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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Mar 12. 2024

감동을 넘어 눈시울을 붉힌 눈물을 흘리게 했다.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놓아 버리는 순간이 눈물이요.

서러움을 견딜 수 없어 놓쳐버리는 순간이 눈물이요.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몸서리치는 순간이 눈물이다.    

 

눈물은 백기를 들며 항복을 외치는 순간과 비슷하다. 그러나 패배의 항복이 아니다.  또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잠시 멈춤을 했을 뿐이다.    

 

한 고비를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조절해야 할 것이 호흡인 것처럼 삶의 고비를 넘는 순간에도 눈물은 항상 동행한다.    

 

내가 걸어온 삶은 그랬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눈물과 마주하는 순간을 소중히 오래 기억한다. 나에게 찾아왔던 아픔과 서러움과 그리움을 “감동”이라는 글자 안에 넣어 준 촉매제가 눈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주했던 나의 눈물들은 이제 내 강의를 듣는 제자들의 마음을 적시기 시작했다.    

 

교수님, 제 마음 한쪽에 구겨진 마음이 이제야 펴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졸업이라는 최종학력이 만들어 놓은 아픔이다. 그런데 내 수업을 듣고 그 아픔과 이별을 선언하겠다고 찾아오신 것이다.     


요양보호사 양성강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대한민국 경제 흐름도를 설명한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60,70년대는 육체적 노동이 경제 흐름의 주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80,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초반까지 지식 노동이 그 흐름을 이어받는다.      


최종학력을 자랑하고 학교를 자랑하고 성적을 자랑하던 시대다. 이 역시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닌 과거가 되었다. 아직 잔재들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마저도 과거로 묻히게 될 거라는 것이다.     


지금은 감정 노동 시대다.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서든 환호받는 세상이다.


 요양보호사 역시 이 흐름을 제대로 타고 있는 직군이다. 힘을 자랑하는 요양보호사에게는 곰처럼 무던히 일만 하니 재미없다는 말을 한다. 똑똑한 지식을 자랑하는 요양보호사에게는 아는 것 많아 좋겠다며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고 싫어한다.

 그럼 가장 선호하는 요양보호사는 어떤 자질을 가진 사람인가?     


힘과 잘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능력을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력이 짧은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고학력자 이면서도 공감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용기 잃지 말고 시험도 도전하고 일도 시작하라는 말을 전한다. 이런 나의 메시지가 구겨진 그 마음에 다림질을 한 것이다.    

 

나에게도 저능아라는 낙인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아이큐로 지능을 평가했을 때다, 그때 내 아이큐는 98, 전교생 중에 두 자리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그 낙인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노력의 대가로 100점이라는 점수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험지는 커닝한 것 아니냐는 오해가 되어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난 아주 많은 눈물을 만났었다.     


이 기억은 나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다. 최종학력이 짧아 마음 한쪽이 구겨진 제자처럼 나 역시도 저능아의 낙인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낙인에게 내 발목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지능 덕분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더 많을 글을 쓸 수 있었으며 오기를 가지고 끝까지 파고드는 끈기를 얻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해도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소통 능력도 만들었다.


그러니 그 어떤 약점에도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그저 그 약점에 당당히 맞서며 나만의 이유를 찾아간다면 반드시 그 종착지에서 만나는 것은 절망이 아닌 감사와 희망이다.    

  

교수님, 이제 억울하지도 서럽지도 않습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퇴직을 한 후 남은 여생을 여유 있게 지내다 가는 그런 삶이 로망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평균수명이 60대 일 때나 가능했다.


어느덧 평균수명은 80대를 넘어갔고, 이전 보다 20~30년을 더 오래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노년을 맞이하는 분들의 과제가 된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기본 생계유지를 위한 생활자금이다. 한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연금을 받으며 넉넉히 사는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이 매달 주는 용돈이 있어 여유를 가지며 살아가는데 이런저런 것 하나도 없이 여전히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현실이 서럽다고 했다.  

