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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Feb 14. 2024

위기는 신(新) 국제질서 창출 기회

- 패권 이후는 Pax Universalis


지각변동은 혼돈이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굴기, 그로 인한 미중 패권전쟁은 세계질서를 무너뜨렸다. 미중 간의 디키플링과 신냉전, 문명충돌 양상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대침체·혼돈의 무질서는 세기적인 역사의 반복이다.   

   

100년 전 영미 간의 세력전이와 달리 서로 다른 문명의 끝판왕들인 미중 간의 세력전이는 평화로울 수 없다. 다중위기는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의 기회다. 혼돈과 신(新) 국제질서 사이에서의 시대적 과제는 집단지성을 구축하고 정치적 동력을 형성하는 일이다. 우선 패권의 실체를 성찰하고, 패권 이후 국제질서를 상상하면서 미래를 생각해 보자.


패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

     

패권 역사에서 미국의 패권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것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미국이 쇠락하면서 패권의 세계도 변하고 있다. 이제 강자는 과거 방식으로 약자를 지배할 수 없다. 약자들은 각성하고 저항한다.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 대결도 더 이상 주동적인 역학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세계가 새로운 권력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세계는 미국에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유 진영의 맹주, 서방세계의 수호자로서 미국은 사실상 은퇴했다. 미국의 대체 역은 어느 나라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패권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패권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다. 패권국이 돼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없다.

      

이렇듯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 붕괴는 패권국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懷疑) 뿐만 아니라 ‘패권안정론’의 적실성에도 의문을 갖게 한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서구 제국주의 산물인 근·현대의 패권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패권의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패권에는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첫째, 패권은 이익보다 부담이 더 크다.


패권 제국은 이전과 같이 패권을 행사하며 일방적으로 국익을 취할 수 없다. 각 지역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인터넷 정보화도 발달했다. 패권을 유지하는 게 득보다는 부담이 많게 된 것이다. 실제로 70여 년의 패권국인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다. 빚이 우리돈 4경 2천조 원이 넘는다. 치유하기 어려운 기저질환(미국병)에도 걸렸다. 미국 이후 세계를 리드하는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둘째, 미국 실패는 곧 패권안정론 실패다.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패권안정론은 패권국의 존재가 국제정치경제 질서의 안정에 필요조건이고,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전제한다. 그런데 실제는 미국의 ①패권적 지배가 곧 자유무역체제를 고무시키지 않았다. ②(트럼프 정부 때와 같이) 패권 쇠퇴 시에도 협력을 통해 질서의 안정은 가능했다. ③패권의 존재, 나아가 강한 패권국이 반드시 안정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이 굳건하게 존재한 중동 지역의 정세가 안정된 적이 별로 없었다. 미국의 리더십이 없는 지역에서도 국제사회의 협력·질서는 유지되었다. 어떤 지역의 정세는 패권 또는 패권국의 존재보다 정책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진정한 의미의 세계 패권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가 지지 않았던 대영제국도, 5대양을 장악한 미국도 전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미국은 과거에 소련을, 현재는 중국·러시아 등을 지배하고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전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이 될 수 없다. 전 세계에 힘을 투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전 세계의 미국화를 추구했다. 바다와 하늘, 우주, 사이버 공간 대부분을 지배해 왔다. 미국은 결국 지나친 패권의 무게·부담으로 무너졌다. 지구정치사는 미국을 유일의 마지막 세계 패권국으로 기록할 것이다.      


무엇보다, 차기 주자로 보이는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DNA와 역사에 미국식 패권은 없다. 패권 의지·능력, 매력도 부족하다. 만약 중국이 G1으로 부상한다면 중국은 미국 같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국의 안전·번영을 보장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시대와 같이 아시아 지역 패권국으로서 자국의 생존·안전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는 장사도 아니고, 존경을 받지도 못하며,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로 갈 리가 없다.      


패권국 없는 지구촌은 인류 희망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글로벌 리더십은 세계를 향해 지정학적 질서와 안보를 제공하는 국가를 의미했다. 지구적 질서를 강제할 물질적 능력과 이데올로기적인 메시지, 새로운 의제·제도를 갖춘 강하고 선한 나라였다.

