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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Feb 13. 2024

강의장에서 퇴출만큼은 막아내자.

웃을 때는 눈가 주름이 많이 잡히는구나!

입 꼬리는 많이 안 올라가네.     


 멋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거울 속 내 모습과 잦은 만남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강의장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한 작전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수행과제가 자연스러운 눈 맞춤을 해보자는 것이다.     


일방통행 길을 달려가는 사람처럼 수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방향으로만 내달림을 하고 있으니 책에 쓰여 있는 글자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강의하는 과정은 책 내용을 가공하는 수업은 아니다. 그러나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가공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것이 강사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몫이다.    

 

사람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지는 이해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관계가 좋지 않다면 그건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내용에 앞서 신뢰관계를 다듬어 가기로 한 것이다. 만남 자체를 소중히 생각하는 태도를 갖추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학생들이 가진 조건들을 하나씩 벗겨 내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러 온 사람도 아니요, 무엇을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도 아니요, 선생을 평가하기 위한 학생도 아니요.


이렇게 모든 조건들을 벗겨내고 나니 그 자리는 하나만 남았다.  

    

한 사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 내 눈에 유영을 허락할 수 있었다. 책에 고정된 눈이 아니라 학생들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눈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내 눈이 어느 곳을 향한 유영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한 번 바라봐 주는 누군가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마주침의 순간을 기다리며 표정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마주침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런 말없이 2초 이상을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무언의 압박처럼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몇 초 밖에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오로지 당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진심만을 담아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가슴이 일렁이는 꿈을 그려가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담아주고 싶습니다. 우리 이제 그 길을 함께 걸어 봐요.”  

   

거울 속 내 눈빛이 이런 마음을 담아갈 때쯤 두 번째 수행과제를 꺼내왔다.


교재의 전체내용을 통찰해 보자는 것이다. 한 명의 강사가 교과서 한 권을 모두 수업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배정받은 과목에 대한 공부만 하고 그 내용만 전달하는 강사들도 있다.     


(전임강사가 되어 시간표를 작성하다 보면 새로운 과목을 배정했을 때 거절을 하는 강사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한 과목 외에 다른 과목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 부분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과목 전체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생겨난 계기를 담고 있는 사회현상부터 이 직업의 필요성, 앞으로의 전망을 다루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를 보는 것이고 또한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읽어갈 수 있는 안목이다. 이 안목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관심은 내 수업에 집중이 되고 목적이 이끄는 수업으로 갈 수 있다.


이 안목을 길러내기 위해 교과목의 목차를 외울 정도로 읽었다.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모든 부분을 읽어가며 단원별 연결점을 찾기 시작했다.    

  

간호사 여서 간호파트만 읽고 가르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회복지 파트는 알 때까지 더 많이 읽고 공부했다. 이런 공부 덕분에 지금은 어느 파트를 배정해도 모두 강의할 수 있다. 더불어 연결지점을 설명할 수 있기에 공부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소양을 길러내는 교양 수업도 가능하다.


 국가시험이 도입된 이후(2010년)부터는 단원별 콜라보레이션 문제도 알려줄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모든 노하우를 전달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강의를 위한 도약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교과서 전체를 파악하는 시도를 하길 바란다. 그 시도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자신감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학생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눈 맞춤을 통해 보냈던 텔레파시에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고, 수업의 목적성이 명확해지면서 함께 걷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세 번째 수행과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알게 된 이론이지만 난 이미 초보강사 시절에 휴머니튜드에 대한 기술을 온갖 시도를 통해 익혀가고 있었다.   

   

휴머니 튜드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라는 뜻이다. 그 기술은 바라보기-말히가-접촉하기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나도 이 순서에 맞게 실기수업을 통해 접촉하기를 적용했다. 첫 강의를 하던 2008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과정에 시험이 없었다. 교육원 수업과 현장실습만 수료하면 자격증이 발급되던 때다. 그래서 더 과감히 실기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교과 과정 안에서 다루지 않는 실기도 수업으로 끌고 왔다.     


손발 닦아주기 수업에서는 손발 마사지법을 동영상 보며 같이 익혀갔고, 등 닦아주기 수업에서는 등 마사지도 했다. 심폐소생술 실기를 하기 위한 마네킹이 필수 장비가 아니었지만 원장님께 장비 구입 요청을 드리고 그 마네킹으로 실기도 진행했다. 이런 실기 수업을 하다 보면 손과 손이 맞닿고 가슴과 가슴이 맞닿을 수밖에 없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손길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지그시 잡아주는 손길 하나로 느끼는 감정은 격려의 마음이고, 지그시 맞닿는 가슴이 전해주는 감정은 사랑의 마음이다.    

 

실기 수업을 하고 나면 모든 학생들의 표정은 함박꽃이 된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면서 주고받은 사랑의 호르몬들이 피워낸 꽃이다. 이 과정 덕분에 16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실기수업을 소중히 생각하는 강사로 남아있다.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강사이다 보니 부족함 덩어리입니다. 그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부탁에 담았던 마음은 기다려 달라는 애절함이었다.     


너그럽게 포용하고 눈감아 달라는 말이 아니라 채워가는 노력을 봐달라는 말이었다.

  

"세상에 마법이라는 게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_ 영화<비포 선라이즈>


모든 시도가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처음 보다 조금은 더 발전된 모습을 갖출 수는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보는 마음이 기다림이다.     


그러니 초보는 절대 시도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해보지도 않고 된다, 안 된다 를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만 명심한다면 퇴출은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고 사소함으로 남아있지만 가장 크게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세 가지만 이글에서 다루었다.


 구체적인 더 많은 방법은 다음 회차에서 하나씩 풀어가고자 한다.     


초보여서 할 수 있었다.

능숙하지 못해 할 수 있었다.

내가 처해 있는 그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었다.

오로지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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