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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Feb 07. 2024

국제질서 붕괴: 대혼란 가능성

- 지금은 다중복합 위기의 시대

    

미중관계와 국제질서의 향방을 예측하는 3번째 글이다.


앞 제13화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①미중 양국은 둘 다 죽게 될 시대착오적인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②당분간은 공생을 모색하는 ‘협력적인 경쟁’ 관계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미중 패권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각기 설정한 시간(10년 또는 30년) 동안 지속하면서 악화일로로 갈 것이다. 결국 양국 모두 상처를 입고, 국제질서가 붕괴돼 세계가 대혼란·대공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렇게 될 것인지 관련 역사와 이론, 추세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 20세기 관련 역사적 사례와 이론     


먼저 관련 역사적 사례와 이론들이다. 

역사에서 도출한 이론들은 현실 이해를 위한 노력이자 문제제기다.

     

역사: 1920~1930년대 대혼란·대공황 사례    


20세기 초, 영·미 간의 세력전이 시기에 세계는 대공황·전쟁으로 얼룩졌다. 1차 세계대전에서 국력을 소진한 대영제국은 자국의 재건에 바빴다. 패권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국제사회에 충분한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했다. 국제질서가 붕괴되면서 선진국들은 자국 우선주의에 골몰했다. 영국은 금본위제를 폐기했다. 미국은 스무트-홀리 법을 제정해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 전쟁을 촉발했다. 1929년 이후 각국의 증시는 폭락하고 전 세계의 교역도 급감했다.

      

‘대공황’이었다. 통화시스템인 금본위제 붕괴, 자유무역 몰락과 보호무역 부상, 자본자유화 종식은 국제경제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심각한 경제난은 극단주의 세력에 힘을 실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난이 극심한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출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21세기 초, 미중 패권전쟁은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戦間期)’ 국제질서와 유사하다. 중·러가 미국 등 서방에 맞서는 신냉전 시대에 지경학적 분절화와 보호무역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덮친 세계는 우크라 전쟁 등으로 유례없는 다중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00년만의 역사의 반복이다.

     

이론1: 1930년대 대공황을 낳은 주 원인은 킨들버거 함정 

    

지금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다중 위기는 20세기 ‘킨들버거 함정’의 21세기 판이다. 미국의 마셜 플랜 설계자였던 경제학자 킨들버거가 제시한 ‘킨들버거 함정’ 론은 새로 부상한 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대신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위기를 뜻한다. 1930년 ‘대공황’은 영국 이후 패권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패권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신흥 중국은 패권 의지와 능력이 없다. 미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중국은 ‘킨들버거 함정’에 빠진 채 국제질서는 아노미 상태다. 약 100년 만에 맞는 미중 간의 세력전이 시기에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 대공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2: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민스키 모멘트’ 가설을 입증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주장한 ‘민스키 모먼트’는 누적된 부채가 한계에 도달해 자산가치 붕괴와 경제위기를 일으키는 순간(moment)을 말한다. 경기 호황이 끝나면, 채무자들의 부채상환 능력이 나빠져, 건전한 자산까지 팔아 빚을 갚으면서 자산가치가 폭락,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 조명된 바 있다.    

 

빚에 의한 거품 성장과 몰락을 경고한 ‘민스키 모먼트’는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위기감이 확산하면서 재조명되었다. 2024년에 들어서는 뉴욕 월가의 낙관론자들까지 “민스키 모먼트 가능성이 증가했다.”며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 한국 등은 경기 호황이 끝나고 부채를 먹고 자란 부동산 중심의 자산가치가 폭락, 금융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론3: ‘장주기 순환론들도 세력전이 과정에서 대혼돈을 예측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모델스키와 톰슨이 발전시킨 ‘장주기론’과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창립자 달리오가 제시한 역사 패턴의 ‘사이클론’은 1500년 이후 500년의 패권 역사를 뒤돌아보고, 미국과 미국 패권의 몰락 과정에서 국제질서 붕괴와 대혼란 가능성을 말한다.

     

1500년 이후 지금까지 패권 질서의 반복되는 변화 패턴을 강조하는 ‘장주기론’은 각각의 세계 패권이 약 100년을 주기로 순환해 왔다고 본다. 1국의 패권이 1세기 동안 대략 25년으로 나눠지는 4개 국면, 즉 ①세계전쟁 ②세계패권 ③정당성 하락 ④탈집중화·전쟁 순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미중 패권전쟁은 위 ③국면을 지나며, ④국면에 진입, 점차 위험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③패권국인 미국의 선의가 의문시되면서 중국의 도전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 미국의 힘이 강하다. 그러나 ④미국 패권의 신뢰·정당성은 더 의문시되고, 도전이 강해지면서 쌍방 간의 공격·대응의 회오리바람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레이 달리오도 지난 500년의 강대국 역사에서 찾은 장단기·대소 사이클 속에서 다가 올 미국 패권의 몰락을 예고한다. 그는 “패권 제국의 흥망성쇠 순환 사이클상 미국의 패권은 마지막 단계 근접해 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은 대내적으로는 갈등·분열이 심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무력충돌하는 등 대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  다중복합 위기는 다가오는 세계 대혼란의 징후 

    

지금은 다중복합 위기’ 속의 변화·분열의 시대   

  

걱정이 갈수록 태산이다.

2023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WEF)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위협’이었다. WEF는 특별히 지구적 차원의 복합적 도전 이슈를 담은 전망서( “Global Risks Report 2023”)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에 장단기 위험 이슈들이 상호 연계돼 동시 다발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다중복합 위기(poly-crisis)’ 시대의 도래를 경고했다.

