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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Feb 27. 2024

메모, 메모를 했다. 미친 듯이 썼다.

강의장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날이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거나, 고개를 살짝 떨구는 학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졸음과 한참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 그림이 찾아지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구급차처럼 나도 바로 출동을 해야 하기에 만만의 준비를 해두었다.     


내가 급히 달려가는 출동은 책 한 구석에 적힌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난 타고난 유머나 재치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우스개 소리를 잘하는 강사가 되었다.     


초임 강사 시절 책에 열심히 적어 두었던 유머 덕분이다. “졸음 제조기”라는 별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센스 퀴즈처럼 알고 나면 약간 시시하지만 웃음소리를 자아내기에는 충분한 내용 들이 유머북 안에 있다. 서점에서 몇 권 구매해서 내가 읽어도 피식 소리가 나는 내용들을 군데군데 적어 두었다.    

 

단순히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대모사하듯이 상황을 상상하며 연기 연습도 했었다.   

   

나의 이런 모습에 모두가 웃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몇 명의 웃음소리만 있어도 졸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기에는 충분했다. 내 메모는 이렇게 유머가 담긴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다음으로 시도한 것이 책에서 얻은 지혜들이다. 어떤 책을 읽어도 요양보호사 표준교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건강과 관련된 책은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에 적용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은 이미 브런치북으로 발간한 [노년을 상상하는 중입니다.]의 건강 편에 서술되어 있다.     


인문학과 관련된 책은 노인의 심리와 사회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단순히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얻은 내용은 모두 요양보호사 양성교재로 넘겨 구석구석 메모를 하고 있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려고 한다.


유현준 교수님의 건축과 관련된 책에서는 “팬옵티콘”의 설계 원리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었다.      


팬옵티콘은 18세기말, 벤담이 이상적인 교도소로서 고안한 건축물로 ‘일망 감시 시설’이라고도 한다. 단지 건축의 형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의 형태이며 사람이 사람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출처:나무위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는 ‘주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의미이다.


타인에 대한 감시를 의식해서 내 행동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누가 보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스스로의 감시로도 행동의 변화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요양보호사가 해주어야 하는 돌봄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돌봄의 가치가 가장 하락하는 순간이 전적 돌봄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감시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돌봄이 어디서든 우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들을 설명할 때마다 난 읽어두었던 책 속의 이야기를 예시로 사용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이야기는 없다. 더불어 쓸모없는 책도 없다.


 단지 읽는 독자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 쓸모를 잘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일단 메모다. 메모가 되어야 사색도 가능하고 사색의 종점에서 만나는 것이 가치 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가 곧 쓸모가 된다.

    

공부 복습과 정리도 메모로 시작했다. 교재 내용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는 것을 즐겨하고 있었기에 학생들과도 종종 했던 내용이다. 쓰면서 익히는 공부법의 효과를 그때 알았다.

너울이 마인드맵으로 정리한 교과내용

(유튜브에서 발견하시고 너무  좋다고 캡처해서 보내주신 자료이다.)


암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리를 잘해두며 된다. 마인드맵만큼 한눈에 모든 내용을 관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 방법을 알고 난 후 단원별로 마인드맵으로 정리를 했고 최근 출제된 문제집의 요약정리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이 되었다.     


지금도 꾸준히 메모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보다 손으로 적는 글씨는 많이 줄어들었다.


블로그나 브런치라는 플랫폼 덕분이다. 이곳에 요양보호사 양성과 관련해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들을 차곡히 글로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들은 모두 단체 카카오톡 방에 링크로 전달한다. 수업을 하다가 언제든 필요할 때는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같이 읽어가며 이해하고 추가적인 설명도 한다. 가끔은 링크에 담긴 영상을 시청하며 이해를 돕기도 한다.


빨리 따라올 수 없어 답답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서로가 도와주다 보면 그건 결코 넘지 못할 만큼의 어려움은 아니다.   

  

이렇게 서로 도와주면서 배우고 익힌 내용들이라 더 오래 기억하고 소중히 생각한다. 수업이 종료된 후에도 단톡방 링크에 담긴 글을 읽으며 복습 후에 인증을 찍어 남겨주시기도 한다.    

 

나를 위해 메모를 했던 시간이 너를 위한 메모가 되어 주었고,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한 메모가 되어간다.     


블로그와 유튜브, 브런치에 강의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이 글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요양보호사 초임강사들이다.


2021년 첫 블로그를 시작으로 만 3년 동안 작성한 글만 1,110개가 넘어갔다. 매일 같이 써 왔던 글이 글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도 유튜브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적혔다.

블로그에서 인지활동 수업  내용을 참고하고 계신 강사님 댓글이다.

가끔은 내가 작성한 내용을 강의에 사용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그때 난 거침없이 내어준다. 아무 말도 없이 또는 출처도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용여부를 물어본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다. 이분들에게는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사용하셔도 된다는 말을 먼저 건네 드린다.     


이처럼 내 메모는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메모를 하지 않고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면 오늘과 같은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메모는 내 삶의 역사와 같다. 생각과 마음속에 아무리 오래 간직하고 싶은 내용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거나 때로는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메모는 그 당시의 모든 상황과 감정까지 담고 있기에 절대 배신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배신 없이 의리를 지켜가며 나의 흔적을 역사로 남기고 싶다면 오늘 당장 메모를 시작해 보시길 권장한다.   

  

내 강의 16년 프라이드를 지켜준 또 하나의 버팀목은 책에 이어 메모였다.          

이전 04화 책, 책을 읽었다. 미친 듯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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