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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Mar 05. 2024

생각, 생각을 했다. 미친 듯이 사색했다.


“인종, 연령, 성별, 성격, 종교, 경제적 지위, 정치적 신념, 신체·정신적 장애, 기타 개인적 선호 등을 이유로 대상자를 차별 대우 하지 않는다.”     


요양보호사의 직업윤리 제1원칙이다. 양성교재에 수록된 직업윤리 원칙의 종류는 열한 가지이다.


난 번호가 기입된 내용의 문서는 아무리 많은 번호를 서술했더라도 언제나 첫 번째 원칙에 가장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내용 중 하나가 첫 번째의 중요성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만 제대로 헤아리고 실천할 수 있다면 열 가지는 덤으로 얹어 갈 수도 있다.     


제1원칙의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을 차별 대우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부터 배워 온 학습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쉽게 이해되는 문장은 지식으로만 머무르기에 쉽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시간들이 있다. 지식만 가득한 머리는 냉철해지는 것이 아니다. 편견도 아집도 고집도 자만도 모두 그 머리에서 시작이 된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난 앞으로도 배움의 자리에 있기를 욕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생각이고 사색이다. 모든 문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문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제1원칙을 사색하며 만난 결과물을 이곳에서도 전해 보려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혼자 살 수가 없기에 둘 이상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배움도 결국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차별대우 하지 않으려면 이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관계에서 가끔은 착각과 마주할 때가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만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배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청출어람과 반면교사이다. 제대로 된 스승에게 제대로 된 제자가 양성되고 가끔은 그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가 통하지 않는 스승을 만나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과정도 결국 배움의 길이다. 반면교사가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는 스승과 제자처럼 배움이 성립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결국 그 사람이 내 삶의 스승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차별할 수 있을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배움의 가치를 전달해 주는 사람들인데 왜 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인가?

     

물론 감정이 앞서는 것이 인간이라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감정이 앞서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감정 역시 생각과 사색을 만나게 되면 시간이 걸릴 뿐 모두 정화할 수 있다. 거르고 거른 거름망 위에 남아야 할 것은 언제나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여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사색을 중심에 두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삶 속에 들어차면 어떤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그  사람 앞에서는 장벽이 되지 못한다. 이 원리를 공유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고, 오늘도 그 경험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함께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그때 구체적인 방법들을 하나씩 제시한다. 그 내용은 이미 표준교재에 기술이 되어있다.     


마음 밭을 가꾸지 않은 상태에서 심는 씨앗은 열매를 맺기도 어렵다. 감동과 좋은 기분만 남기는 강의를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한다.  

   

나는 강의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늘 이렇게 대답한다.     


“강의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감상평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낼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제1원칙을 읽어주는 수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원칙이니 준수하셔야 한다는 말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럼 누구나 할 수 없는 말을 해주어야 특별한 시간이 되는 것 아닌가?     


그건 누구나 쉽게 찾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고, 누구나 쉽게 제공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난 강의할 때마다 이 내용을 유념해 두었다.   

   

초임강사 시절 학생들에게 잡히던 말꼬리와 트집을 이제는 내가 먼저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선방”이라는 작전을 실행 중이다.

    

요양보호사 양성교재를 16년 동안 읽었다. 1년에 한 권 완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읽는다. 1년이면 12번 , 16년이면 190번을 넘게 읽었다.     


세종대왕의 독서법으로 유명한 “백독백습”을 자의가 아닌 직업 때문에 하게 된 것이다.


백 번 읽고 백 번 쓰라는 뜻인데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작가의 마음이 보이며 더 깊은 묵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사색이 되어 나의 세 번째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아직 백번 이상을 쓰지는 못했지만 강의하며 묵독을 통해 깨달은 내용들을 블로그나 브런치, 인스타 그램을  통해 열심히 적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멈추지만 않는 다면 언젠가 백번을 쓰게 될 날도 올 거라 믿는다. 세종대왕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따라가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만나 요양보호사 양성 강의를 듣게 될 제자들에게만큼은 성군 같은 강사로 남고 싶다.  

   

내 삶을 바꾸고 다른 이의 삶에 희망을 던져주는 성군,

오늘도 강의장에 서서 열의를 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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