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 수업이 종강되면 내가 양성하는 학생들은 실습수업이 이어진다.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방문 요양 등 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하게 될 장소에서 현장감을 익히기 위함이다.
현장실습 첫날 요양원을 방문한 학생과 전화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내가 시간을 확인해 보라고 했던 이유가 있다. 시간이 약속처럼 정해진 경우에는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의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혹시 그 하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실습은 오전 9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러니 늦지 않기 위해 적어도 15~20분 전에는 도착하라는 안내를 한다. 예의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약속을 성실히 지켰으니 한 가지의 배려는 갖추었다.
그러나 하나를 놓쳤다. 실습을 가기 전 주의사항에서 이미 안내하고 있는 내용인데 수업 내용을 놓쳤으니 현장에서 실행하는 방법도 놓친 상황이 된 것이다.
예의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배려가 아닐 수 있다. 실습기관도 학생들을 받기 위한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24시간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 요양원이고, 그 어르신을 돌보는 돌봄 자가 요양보호사다. 돌봄 자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할 시간까지 침범하면 안 된다.
그런데 실습 시작 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반응이 있어 문을 열어 준다 해도 이른 발걸음은 반가움이 아닌 불편함으로 남았을 것이다.
나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나이트 근무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아침 인계를 준비하며 환자의 상태와 간호 업무를 정리한다. 그 업무 외에도 반드시 하는 것이 아침 근무자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다.
이처럼 약속 시간이 정해졌다면 15~20분 미리 가는 시간 외에 그 너머의 시간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 시간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요양원의 벨을 함부로 누룰 수 없었을 것이다. 일찍 도착한 것은 내 사정이지 그것까지 배려를 해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자 이기적인 태도다.
교육원 수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수업이 9시에 시작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이른 시간에 도착한 경우 교육원 문이 열려 있지 않다고 불평을 하는 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행정실 직원은 몇 시에 출근을 해야 그 불평이 만족으로 바뀌는 것일까?
난 이렇게 현장 실습 주의사항 중 “시간 엄수”에 대한 의미를 풀어간다. 현장에서는 지식에만 그치지 않고 지혜까지 전달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길 늘 바라고 있다.
이렇게 찾아낸 의미는 내 삶에서도 종종 적용한다. 외부 강의를 가게 되는 경우 강의시간 보다 항상 이른 도착을 한다. 늘 다니던 곳이 아닌 낯선 곳으로 가기 때문에 적어도 1시간 전에는 도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때 예의시간 너머의 시간을 기억한다. 강의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의 주변을 서성인다. 어떤 상점들과 기관들이 있으며 눈에 띄는 자연경관이 있는지도 확인해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분 또한 고스란히 저장을 한다.
이렇게 저장한 정취들은 강의장에서 한껏 풀어낸다.
“제가 오늘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해서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토스트를 파는 트럭이 있더라고요. 혹시 드셔보신 분 있으세요?"
“그럼요. 강사님! 그 집이 이 동네에서는 인기가 꽤 많은 맛집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이 동네의 핫 플레이스를 본 거네요.”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 덕분에 강의장은 화기애애해 진다.
낯선 동네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고, 공통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사랑은 내 시간을 상대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어떤 것으로 채워야 할까? 상대방을 탐색하고 탐구하는 시간이면 좋겠다.그건 언제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약속 너머의 시간을 불편함으로 남겨두지 말고 관심을 가득 담은 사랑으로 활용해 보자. 이렇게 내 삶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적용해 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때 생동감이 전해진다. 이론으로만 머무는 수업이 아닌 생명력이 있는 수업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스토리텔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