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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Dec 20. 2023

미중 무역·기술 전쟁

19세기, 중국의 운명을 결정한 전쟁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이었다. 

21세기, 미국은 관세폭탄을 시발로 중국과 패권전쟁 중이다. 아편전쟁 시 영국은 패권국이었다. 중국 청나라는 쇠망하고 있었다. 미중 패권전쟁은 미국이 쇠락하고 중국이 굴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국가 간의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각 국의 생산·소비 활동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촘촘히 연결돼 둘만의 전쟁이 될 수도 없다. 미중 양국이 추구하는 탈동조화· 탈세계화는 모든 산업, 모든 나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의 반동이다.      


□ 미국의 관세폭탄, 무역전쟁 시작


2018년 7월, 미국은 중국산 800개 품목에 25% 관세 폭탄을 터뜨렸다. 자국의 무역적자와 중국의 불공정 무역의 변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필자의 생각과 달리, 국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조기 굴복을 예상했다. 중국이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고, 가장 많은 흑자를 내는 무역구조였기 때문이다. GDP가 미국의 약 65% 수준인 중국은 게임 상대가 안될 수도 있었다. 오판이었다.  

    

2021년 1월, 무역전쟁 1단계 합의는 사실상 미국의 패배를 의미했다. 문제 해결의 답은 중국에 있지 않았다. 약 1년 반 동안 미국의 중국 상품 수입은 줄었다. 미국의 생산력·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탈 중국을 외쳤지만 양국 교역량과 중국의 무역흑자는 사상 최대였다. 중국이 웃었다.    

 

높은 관세는 미중 양국의 기업·소비자에게 큰 부담·손실이었다. 특히  미국 기업의 부담이 컸다.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도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겹치자 미국은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공급난을 겪었다. 중국 국경 봉쇄 상황에서 미국에는 중국산 제품을 대체할 생산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전쟁과 탈동조화는 그동안 중국 성장의 국제환경이었던 세계화의 후퇴·역전이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소극적인 대처보다 대 미국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적극적인 전략을 채택했다. 사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공세에 대비해 왔다. 홍색공급망 구축을 위한 ‘중국제조 2025’, 글로벌 공급망 확장을 위한 ‘일대일로’, 대내외 경제 선순환을 위한 ‘쌍순환’ 전략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총공세는 오히려 중국의 맷집을 키우고, 자립자강 의지·역량을 키웠다. 중국은 내수 확대와 독자적 공급망 확립, 기술 경쟁력 제고 노력을 배가했다. 무역전쟁 결과는 미국의 부진·침체와 중국의 선전·성장 추세를 재확인해 주었다. 미국 혼자서는 중국을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미국은 2021년부터 모든 것을 '동맹들과 함께' 하고 있다.      


무역전쟁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중국 화웨이 공격에는 첨단 선도기술 경쟁이 깔려있었다. 무역전쟁은 미국의 중국 죽이기였다. 적대감의 발로인 신냉전의 전초전이었다. 그 본질은 체제·이념전쟁, 문명충돌과 연계된 패권전쟁이었다. 무역전쟁은 곧바로 미중 간의 기술패권·체제이념·화폐금융 전쟁으로 비화돼 갔다.      


 패권전쟁의 핵심은 첨단기술전쟁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국가의 생존·번영은 첨단 과학기술에 달렸다. 첨단기술은 경제발전과 군비경쟁의 요체다. 선도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미국은 1945년부터 핵무기를 개발·사용하면서 패권을 장악했다. 미중 간의 반도체 개발 경쟁은 냉전 시대 미소 간의 핵 개발 경쟁보다 더 치열하다.   

    

오늘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반도체는 4차 산업의 석유이고, 전력이며, 쌀이다. 특히  반도체는 ‘산업·무기의 쌀’을 넘어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연자동차 제조 비용의 절반은 전자장비가 차지한다. 전기차는 약 70%. 인공위성·드론·미사일 같은 첨단무기의 성능은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가 결정한다.


