으로 평가된다. 전경의 높은 언덕에서 드넓은 볼가강과 평원이 내려다 보이고, 광대한 보랏빛 구름들이 하늘에 펼쳐져 있다. 이 하늘빛을 머금은 너른 강물은 가을의 한기를 내뿜고, 어둑한 보랏빛 구름은 멜랑콜리한 감성을 드리운다. 언덕 초원에는 오래된 목조성당이 자리하고, 나무들 뒤에 흩어져 있는 십자가는 이곳이 묘지임을 알려준다. 이런 망자들만이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일까. 광활한 자연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에 비하면 먼지 같은 인간의 삶은 덧없기만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풍경화로도 불린다. 단순하지만 우수에 찬 색조의 풍경에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이 녹아있다. 하지만 화가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있다.

"현실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장 깊숙한 신비를 엿보고, 모든 것에서 신을 보고, 이 숭고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고,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요?" - 이삭 레비탄


레비탄은 이렇듯 자연에 대한 시적인 인식과 압축된 창의적인 언어를 발전시켰다. 정교하게 세부를 묘사한 이반 시슈킨(1832~1898)사실주의 풍경화와 함께 19세기말에 발전한 무드 풍경화는 레비탄을 통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런 서정적인 자연 묘사는 톨스토이나 체호프, 고골리 등의 문학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에서도 공명한다.



이삭 레비탄, <가을>, 1896년, 종이에 수채와 연필, 31 x 44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1895년 레비탄은 체호프와 화해하고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지만, 신경 쇠약이 악화되며 또다시 자살을 시도했다. 그해 완성한 대표작 <황금빛 가을>은 흐린 가을 중에 잠깐 동안 아주 밝고 따듯한 날씨가 펼쳐지는 '바비요 레토(늦여름)'를 묘사한 것이다. 춥고 긴 겨울을 앞두고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며 러시아인들은 햇살과 온기에 더욱 소중함을 느끼며 감사했다. 레비탄은 그런 황금빛 풍경을 포함한 러시아의 가을을 백여 점이나 남겼다.


가을은 갑자기 왔듯이 바쁘게 떠난다. 찬바람이 불면 차차 잎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한다. 1896년의 작은 수채화 <가을>은 그런 늦가을의 정취를 전한다. 흐릿한 하늘과 고즈넉한 강물, 앙상한 나무들과 떨어진 낙엽까지, 형과 색이 점차 비어 가는 풍경은 마음을 겸허하게 한다. 때론 고독감과 상념이 몰려오기도 한다. 같은 해 심장 마비를 겪은 레비탄은 심장 기형이 악화되며 점차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러시아의 풍경을 계속 그려나갔고, 사브라소프를 잇는 대가로 명성을 쌓으며 1898년부터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다음 해 그는 공식으로 모스크바 거주 허가를 받았다. 병약한 몸으로 야외에서 작업하던 레비탄은 1900년 감기에 걸린 후 겨우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황금빛 가을도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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