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를 보내고 집안일을 한 뒤 약간의 하이퍼 상태로 집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두둑.
분명히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기도 전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살 짝 돌아간 발목을 내 뾰족한 엉덩이로 깔고 앉은 것이다. 엉덩이를 치우고, 어긋난 발목을 원래대로 맞추니 붓기 시작한다.
'망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심지어 핸드폰도 두고 나왔다.
마침 근처에서 택배기사님이 저걸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하시면서 느릿느릿 택배를 정리하고 계셨다. 때론 여자의 추태는 눈 감아 주는 것이 예의니까.
"저 죄송한데, 좀 도와주세요"
"아이고, 다치셨어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그런데,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네, 쓰세요, 쓰세요."
택배기사님은 바쁘신 와중에도 선뜻 업무폰을 내어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번호라 그런지 받지 않았다.
그 사이 경비아저씨 두 분과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고, 직접 옆동 엄마네로 가서 딸의 부상 소식을 알려주셨다.
나온 것은 4개월째 엄마네서 산후조리 중이던 동생이었다.
"언니, 미쳤어?"
이것이 내가 들은 첫마디였다. 그래. 내가 지금 다칠 때가 아니긴 하지.......
나는 죄인처럼 우리 아들의 하교를 부탁하고는 119에 홀로 실려갔다.
다행히 응급실에는 환자가 별로 없어서 바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도 없어서 점심시간쯤 진료를 볼 수 있었고, 심지어 족부 담당 교수님은 휴가로 출타 중이셨다.
"부러지셨고, 수술받으시고 나면 깁스 3개월 정도 하실 거 같아요. 바로 입원하시면 됩니다."
"네? 수술이요? 저 아이가 있어서 집에 가야 해요!"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우측 발목뼈 두 개가 다 부러지셔서 철심을 대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얼마나 입원해야 하나요?"
"교수님이 휴가 중이시라 다음 주 화요일에 수술이 가능하고, 한 일주일?"
"안 돼요! 집에 가야 하요!"
의사입장에선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다친 사람 입원시켜 주고, 수술시켜 준다는데 왜 이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가 걱정되어 응급처치만 받고 집으로 왔다.
그렇다. 가장 먼저 걱정된 것은 아이였다.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나중에 큰 효도받아야 하는 엄마로.......
위험한 짓 아니면 혼내는 일이 거의 없고, 학습 학원도 안 보내고, 오프날에는 무조건 놀이터에서 두세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한창 레고에 빠져있을 때는 엉덩이가 아플 때까지 앉아서 함께 조립하고 놀아줬다.
혹 아이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면 함께해 준다. 겨울이면 매주 스키장도 데리고 다니고, 골프와 주짓수도 함께 배우고 있으며, 최근에는 롱보드도 같이 입문했다.
아이 취향에 맞는 재밌는 책을 주문해 매일 밤 읽어주고, 뛰어노느라 애쓴 팔다리를 정성스레 주물러 재워준다.
원래 이런 엄마는 아니었다. 일하느라 늘 바빴고 그냥 귀여워만 해 줬지, 엄마답지 않았다. 푸근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아이는 섬세한 기질을 타고나서 다루기가 어려운 아이다. 꽤 예민하고 불안도도 높다. 이제라도 아이 마음을 잘 돌봐줘야겠다는 결심에 일도 줄이고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발이 이렇게 묶여버리니 '우리 아들은 이제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이다.
엄마랑 함께하던 일들, 안정감을 주던 루틴들, 우리 엄마는 평생 내 곁에 있을 거라는 동화 같은 믿음을 지켜줘야 하는데.......
아들아,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잘 지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