     

2024년 1월에 개최된 2024년 WEF 주제는 ‘신뢰 재건(Rebuilding Trust)’이었다. WEF는 앞으로 세계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저성장과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 지경학적 분절화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급격한 변화·분열이 심화되는 시대에 신뢰 재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그 권위·영향력을 인정받는 WEF는 ‘다중복합 위기’가 지속되는 오늘날을 ‘변화·분열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분열된 세계에서 안보·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이 없으면 장차 대혼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다. 

   

WEF의 우려와 같이 미국과 중국이 역사와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패권전쟁을 지속한다면 세계는 아래와 같은 ‘다중복합 위기’ 속에서 허덕일 것이다. 미중 양국의 몰락은 물론 국제정치경제 질서가 붕괴, 세계는 대침체·혼돈을 맞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악화일로(惡化一路)인 미중 패권전쟁

      

미중 패권전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경제안보의 무기화를 통해 디커플링과 신냉전, 문명충돌로 가는 전쟁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최근 양국에서는 내정이 악화돼 불안한 국민들은 금 사재기에 나섰다. 미중 간의 무역기술·화폐금융 전쟁은 세계경제의 쇠퇴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경제 침체는 각 지역에서의 혼란·분쟁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미국 정보위원회(NIC) <글로벌 트렌드 2025>는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고립시키는 공격적인 자세가 세계가 당면할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었다. 미중 패권전쟁은 중·러 대 미·유럽 간의 신냉전 구도에서 나아가 서구·비서구 간의 문명충돌 양상으로 확산돠고 있다. 그럼에도 양 진영에서는 “약해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국제질서가 붕괴지금은 대공위(패권국 없는 G0) 시대  

   

21세기 세계질서는 G2인 미중관계의 향방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손을 놓고 있다. 경제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땅에 떨어졌다. 정치경제가 엉망인 미국은 ‘동맹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미국은 NATO와 IPEF·Quad·AUKUS 등 다자 안보협력체와 역할을 분담해 국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나 적정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  

     

세계는 지금 지구적인 대공위 상태이다. 공공재 생산자로서 미국은 생산 능력과 의지를 잃었다. 세계는 하나의 제도·규범에 의해 규율될 수 없게 되었다. 국제사회는 각자도생 하며 헤쳐 모이고 있다. 동유럽의 우크라 전쟁과 중동지역의 이-팔(하마스) 전쟁, 예멘반군 후티의 테러 등은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의 몰락 징후다. 

    

우크라 전쟁은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전쟁이 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유럽 간의 대결은 발트해 연안국인 스웨덴·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서 발트해 3국과 러시아 간에도 전운이 감돈다. 미중 패권전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 전쟁은 특히 유럽의 경제를 타격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유럽 지역에서 다시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서 서쪽(동쪽)이 위험하면 동쪽(서쪽)도 조용하지 않았다. 6·25전쟁은 동유럽이 시끄러울 때 터졌다. 다시 동유럽이 심상치 않다. 한국은 2년 연속 집단안전보장기구 NATO의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미국·유럽·우크라이나 편에 서있다. 화가 나 있는 러시아는 다시 북한의 무력도발에서 나아가 제2의 6·25를 기획·사주할 수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과 지경학적 분절화는 대침체 유발

     

가장 큰 두 경제권인 미중 간의 패권전쟁은 세계경제의 구도를 재편했다. 미국은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중국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을 앞세워 다투고 있다. EU도 ‘디리스킹(de-risking)’을 위해 중러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도 자국산 비중이 큰 핵심광물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시대를 거스르는 보호무역주의와 신중상주의로의 회귀다. 

    

미중 패권전쟁과 우크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무기화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무기로 경제정책이 사용되는 시대다.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블록이 형성된다. 이는 무역을 위축시켜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린다. 기후변화· 식량안보·인공지능(AI) 등 전 지구적 과제 해결에도 걸림돌이다. 

    

신냉전 구도는 이미 자본·재화의 자유로운 흐름을 제한해 무역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정학적 분절화는 무역비용을 늘리고 효율성을 낮춰 세계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불황에 빠진 세계는 국제정치적으로도 격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무역전쟁은 세계정치경제를 위협할 것이다.


   

이렇듯 지구촌에 불확실성과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세력전이의 이행기에는 혼돈·무질서가 출현한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GDP 수준이 비슷해지고, 패권전쟁이 임계점에 도달할 때 위기 수준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2024년 현재의 지구촌 위기가 심각한 이유는 ‘다중복합 위기’이기 때문이다. 평시였던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미중 패권전쟁 초입 때의 코로나19 팬더믹 위기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지난 두 번의 위기 때는 엄청난 돈을 풀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현재의 위기는 고금리·고물가,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경제침체다.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가 없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미중·우크라·중동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부정적인 예측을 더해준다. 최근 세계은행뿐만 아니라 IMF 등은 세계경제의 3분의 1이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의 ‘잃어버릴 10년'을 말하고 있다. 잠재적인 성장률 둔화는 각국은 물론 시대적 도전에 맞서는 지구촌의 능력을 저해할 것이다.

    

패권국과 패권질서의 몰락은 여러 위험을 낳는다가장 큰 위험은 대규모 열전(무력전쟁)이지만 대공황 같은 혼란도 재앙이다미중 양국이 자멸하지 않고, 상대를 죽일 수도 없다면 책임대국인 양국이 펼치는 전략의 본질은 ‘경쟁적 협력’이어야 한다. 

     

세계 부의 40%를 차지하는 미중관계에서는 완전한 승리가 아닌 제한적 승리가 최선일 것이다. 여전히 ‘이혼을 선택할 수 없는 결혼’ 상태(Chimerica)인 양국이 파국으로 간다면 자신들이 호령하며 부양해 왔다는 지구촌(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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