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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Apr 02. 2024

이제는 퇴출이 아닌 초청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경쟁에서 지는 것이었다. 어떤 경쟁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이고,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을 바라볼 때였다.     


“욕심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누구나 욕심이라는 것은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드러나지 않게 잠재우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난 조용히 잠재된 욕심이 아닌 피부 살갗을 뚫고 나와 두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의식적으로 표현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욕심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내 욕심은 결핍을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결핍을 느끼지 못하면 발전하기 어렵다. 결핍을 채워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한 뼘씩 자랄 수 있고 열매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만든 결핍은 나를 퇴행길로 인도하지만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하며 만든 결핍은 언제든 희망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래서 대환영이다.     


초임강사 시절 몇 번의 퇴출위기를 겪었다. 이때 무수한 결핍지점들과 만났고 그 지점들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부족함 덩어리의 민낯이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어렸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때 나이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했다. 간호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시작되지 않았었다.


이 제도는 2008년에 시작이 되었고, 노인 간호와 관련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섣부른 자만심과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들이 민낯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난 지능이 좋은 사람도 아니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른 내려놓음을 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벽에 한 번 부딪쳐 봐야 아픔도 감지가 되고 방안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픔이 결국 민낯에 하나씩 덧칠을 하게 했다. 어떤 색을 입혀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 될지 그저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 시도 끝은 의도한 대로의 모습일 때도 있었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모습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실망한 적 없이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이 모습이 요양보호사 양성 강사로 16년 동안 살아온 오늘의 내 모습이다.

나를 초청하는 이유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해 본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버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한 곳에서 오래 버틴다는 것은 미련함과 고집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역으로 유연함이 필요한 일이다.     


나무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명체다.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생존하려면 주변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무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지음  

   

움직일 수 없다면 수없이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민감성은 잃지 않아야 한다. 나도 그런 유연함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N잡 시대라고 하는 현대에서 N잡러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제안하더라도 그 상황에 맞게 가공만 할 수 있다면 그 자리가 어디든 못 가겠는가.     


최근 배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아무거나 주면 다 강의할 수 있어? 도대체 몇 가지를 할 수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직 손가락에 꼽히는 주제만 받아봐서 몇 가지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네. 그저 내가 가진 소망이 하나 있다면 손가락이 모자자서 더 세어보지 못할 만큼의 주제를 받는 강사가 되어보고 싶다. 이것도 욕심인가?”     


욕심 맞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탐하며 내 결핍과 지속적으로 만난다면 이 욕심도 언젠가는 이 글처럼 또 다른 글이 되어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여전히 대환영으로 반기고 있다.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이 더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인도하는 푯대를 따라 거침없는 항해는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방향 전환도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 선택에 주저함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푯대는 결국 나를 가장 행복한 곳으로 인도할 것을 이해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결과는 예측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항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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