   

나도 이런 서러움을 조금은 안다.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부부 모임에 가면 언제나 일을 하고 있는 여자는 나 한 사람뿐이었다.   

  

결혼 후 잠시 쉬고 싶거나 육아를 위해 휴직을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휴직이란 사치와 같았다.


난 왜 이렇게 일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억울하고 서러워 울던 날도 많았다.    

  

전염성 눈병에 걸려 유치원 등원을 못하게 된 아이들을 맡길 사람이 없어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날도 있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야간 강의를 해야 할 때는 할아버지가 일하는 경비실, 할머니가 일하는 식당 놀이방에서  아이들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흘린 눈물들이 지금 내가 그 어떤 것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요양보호사 양성 강사 16년 경력을 만들어 주었다.     

 

나 역시도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강의를 하고 또 다른 일을 하는 모든 목적은 생계유지를 뛰어넘은 지 꽤 되었다.

    

일의 의미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생계 유지형(노동)-나의 재미형(직업)-너의 재미형(천직)“


생계 유지형으로 시작을 했더라도 반드시 그 안에서 나의 재미를 찾아야 내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때 비로소 일은 직업이 된다.


그러나 이곳까지 왔다면 한 단계 더 올라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의 재미를 찾아가는 천직이다.

     

나의 성장을 통해 얻고 누렸던 모든 것들을 멈추지 않고 누리려면 반드시 흘려보내야 한다. 그때 모든 일에 보람이 찾아온다.    

  

나의 16년은 이 단계까지 이르게 해 주었다.  내가 걸어왔던 모든 과정들은 SNS와 강의를 통해 나눔이 시작되었고, 나와 같은 꿈을 그리며 가는 분들에게 컨설팅 의뢰를 받고 있다.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시작했던 노동은 이제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그러니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궁핍함은 서러움이 아닌 축복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다.     


이런 강의를 하면 억울함과 서러움을 모두 뒤로 밀어내고 “용기와 도전”을 앞세워 나가고자 하는 분들을 만난다. 이 시간 또한 천직형으로 살아가는 증거다.     


그렇게 떠나보낸 내 엄마, 이제는 그립고 그립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미움만큼은 덜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치매 수업을 하면 이런 말을 전하러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이미 수업을 하며 눈물을 흘렸기에 눈가는 빨갛게 물이 들어 있다.     


치매로 인해 오고 갔던 시간들 안에 “오해”라는 단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 그러시는 건데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치매로 인해 나타나는 인지저하 행동과 문제 행동들은 치매 병에 의한 증상일 뿐이다. 어린아이가 컵으로 물을 마시다 바닥에 흘릴 때 “왜 흘리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니까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매 어르신들의 문제행동을 보며 “왜 그러시는 건데요?”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치매 어르신의 문제가 아니라 치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돌봄자의 문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오해하지 않는다. 알게 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오해를 풀기 위해  치매라는 병이 아닌 치매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수업을 한다.     


그 수업을 듣고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오해를 풀고 싶고, 미안함을 전해주고 싶어 그렇게 나에게로 온다.   

  

나에게도 여전히 그 미안함을 전해주지 못한 사람이 있다. 어릴 적부터 나를 키워준 내 할머니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질병과 싸우다 외롭게 돌아가셨다. 그 외로움을 덜어드리지 못한 시간이 이내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나이가 조금 많은 분들이 제자샘으로 올 때 관심을 더 갖는 이유다. 내 할머니에게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덜어 보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픔, 서러움, 그리움이 다가올 때마다 쏟아냈던 내 눈물들이 이제는 제자샘들 마음과 맞닿는 지점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느 날부터 나를 찾아오는 발걸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발걸음에 나는 오늘도 감사함을 전한다. 아니, 무수히 흘렸던 눈물에게 감사하다.   

  

울보라는 별명이 이제는 오히려 좋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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