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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May 10. 2024

일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성향을 탐색하라고요?

     

“교수님, 수업 시간표 중에서 하루만 변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어떤 날짜를 변경해 드릴까요?”     


교육원 전임강사의 역할을 맡고 가장 먼저 시작한 서류 업무가 강의시간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부업으로 강의를 하는 시간 강사님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종종 본업에서 일이 발생하면 시간표 변경 요청이 들어온다.     


전화 통화를 하며 그 자리에서 간단히 변경처리를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변경처리가 잘못되었다며 약간의 화를 내는 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난 분명히 요청대로 했는데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의 여부를 따지고 싶었지만 그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억울함을 남겨둔 채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억울함이 꽤 오래 나를 괴롭혔다. 내 시간을 내어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이 아닌 핀잔을 듣는 것은 일처리가 분명 잘 못되었다는 신호와 같다.     


나의 일처리 방법을 점검하게 되었고, 그를 토대로 알아낸 것은 변경 요청이 들어오면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교수님, 전화통화가 끝나고 나면 변경요청 하신 날짜를 문자로 남겨주시겠어요?”    

 

나의 요청대로 변경이 필요한 내용들은 서로의 문자에 남겨졌다. 증거가 조금씩 쌓여갈 때쯤 다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했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카톡에 적어 두었던 내용을 꺼내 강사님께 전송했다.  

   

이 덕분에 처음과 다르게 화를 담은 목소리가 아닌 미안함을 담은 목소리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의 업무 중에는 보고의 업무가 있는데 그 형식으로는 구두보고, 서면보고, 전산망 보고가 있다. 상황이 급하거나 가벼운 경우 구두보고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서면보고 역시 정확히 보고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신속하게 보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다행히도 구두보고와 서면보고의 단점을 모두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이 전산망 보고다.     


핸드폰이 생활필수품이 되기 전까지는 이메일 보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핸드폰 문자나 카톡으로 전산망 보고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산망 보고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핸드폰 사용기법 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  

   

보고 받는 사람의 성향을 먼저 파악해 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내가 시간표 변경 건을 처리하며 알아낸 것은 유달리 한 분의 시간강사님 하고만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강사님들은 나보다 더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는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병원에서 일을 해본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한 가지가 될 수도 있다. “대충”, “어느 정도” 이런 단어들과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생명과 직결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한 치의 오차가 많은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충보다는 정확성을 늘 앞세우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결국 삶의 방식도 그렇게 자리를 잡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을 멀리 두고 산다면 그건 직업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진 본연의 성향이다. (우리 교육원의 강사들은 모두 간호사 출신이기에 더 빠르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임상 경험이 그리 길지 않은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이 꼼꼼함이다. 임상이 아닌 교육원이라  조금은 느슨하게 해도 될 것이라는 착각만 하지 않았다면 억울함과 만나지도 않았을 텐데 살짝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더 억울함으로 끌려가지 않고 적절한 대처법을 찾아 적용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보고의 형식”을 설명할 때 예시로 들어 강의하는 실제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요양보호 업무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공통 상황이다.  이때 보고하는 사람의 성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고 받는 사람의 성향이다.     


보고 받는 자가 나보다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면 구두보고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구두보고를 받으며 그 사람은 서면으로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보다 정확성이 약한 사람이라면 보고를 하고 내가 서면으로 남기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때 등장시키는 것이 전산망(문자) 보고여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억울한 상황에서 조금은 빨리 자유로울 수 있다. 일을 잘하기 위한 방법들은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은 나의 성향보다 상대방의 성향에 나를 맞출 수 있는 용기 이자 너그러움을 가진 사람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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