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Jan 30. 2024

초임강사는 임신 12주 차 임산부였다.

아랫배가 살짝 불러오기 시작하자 기쁜 마음만큼 걱정도 늘어갔다. 혼자가 아닌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와 함께 강의장에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한 몸으로 병원 일만 해도 피곤이 몰려오기 일쑤였으나 그 피곤보다 더 강하게 몰려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를 뒤로 하고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결혼자금과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한 모든 자금은 대출로 대신했다. 차곡히 늘어갈 빚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보고자 선택한 것이 투잡이다.      


종합 병원 퇴사 후 지인의 소개로 여성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간호조무사 실습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고, 간호조무사 양성강의를 간호사가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밤 근무와 교대근무가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야간 강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교차로 구인광고란을 살펴보았다. 감사하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간호조무사 학원에서 야간 강사를 구하고 있었다.     


이력서를 작성해서 학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내 경력이라고는 종합병원 임상경력 4년 외에 내세울 것도 더 추가할 것도 없었다.      


원장님과 이력서에 적힌 병원 경력을 잠시 이야기했다. 강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무경험자였기에 고민이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임산부라는 것을 알려드려야 할지 여부는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임산부를 선뜻 채용해 줄 직장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있는 그대로 모두 말씀을 드렸다.  

    

“원장님, 강의 경험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임신 초기입니다. 그런데 꼭 강의하고 싶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원장님은 더 이상 묻지 않으셨고,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나오라며 책을 건네주셨다. 내 첫 강의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아주 먼 시간이 지나 강의 기회를 주신 이유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그 질문에 원장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   

  

“김 선생, 임신은 채용하는 데 있어서 걱정해야 할 조건이 아니었어. 임신한 몸으로 투잡을 할 생각까지 했다면 체력이 부진해서 강의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가 걱정했던 것은 오직 하나야. 초보강사가 강의장을 떠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의 반응이자 평가를 못 견디고  주저앉게 되는 거야.”  

   

이 대답은 강의경력이 만 3년이 되고 서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나 첫 강의장에 세워주신 원장님과 함께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평가나 비난으로 마음 한쪽이 스산히 아려올 때 한 번씩 전화나 문자를 한다.     


 “원장님, 잘 지내시죠?”


 “그럼, 김 선생도 잘 지내지? 여전히 강의 잘하고 있고?”


 “그럼요, 원장님! 오늘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짧게나마 주고받는 메시지로도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헤아려지는 그런 사이로 남아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이 가끔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시작하게 된 이유다. 나도 그 질문을 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난 원대하고, 위대하고, 거창한 이유로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며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저 내 집 앞에 쌓인 쓰레기가 보기 싫어 줍는 사람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나에게 강의란  경제적 가난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난함을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다. 대학교 학비를 내야 하는 날짜가 아르바이트 월급날보다 빨라 어쩔 수 없이 가불을 해야 하는 날도 있었고, 아르바이트 비용을 주지 않으려고 도망간 사장님을 찾아 헤매며 돌아다닌 날도 있었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가난은 불행이 아닌 불편함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16년이 지난 오늘도 이 이유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생계유지가 이유라면 오히려 감사해라. 아니, 더 당당해져라. 그 어떤 핑계도 들이댈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먹고살만한 사람은 아무 일이나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며 핑곗거리를 찾을 것이다. 오히려 찾아도 찾을  것이 없는 상황이 큰 축복이기도 하다.


때론 칠흑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곳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 치다 보면 나만의 방법 찾을 수 있다.


난 오늘도 그 칠흑 같은 어둠이 가져다준 선물을 끌어안고 미소를 짓는다.  발버둥이 곧 꿈을 심는 일이 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강의장에 섰던 그때, 그 날의 추억이다.


    


첫 화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 누구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강사님들께 모든 감사를 돌립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하며 저의 글이나 영상이 도움이 되었다 남겨주셨던 그 한마디가 저에겐 또 다른 꿈이 되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SNS를 통해 보내주시는 팬심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드리고 싶어 쓰게 된 연재북입니다.


 가난했기에, 임산부였기에, 강의 경력이 없는 무 경험자였기에, 나는 강의장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