중국의 반도체와 우주항공,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은 미국을 바짝 추격·추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 고유의 이념인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수정하면서까지 반도체 전쟁에 임하고 있다. 보호무역과 국가의 기업 보조금 지원, 신워싱턴컨센서스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명운을 건 전방위적인 공격에 중국도 사활을 걸고 자립자강의 외길로 가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규제      


미국은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의 공급망을 허물 수 없었다.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이었다. 미국은 곧바로 첨단 과학기술 통제를 국가안보 전략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향후 10년 안에 첨단기술이 경제를 재편하고, 군대를 전환하며, 세계를 개조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7년 미국은 중국이 이미 신기술에서 미국을 추월할 힘과 능력, 야심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목표·전략     


미국의 최우선 전략 목표는 국가안보다. 기술이 군사력을 이끄는 시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을 저지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제적 피해보다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미국 안보와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저지하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2021년부터 「미국혁신경쟁법 등을 제정했다. ①과학기술 투자 확대, ②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 ③동맹국과의 연대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 목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싹을 잘라, 군사적 위협을 최소화하고, 자국 내 공급망을 구축해, 잃어버린 반도체 패권을 되찾는 것이다.     


각종 규제조치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조치는 물 샐 틈이 없다. 자금줄 봉쇄부터 시작했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과 이동통신사들을 타격하는 각종 수입·투자 제한 조치를 취했다. 전 세계 반도체·통신 장비와 서비스 시장에서 중국 기업 퇴출을 위한 기술 연대를 구축했다. 중국이 함부로 넘볼 수 없게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 쳤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제조·연구개발 역량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조치는 전방위적이다. 촘촘하게 중국의 치부를 찌르는 것들이다.


대내적으로는 반도체와 통신장비 생산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국가보조금을 지원, 미국이 ‘더 빨리 뛰게’하고 있다. 중국에는 특정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맞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디지털 동맹, 민주주의 기술연대 등 중국을 통제·봉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대 중국 제재가 이전과 다른 점은 미국이 대 중국 절대적 우위(초격차)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경제 이익보다 국가안보를 우선시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미국의 규제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사용되는 기술인 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분야에서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다.   

  

□ 미국의 공세에 대한 중국의 대응전략     


중국이 인식하는 ‘세기의 대변화’에는 21세기 초가 기술전환의 시대라는 의미도 있다. 신기술이 부상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전쟁은 선도기술을 주도하기 위한 기술혁신 경쟁이 핵심이다. 이 상황에서 중국에 기술 혁신은 성장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중국은 결정적인 한방이 될 수 있는 민군(民軍) 겸용 첨단기술 개발·투자에 국운을 걸고 있다.    

 

목표·전략     


중국은 '중국몽' 실현의 주 동력을 과학기술 혁신으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 자립자강이 발전의 핵심 기반이다. 시진핑 정부는 인공지능·양자정보 등을  전략적 기술로 하는 ‘과학기술강국’ 비전을 제시했다. 2050년까지 ‘과학기술 혁신 강국’으로 도약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술·표준을 장악, 패권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점차 미국의 전방위적인 제재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기본전략은 "①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하고, ②국가전략상의 요구를 지향점으로 삼아, ③원천적·선도적 과학기술의 난관을 돌파하는데 역량을 결집, ④관건적 핵심기술 공방전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AI·5G·드론 등 아직 글로벌 기술 표준이 정착되지 않은 무주공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특히 집중 개발 중인 제3세대 반도체와 6세대 이동통신(6G) 기술에 승부를 거는 전략이다.