      

현대의 패권은 ‘권위와 동의에 의한 세계 지배’에 그만큼의 책임과 역할, 이익이 강조되었다. 패권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입각한 규칙과 규범,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자명했다.  

   

냉전 종식 후 단극 패권국이 된 미국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었다. 견제받지 않는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절대 부패하고 타락하는 제국으로 변신해 쇠망의 길로 나아갔다. 미국이 추구한 신자유주의·세계화(= 세계의 미국화) 속에서 세계는 물론 미국 자신도 평화롭지 못했다.

     

패권은 서구 역사와 문화의 소산이다. 땅을 발견하는 나라나, 점령하는 나라가 맘대로 지배하는 것이 서구 열강 세계의 원칙이었다. 자유와 힘이 강조된 패권은 그들만의 정의였지 보편적인 정의는 아니었다. 지난 50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서구 패권국은 얼마나 정의로왔으며, 인류의 평화·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21세기 초인 지금, 세계 패권을 행사하고 싶다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에 의해서 지배받기에는 너무 크다.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 등 여러 지역 대국들도 상당한 힘을 갖고 있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세계인들은 정치적으로 각성해 균형과 신뢰, 정당성 없는 패권을 거부한다. 어느 일국이 패권을 행사하며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패권은 패권국이나 일반 국가에게도 편익은 적고, 그 비용·폐해가 커 매력 없는 것이 돼버렸다.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역사와 국제질서의 변화도 패권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패권은 패권이 아니다. 인류는 부질없는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이 지배해 온 패권과 제국, 패권주의와 제국주의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위기·변화는 새로운 가치·협력의 기회 

    

그렇다면 패권국이 없는 세계질서는 가능한가?

2차 세계 대전 후 국제연합(UN) 창설과 같이 전쟁과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낳는다. UN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 경제·사회·국제 협력 증진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유엔 헌장은 선의로 가득 찼다.   

   

전후 세계는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추구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패권이 변하면서 유엔은 세계 평화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했다. 유엔 안보리가 아닌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가 추구되었기 때문이다. 패권 제국이 된 미국은 유엔과 산하 기구들을 자국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 기구 정도로 여겼다.

     

유엔 창설을 주도했던 패권국 미국의 ‘맘대로 가’ 권위 없는 미국과 유엔, 유엔기구를 만들었다. 유엔을 무시하고, 자국 국익에 맞게 운영하려는 패권국의 탐욕은 ‘말뿐인 평화'만 양산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유엔은 강대국의 정치적 이익과 위선으로 오염돼 세계의 평화·번영에 기여하지 못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엔의 무기력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현실 권력정치에서 강대국들의 독재는 국제정치에서 일종의 자연법과도 같았다. 권력정치의 형상은 패권국의 입맛에 맞는 국제질서를 강요하고, 그것을 새로운 자유·평화로 이름 붙이는 것이었다. 지난 500여 년 동안 서구 패권의 “역사는 이상과 현실의 끝없는 투쟁”이라는 변명으로 무마돼 왔다.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세상과 질서를 부르고 있다. 코로나19는 세계적 차원의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전 지구적인 위협이었다. 인류가 지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한 계기가 됐다. 전염병과 인구절벽, 기후위기는 금세기 내에 지구촌의 운명이 끝날 것이라는 경고다.       


이럴진대, 강대국들이 서로 협력해 현실주의적 힘의 논리를 초월하고, 정의·평화를 촉진하는 국제질서를 건설할 수는 없을까? UN 창설 당시와 같이 세계 평화를 통한 국가들의 번영과 안전, 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것일까? 국이 아닌 인류가 공유하는 국제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이 갈등·재앙이 아니라 인류의 직관·통찰을 통해 2차 대전 후 수립한 대서양공동체와 같은 태평양공동체 건설을 제안했다. 중국 전문가인 전 싱가포르 리관유 수상은 중국이 역사상 가장 큰 행위자가 된 이상 세계가 새로운 균형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코헨 등 일군의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현존 국제제도들이 불충분하지만, 그것들을 점진적으로 수정·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요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호 협력을 증진함으로써 패권이 없는 세계평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미중 패권전쟁 후의 세계는 보다 평평한 세상이 될 것이다. 특정 강대국이 아닌, 대륙별로 통합된 세계화가 더욱 확대될 지구촌은 보다 다원화되고 민주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어떤 강대국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의 기회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내적으로 뉴딜정책, 대외적으로 세계적 위기에 걸맞은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해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근 100년 만의 역사의 반복이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몸부림에는 평화·번영에 생존이 더해져야 한다.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는 지구촌의 희망     


