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Jul 12. 2024

옆 지기와의 동행이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다.

“오늘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그중에서도 꼭 기억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맨 앞에 앉으신 두 분과 그 뒤에 계신 두 분도 잠시 앞으로 나와 주세요.”  

   

나의 지목을 받은 분들이 조금은 당황스러워하시는 표정이었지만 흔쾌히 나와 주셨다. 이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기로 한 것이다.     


“표창장, 위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며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습이 본보기가 되기에 이에 감사드리며 격려하는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병원동행매니저 강사 김옥수 드림.”    

 

교육원이 아닌 타 지역으로 병원동행매니저 양성 출강을 하고 있다. 오늘은 예정된 수업 1기가 종강되는 날이었고, 실기수업에서 가장 열심히 하신 병원동행매니저를 선출해서 상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이 상장 외에 더 드리고 싶은 분들이 계셨다.    

 

첫 수업 날 참석하신 분들을 둘러보니 남자분들이 계셨다. 돌봄에서 남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적은 인원들만이 이곳을 찾기에 그 발걸음은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남자분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경로로 강의를 찾게 되었는지 조금은 가늠이 된다. 혼자 앉아 계시는 경우가 있고 여자분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경우가 있고, 남자분들끼리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때 여자분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경우는 부부일 가능성이 높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보이지 않을수록 내 추측은 정확하다. 이번에도 남녀가 나란히 앉아계셨는데 모두 부부였다.   

  

병원동행매니저라는 직업을 만들기 위해 수강한 강의였지만 노년에 대한 준비, 노년에 대한 이해, 의사소통법을 배우며 부부 학생들은 꽤 많이 호응하고 즐거워하셨다.


휴머니튜드 기법에서 바라보기, 말하기, 접촉하기 세 단계를 연습하며 서로를 칭찬하고 스킨십하며 토닥여 줄 때는 그 어떤 분들보다 행복해 보였다. 병원 동행매니저 시물레이션 실기를 하면서도 남편은 환자, 아내는 병원동행매니저가 되어 애정 담은 돌봄은 이어져 갔다.      


이분들의 모습을 곰곰이 회상하다 보니 내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부부라는 것이 무엇이며 , 부부는 어떤 사이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나이 60이 넘은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기 좋다.’ ‘부럽다.’라는 감탄사로 끝을 낼 일이 아니다. 감탄으로는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   

  

언제나 행동으로 옮겨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 그 노력은 나의 실천항목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쭈어 봤다.     


“어떤 경로로 이곳에 오시게 되었나요? 아내분이 먼저 가자고 했을까요? 아니면 남편분이 가자고 했을까요?"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으며 부부로 살아가시는 선배님들의 지혜를 모아봤다.     


한 가정은 아내분의 권유로, 다른 한 가정은 남편분의 권유로 교육장을 찾았다. 그러나 두 부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분이 권유를 했든 거절하지 않고 승낙을 했다는 부분이다. 또한 이곳에 와서 수업에 적극적인 태도로 참석해 주는 것을 보니 배우자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종종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한 발걸음을 하는 부부들도 있었다. 그분들은 적극성보다는 회피하거나 귀찮아하는 모습을 내 비추곤 했기에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분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서로의 노년을 행복으로 채워주기 위한 순수한 마음이 진정으로 담겨있었던 것이다. 부부의 배려가 떠오를 때마다 스쳐가는 단어가 있다. 바로 “옆지기”이다. 옆지기는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부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옆이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가까워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조금은 멀어야 편안한 사람이 있다. 부부는 모두 거리 좁히기를 해야 행복해진다는 말은 틀렸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받기 쉽고, 너무 멀면 외롭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가까워서 불쾌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행복함을 느끼는 부부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건 부부 만이 안다. 그 거리를 알아내고 서로 지켜주려는 모습이 함께 할 때 행복한 동행이 된다.     


이번에 내 수업을 들었던 두 부부는 그 거리를 알고 있는 분들이다. 존중은 일정한 거리 두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나란히 앉아 매 순간 미소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옆지기만큼 소중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 소중함을 익숙함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과 행복한 동행을 하기 위해 오늘 나는 살짝 거리 두기를 합니다. 당신의 실수와 당신의 부족함은 못 본겁니다. 그냥 묻어 둘게요. 사람이 가끔 그럴 때도 있지, 어떻게 매일 완벽합니까.”     


“오늘 나는 당신 가까이 가야겠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요. 많이 칭찬해 주고 싶어요. 아직 당신만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조금은 어색하고 낯 간지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나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부부로서 연륜이 쌓인 것이다. 이제 곧 20년 차 부부가 되어 가는 내가 남편에게 하고 있으니 맞다.     

 

내가 집필한 책에 수록된 한 편의 시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흠이 없이 완벽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흠을 감싸주어 어여쁘고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늘 말해줍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이렇게 바라봅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어여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옆지기가 있어 감사하다.    

                   

이전 12화 “스페어타이어” 로는 오래 달릴 수 없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