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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Feb 06. 2024

트집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말꼬리에 잡히기 시작했다.

첫 강의를 끝냈다.


 16년 전 일이지만 또렷이 기억한다. 학원에서 집까지 멀지 않은 거리 몇 십리 걷듯이 걸어왔다.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온몸을 끌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강의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긴장감은 몰려왔고, 학생들의 눈과 마주치자마자 긴장감은 거칠게 나를 휘어 감았다. 결국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내 고개는 힘없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건 자신 있었다. 수업 전에 미리 교재를 받아와서 많이 읽어두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내용은 줄을 몇 번씩 쳐가며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 설명을 빼곡히 써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직종이어서 시험에 주로 출제된다는 문제도 단원별로 풀어보고 체크를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만족스러운 대응책은 아니었다. 눈 맞춤을 피해 책을 읽다 보니 내 고개 다음으로 학생들의 고개도 한 명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낮에 일 하고 수업을 듣는 야간반이었기에 내 강의는 자장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었다.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의 기회를 준 원장님 조차도 강의 기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첫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거운 이유였을 것이다. 앞으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함도 있었지만 그 어떤 연극도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강의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책 내용만 잘 전달하면 강의는 만족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자만이자 오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애써 달래고 달래 보았다.


한주 동안 나는 오로지 내 자신을 보듬어 끌어안는 일에 집중했다. 가까스로 충전시킨 자신감으로 두 번째 강의장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강의장 안에는 한주 전보다 눈에 띄게 학생 수가 줄어 있었다. 개인사정에 의해 수업을 빠질 수도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 시작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피곤해서 잠시 누웠다가 시작된 것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또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번 강의와 다르게 수업 중간에  손을 들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생겼다.     


“강사님, 너무 졸려요. 다른 분들 수업은 이 정도는 아니거든요.”     


나도 알고 있는 내 문제를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학생이 생겼다. 지난번 보다 학생 수가 줄어든 것은 내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어 일부러 빠진 학생들이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생은 어차피 졸음과 만나게 될 거라면 처음부터 편하게 자버리는 것을 선택한 학생이다.     


공개적으로 손을 들고 이야기 한 학생은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대표로 전달한 학생이다.    

 

난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한 주 동안 애써 달래며 왔던 자신감은 바로 꼬리를 내리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대로 강의장 문을 열고 나가도 어느 누구 하나 잡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유가 있는 트집이라 부정할 수도 없었다. 조그마한  흠이 아니라 너무나도 큰 흠이기에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버텼다. 그냥 그렇게 버텼다.


 아무렇지 않게 책을 다시 읽고 싶었지만 울컥 거리는 목소리는 위아래를 거침없이 요동치며 흘러갔다.     


“강사님 그건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이해될 수 있게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못 알아듣겠습니다.”   

   

내가 강의장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못 마땅했는지 이제는 말꼬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해는 강사만 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온전히 전달이 되어야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달기법이 미숙하다면 그건 독식일 뿐이다. 강사가 승자독식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다 내어주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런데 초임강사였던 나는 그런 기술이 없었다.


두 번째 강의는 트집에 한 없이 흔들리고, 말꼬리에 잡혀 만신창이가 되었던 날이었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과연 이곳에 빛은 찾아오는 것일까?     


학생들과 한 판 전쟁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장님도 이 전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중재도 하지 않으셨다. 그건 나를 테스트하기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편이 되어 주려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첫 강의를 시작하고 두 달 내내 전쟁 중인 것을 알면서도 주간 전임강사 스카우트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지만 강의장에 설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주어 빨리 대처 능력을 길러 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때마침 요양보호사 양성 교육원을 추가로 개설하게 되어 그곳에서 낮 강의를 할 강사가 필요하기도 했었다.     


트집에 흔들리고 말꼬리에 잡히더라고 오뚝이처럼 다시 강의장에 오고 있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그 배려 덕분에 여성병원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 전임강사와 간호조무사 야간 강사를 겸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트집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요양보호사 양성강의를 시작한 나이는 27살이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간호조무사 학생들보다 더 많은 연령대의 학생들이다.


 나이도 어린 강사가 노인에 대해 무엇을 가르칠 건지 그저 한탄스러운 눈빛을 보내오는 분들이 많았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걸터앉아 거만히 나를 쳐다보는 학생도 있었다.      


졸음을 몰아내는 방법과 이해를 돕는 방법은 연구를 하고 찾아내면 된다지만 어린 강사가 나이 든 강사로 탈바꿈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은 지속적으로 나를 엄습해 왔다.


난  결국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강의를 시작한 초임강사이다 보니 부족함 덩어리입니다. 그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부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병원도 그만두었으니 이곳에서 퇴출이 된다면 그대로 실업자가 되고 만다. 오로지 내 관심은 이제 하나가 되었다.    

 

“강의장에서 퇴출만큼은 막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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