세계는 지금 진영의 가치·이데올로기보다 실리·국익을 우선하는 다극체제다. 자유·민주· 인권 운운하는 사람이나  나라치고 이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나라는 없었다. 과거와 같이 예외주의가 지배하는 무소불위 패권 제국의 오만과 위선이 설 땅은 없다. 인류의 집단지성이 바라는 바는 패권국이 없는 세계, 패권국의 힘에 일방적으로 지배 당하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그은 다시 ‘팍스 유니버설리스(Pax Universalis)’다.  

   

팍스 유니버설리스는 어떤 지역이나 국가의 관점과 이상을 초월하는 국제질서다. 이 질서의 형성에는 ①각자 힘의 크기만큼 권력을 분점하며 새로운 다자주의 규칙을 제정, 공존하는 방법과 ②다시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이 답을 다 내놓았다. 당초 미국은 패권 없는 또는 선한 패권의 세계를 추구했었다. 2차 대전 후에는 유엔의 창설·운영을 주도했다. 아래와 같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중국처럼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 케네디 전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 극복 후인 1963년 6월 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미국과 소련이) “당장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 1991년 9월 부시 대통령은 탈냉전 첫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가 아닌 서로 공유하는 책임·염원을 바탕으로 한 ‘팍스 유니버설리스’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권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보편주의, 즉 유엔을 통한 세계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 현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2020년 11월 대선 승리 연설에서 "미국은 패권적인 ‘힘의 과시'가 아니라 '모범적인 힘'으로 세계를 이끌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현 중국도  ‘팍스 유니버설리스’를 추구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보아오아시아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중국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가까이 있다. 미국의 약속과 중국의 공언은 사실 합의와 같은 것이다.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팍스 유니버설리스’는 2차 대전 후 인류가 추구해 온  이상이었다. 유엔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 질서에서는 국가 간의 분쟁 시 유엔헌장에 명시된 집단안전보장 체제를 통해 평화를 만들어 간다. 다양한 국제협약과 기구들을 통해 현안들을 관리한다.    

 

팍스 유니버설리스는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패권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최적의 방안이 될 것이다. 개별 국가들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은 다자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강대국인 미중 간의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 책임대국을 자처하는 양국은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유엔의 권능을 앞장서서 부활해야 한다. 양국이 보편적 가치 지향의 공조 속에서 유엔 중심의 다자외교를 했을 때 유엔을 통한 세계 평화와 번영이 가능하다.

     

미중 패권전쟁 상황에서 이 같은 이상들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팍스 유니버설리스 실현 가능성은 커질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다자주의와 인류공동운명체론을 주창해 왔다. 미중 이외의 다른 선진 중견국들이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그들이 나서서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 질서를 회복하며 미국과 중국의 공백을 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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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구정치는 미국의 단극패권과 같은 권력 집중이 일어날 수 없는 다자구조로 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패권을 행사하거나 자국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이 마지막 유일 패권국으로 남는 것이 역사의 이치고, 순리며,  발전이다.

    

2022년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주제는 “함께 하는 미래”였다.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 동계올림픽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다. 지구촌의 염원을 담은 슬로건들은 신냉전 양상의 미중 패권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은 용기와 통찰력, 정치적 대담성을 가지고 양국관계를 안정적인 발전의 궤도로 돌려놓아야 한다. 지구촌의 신냉전과 문명충돌은 모두가 파국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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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제15화를 끝으로 제2권 '미중 패권전쟁 현황과 전망'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매주 쉬지 않고 글을 올릴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여러 독자분들의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 2권의 글들을 재정리 마무리한 후, 나머지 2권 + 글쓰기 작업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지속적인 관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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