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없는 시어머니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는 경제력 없는, 별로인 여자라는 소리를 들은 것 말고도 예단이야기가 있다. 처음 상견례자리에서 양가 부모님들은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다. 그래도 아빠 없이 홀로 키운 딸 시집보내는 엄마 마음에 예단을 안해가는 것이 걸렸는지 엄마는 고심 끝에 준비해서 보내겠다고 하셨고 예단을 준비했다. 예단을 드리러 가서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시아버지의 첫마디는 “안 하기로 했는데 말을 바꾸셔서 곤란하고 난처하지만 주시는 거니 받겠다”며 안 하기로 한 점을 꼭 짚고 넘어가셨고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셨다. 참 많이 무안했다. 선물을 주고도 찜찜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크게 잘못 됐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도 시댁에 내려갔을 때였다. 당시 우리는 차가 없었으므로 시어머니 차로 이동하고 있었고 시어머니가 작은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계셨다. 작은어머니가 사촌아가씨 시댁에서 예단으로 얼마 해오라고 했다며 시어머니께 하소연을 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 전화내용을 듣기 싫어도 같은 공간에 있다보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어머니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 예단은 하자 있는 애들이 하는 거잖아.”
너무 화가 났지만 당시에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내가 예단은 해 간지 한 달 즈음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내가 시댁에 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이와 남편을 생각해서 그간의 일들을 덮고 잘 지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잘 안될 땐 '너 이거밖에 안되는 사람이야?' 라며 나를 몰아세우고 자책까지 했다. 뚝딱 거리긴 해도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들처럼 식사준비도 해보고 오시면 같이 거실에서 빙 둘러 자보기도 했다. 정말 노력했다. 하지만 하나가 걸리면 자꾸만 온갖 감정들이 줄줄이 튀어나오는 그날의 기억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