역사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삽으로 흙을 뜨는 일을 대를 이어 하다 보면 언젠가는 산을 옮길 수 있다.)의 정신을 말한다. 10년간 칼 한 자루 가는 심정으로 반도체 자력갱생에 매진하고 있다. 자국의 장점인 고급 인력과 돈, 혁신 동력을 계속 주입하다보면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대응 현황·과제     


중국은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몽 실현을 위해 ‘중국제조 25’와 ‘인터넷 플러스’에 총력을 다해 왔다. 민군융합과 천인(인재영입)계획 등 공격적인 산업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에 힘입어 중국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은 여전히 글로벌 반도체 제조·교역의 허브다.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은 미국이 부러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수준이다. 중국이 앞서가는 AI·자율자동차·전자상거래 등의 4차 산업혁명은 위력적이다. 전기차·배터리 등 신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중국에 올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추격하는 도전국 중국의 기술혁신 속도는 그 의지·자원 면에서 미국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의 대 중국 규제의 강도는 곧 두려움의 강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2021년, 중국의 화성탐사선 톈원은 세계 최초로 화성궤도의 비행과 착륙, 탐사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미국 GPS보다 더 성능이 우수한 베이더우 초정밀 위치정보 서비스를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우주정거장인 톈궁도 운영 중이다. 구글컴퓨터보다 100억 배 빠른 양자컴퓨터 개발, 극초음속미사일 개발도 괄목할만한 하다.   


특히 중국은 자연과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다. 특허 출원 건수와 과학기술 R&D 역량, 과학논문 인용 지표 분야에서 세계 1위다. 학술 연구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곧 산업 경쟁력이 역전된다. 최근 중국의 과학기술 시스템과 특히 R&D 역량의 급속한 굴기에는 중국의 결기가 있다. 글로벌 산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체력이 튼튼하다. 재료과학·물리학·화학 분야의 약진은 눈부시다. 공학·수학 역시 어느새 세계 톱클래스가 됐다. 물리학·지구환경 쪽 역시 최고 수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들은 첨단기술 발전에 역할을 하게 된다. 중국의 첨단무기들은 미국이 놀랄정도로 주(週) 단위로 변화·발전한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아직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미미하다. 장비·설계 등의 핵심기술 분야 생태계가 미흡하다. 초격차 공정기술과 설계기술은 중국의 기술력으로 해결이 안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나, 수출보다 수입 비중이 훨씬 높다. 반도체 수입액이 석유 수입액보다 많고, 그 무역적자는 3,000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핵심기술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높다. 경쟁력도 취약하다. 이에 따라 미국의 집중 공격에 첨단 반도체 제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자력갱생이라는 외나무 길을 걷는 험난한 길, 그야말로 제2의 '30년 대장정' 이다.      


장기전에서는 중국이 유리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대감, 신냉전과 문명충돌 이면에는 최신 과학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우려는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에 따른 중국군의 전투력 증강이다. 미중 첨단기술 전쟁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가는 장기전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주요 관심사는 ①미국의 전방위 규제가 과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 ②중국의 자립자강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일 것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대체로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과학기술·첨단산업 발전의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그 추세를 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 미국의 정치· 행정시스템이 무너지고 고장난 상태에서, 대 중국 기술 디커플링과 신중상주의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여 동안 미국의 제재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속도를 올렸다. 미국의 칼날에 명줄이 끊길 줄 알았던 화웨이는 중국의 종합반도체 기업으로 변모했다. 2023년 6월, 블룸버그는 지난 1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중 19곳이 중국 기업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제재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초체력이 탄탄한 중국은 큰 내수시장도 갖고 있어 자립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중국 언론들도 자신한다.


미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 또한 날로 강해지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운데 2023년 12월, 중국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무기를 꺼내들었다. 미국이 중국산 저가의 범용 반도체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자 중국은 '수출 금지·제한 기술 목록’을 개정, 첨단기술 분야와 중국이 엄격하게 관리해 온 희토류의 채굴과 선광, 제련 기술의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감도 있다. 중국의 ①기술혁신 생산성은 2014년에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②중국의 과학기술 기초연구와 특허 건수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연 1위다. ③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온 연구·개발(R&D) 역량·투자도 중국이 앞서고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R&D에 돈과 인력을 쏟아부으며, 내수시장이란 성(城) 안에서 버티기 모드로 고 있다. 제3세대 반도체 기술의 돌파구이자 게임 체인저가 될 양자의 시대는 혁신역량과 기초과학탄탄한 중국이 열어갈 수 있다. 우주에서 벌어질 미래전을 좌우할 양자정보 기술은 미중 양국의 사활이 걸린 국가안보문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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