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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May 17. 2024

편견에 대한 인정과 수정을 위해 도피성을 쌓아갑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생각을 편견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일명 색안경 속에 담았던 색이 내가 가진 편견이다.    

  

그 색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 값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경험이 있다면 여러 가지 색을 담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드물다.


 그렇기에 편견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인정 다음에 수정을 동반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편견과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편견에 대한 인정과 수정을 위해서 쌓아두는 것이 도피성이다. 여기서 도피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 번째는 감정에 대한 부분이다. 편견은 종종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개강 오리엔테이션 때마다 수업 시간에 필요한 기본적인 예절을 안내한다. 핸드폰은 진동 모드로 바꾸어 주시고,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 앞문 출입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나 수업시간마다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한 지 16년이 지났다. 때로는 수업 중에도 앞문으로 불쑥 들어오는 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내 이야기를 듣기는 한 건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내 이야기를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으니 정말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인성으로 도대체 요양보호사 일은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런 마음 또한 편견이다. 핸드폰 벨이 수업 중에 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성을 내가 논할 자격은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마음에 도피성을 쌓기 시작했다. 감정처럼 폭발성을 드러내는 것도 없다. 기분 나쁜 감정을 말에 담아 쏟아내는 순간 강의장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잔해 때문에 공포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갑고 냉철한 머리라고 불리는 이성을 데리고 온다. 이성이 곧 나의 도피성이 되는 것이다. 이성의 시작은 잠깐 멈춤으로 시작한다. 그 행동이 나타났던 전후 상황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못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지각이 될 까봐 급하게 오느라 진동으로 바꿀 수 없었을까? 아니면 이런 수업을 참석해 봤던 날 들이 너무 오래전 추억이라 벨을 진동으로 변경하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았나?     


그래, 그럴 거야. 나도 가끔은 습관이 되지 않아 깜박할 때가 있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는데  뭐 그리 철저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해. 그럴 자격도 없는 사람이면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데 강사인 나도 참고 넘어가야지.‘    

 

이렇게 독백처럼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내 뜨거움은 어느덧 천천히 식어간다.  공포감을 드러내는 뜨거움이 아닌 모두를 편안하고 포근하게 만드는 따스함으로 남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배움에 대한 부분이다. 편견은 종종 무지함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게 한다.     


요양보호사 양성과정에는 치매라는 질환이 등장한다. 수많은 종류의 치매가 있지만 노인성치매의 대표주자인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에 대한 내용만 집필이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진다.


“치매의 종류가 몇 가지가 있을까요? 숫자로 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머뭇거리는 순간이 잠시 지나가면  수많은 숫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치매의 종류가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치매대상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 알츠하이머 이신가요?‘ 아니면 ”혈관성치매 이신가요? “


그러나 두 질문은 모두 편견을 인정하지 못한 질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질문은 수정이 되어야 한다.     


“치매이신가요? 그렇다면 어떤 치매이실까요?” 이런 질문을 했어야 했다.    

  

끈임 없는 배움을 통해서만 깨질 수 있는 것이 편견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반드시 해야 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모든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다른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한 권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는데 다른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편견을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직접 경험으로 편견을 깨면서 가는 삶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 삶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기회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가 있다면 그건 독서와 공부뿐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두 가지를 행함으로 도피성을 쌓아가야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되거나 둘만 알고 셋은 모르는 사람이 되면 평생 한 가지 색깔에 갇혀 다른 색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감사, 행복들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무지개 색깔을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다시 편견을 인정하고 수정해야 한다. 도피성이 튼튼한 성벽을 이루어 모두의 생각과 행동을 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절대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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