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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May 24. 2024

상대의 마음을 훔치려면 내 마음부터 비워야지.

도둑은 왜 돈을 훔치는 것일까? 도적질을 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답이다. 돈이 없으니까 훔치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나 강의를 듣다 보면 훔치는 힘에 대해서 강조할 때가 있다. 그런데 훔치는 힘 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비워낼 용기다. 모두 비워내고 아무것도 없어야 도둑처럼 훔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각을 훔치기 위해 책을 읽으려면 내 생각을 모두 비워야 한다. 비판적 독서가 독극물과 같은 부류로 치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지식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독서에 들어가야 한다.     


난 이 예시를 지식이 아닌 마음에 대입해서 설명할 때가 있다.    

 

2024년 요양보호사 양성과정이 변경된 후 가장 많이 시험에 출제되고 있는 단원이 “치매 요양보호” 단원이다. 그중에서도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심리증상 대처법에 대한 답을 찾는 문제는 단연 1등을 차지한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교재에 실려 있는 이론적인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동심리증상의 예시들로  출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수업방식이 시물레이션이다. 그런데 치매 어르신의 행동심리증상 대처에 들어가기 전에 예행연습을 먼저 한다.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마음 납치 전문가가 되어야 어르신의 마음 한 조각정도 훔쳐 올 수 있다.     


그러니 연습은 필수과정일 수밖에 없다. 내가 진행하는 예행연습이란 옆에 앉아있는 짝꿍의 마음을 먼저 훔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아무도 급하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적어도 친숙함이라는 안전장치가 보여야 착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친숙함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 그 과정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수업은 충분히 효과가 있다.

    

예시를 먼저 들어준다. 어린아이는 어떤 어른들을 의심 없이 쫓아갈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험했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네 이름이 000이지? 아줌마가 엄마 친구라서 잘 알거든”

“너희 아빠 전화번호가 000-0000-0000이지? 아저씨가 아빠 친구라 잘 알거든.”     


이런 질문에 아이들은 경계심을 쉽게 내려놓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입학을 하는 1학년 초등학생 가방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 칸이 모두 가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가방 바깥면에 기입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과 친숙함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이 가진 단일성이자 특수성에 대해 궁금해해야 한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 아니다.     


사람의 이름이 똑같은 경우가 많지 않고, 전화번호 역시 같은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런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빨리 친해질 수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관심에서 나온 관찰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이때도 역시나 내 마음은 일단 모두 비워내고 시작해야 한다.    

 

“ 겉으로 보기에 이러하니 그럴 거야.‘ ,’ 나랑 같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거야.‘     

 

이런 문장부터 마음에서 버리자. 조금 알고 있는 것을 섣불리 마음에 담고 시작한다면 걸림돌이 되어 온전히 상대방의 마음을 훔쳐올 수 없다. 특수하니 하나일 수밖에 없고 단일하니 복잡할 이유도 없다.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 않는 말을 사용하고 있거나, 조금은 다른 것이 보여진다면 그것이 내가 주목해야 할 관심 소재인 것이다. 잘 살펴보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을 찾아 언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흘깃 바라본 책에는 색색이 줄을 쳐놓은 문장들이 있거나 빽빽이 적은 메모들이 보인다.    

 

“참 꼼꼼하고 열정적이시네요.” 라며 말을 건넬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하며 필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0명씩 수업을 해도 이런 분은 몇 분 만나보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정갈하게 정리된 도시락을 내어 놓는 분이 있다. 밥은 소박한 양이지만 반찬만큼은 항상 넘친다.      


“바쁜 시간에 도시락을 만들어 오 실만큼 이면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시네요. 거기에 나누는 사랑까지 실천하고 계시니 그저 본보기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시락을 챙겨 오지 않는다. 더욱이 내가 아닌 주변 사람의 몫까지 담아 오는 사람은 드물다.  

   

보이는 부분이 아닌  보려고 노력하며 관찰한 부분으로 칭찬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공통점은 쉽게 보이는 부분이고 특수성은 오로지 관찰을 통해서  깊이 들여다 봐야지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찰력을 가진 소유자라면 치매 어르신의 마음도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훔쳐올 수 있는 도적질이 가능하다.     


치매 어르신 돌봄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단어들을 정리해 보면 “좋아하는”, “친숙한” , “익숙한”이다.     


이 세 단어들의 뜻이 포함된 문장이 5 지선 문항 중 답이다. 시험 문제의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을 통한 훈련은 더 중요하다.     


가장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좋아하게 된 것은 한 번으로 빠져든 것이 아니고, 익숙하고 친숙하게 된 것은 한 번으로 편안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섣불리 한 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훔쳐오려는 도적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쉽게 얻어내려는 마음보다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찰을 통해 찾아내는 굵직하고 답답한 무게감을 가지고 접근하자. 그렇다면 반드시 그 마음은 나에게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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