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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Feb 10. 2024

한국에서도 안 부쳐본 전을 프랑스에서

타지에서 설날을 보내는 방법



작년 설에는 남편과 오붓하게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일이라고 파이를 사무실에 가져간 날 (우리 회사에서는 생일인 사람이 케이크를 구워오거나 사 온다) 친한 동료들이 왜 미리 말을 안 했냐며 한잔하자고 하길래 설날을 핑계 삼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 집에 동료들을 초대한 것이 처음도 아니건만 메뉴 선정은 항상 어렵다. 한국 출장을 여러 번 다녀본 동료들은 오히려 쉽다. 그냥 삼겹살 좀 사서 집에서 구워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한국에 전혀 가보지 않았거나 아시아 음식은 프랑스식 퓨전 아시아(라고 퉁치기엔 나라도 음식도 너무나 다양한 것을..) 음식만 먹어본 동료들에게는 뭔가 '제대로 된' 한식을 소개하고 싶다.


여태 반응이 좋았던 메뉴를 되새겨 보자. 김밥(설에 김밥은 좀..), 치킨(설에 치킨도 좀.. 아직 남들에겐 선보이지 않았지만 남편은 매우 좋아함. 근데 남편은 프랑스인이라고 하기엔 한국패치가 너무 심하게 되어서 그의 의견은 대체로 반영되지 않음).. 그리고 매운 음식은 제외.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앙트레는 집에 잔뜩 남은 감자와 애호박으로 전을 만들고, 만두와 떡을 조금 넣은 미니 떡만둣국과 버섯 잡채(다른 동료들도, 시댁 식구들도 좋아했던 메뉴)를 내고, 메인은 갈비찜과 밥을 하기로 했다.




김식당 설날 메뉴


Apero (식전주와 간단한 안주)

화요 / 샤도네이

조각 치즈 / 크래커 / 과일


Entrées chauds (따뜻한 전식)

감자채 전 / 애호박 전 / 잡채

미니 떡만둣국


Plat (메인 메뉴)

갈비찜 / 밥

 

Dessert (디저트)

브라우니 / 바닐라 아이스크림



할까말까 고민했던 잡채가 인이 많았음
애호박전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남았다 ㅠㅠ
만둣국을 끓이다 만두 하나가 터졌길래 내가 먹음


금요일 저녁 7까지 오라고 했고 내가 5시까지 회의가 있으니, 퇴근하고 나서 뭔가 준비할 시간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 전날인 목요일에 전은 다 부쳐놓고 갈비찜도 미리 만들었다. 잡채도 야채는 대충 준비해 놓고 달걀지단도 미리 부쳐 두었다.


아.. 한국에서도 안 부쳐본 전을 프랑스에서 부치고 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명절에 엄마랑 작은엄마가 전 부친다고 고생할 때 옆에 앉아서 좀 보면서 배울걸. 어릴 땐 제사도 싫고 여자들만 고생하는 명절도 제사음식도 다 싫었는데 막상 해외에 나와있으니 명절에 먹던 음식들이 그립다.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자진해서 전을 부치고 있을 줄이야. 심지어 지지난주말에는 설에 떡만둣국 먹을 거라고 만두피를 만들어서 손만두도 빚었다. 나는 왜 이 프랑스 시골 촌구석에서 장금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냐 대체.


온 집안에 전냄새, 갈비찜 냄새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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