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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06. 2024

예단, 하자 있는 애들이 하는 것

배려 없는 시어머니

상처는 이것 말고도 예단이야기가 있다. 처음 상견례자리에서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다. 그래도 아빠 없이 홀로 키운 딸 시집보내는 엄마마음이 걸렸는지 친정엄마는 고심 끝에 준비해서 보내겠다고 해서 예단을 했다. 예단을 드리러 가서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시아버지의 첫마디는 “안 하기로 했는데 말을 바꾸셔서 곤란하고 난처하지만 주시는 거니 받겠다”며 안 하기로 한 점을 꼭 짚고 넘어가셨고 시어머니는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참 많이 무안했다. 같은 해에 결혼한 시누는 예단을 안 했는 데 며느리인 나는 예단을 해서 그랬나 싶었다. 선물을 주고도 찜찜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크게 잘못 됐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도 시댁에 내려갔을 때렸는 데 당시 우리는 차가 없었으므로 시어머니 차로 이동하고 있었고 시어머니가 작은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계셨다. 작은어머니가 사촌아가씨 시댁에서 예단으로 얼마 해오라고 했다며 시어머니께 하소연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 예단은 하자 있는 애들이 하는 거잖아.”라는 소리에 너무 화가 났지만 당시에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내가 예단은 해 간지 한 달 즈음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게 너무 열받고 시댁에 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 같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 기억도 덮고 넘어가고 잘 지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잘 안될 땐 나를 몰아세우고 자책까지 했다. 뚝딱 거려도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들처럼 식사준비도 해보고 오시면 같이 거실에서 빙 둘러 자보기도 했다. 정말 노오력했다. 하지만 하나가 걸리면 자꾸만 튀어나오는 그날의 기억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형님은 이혼 소식을 알려옴과 동시에 재혼상대가 있다며 재혼의사를 밝혔다. 사실 형님은 나에게도 잘해주셨고 우리 아이를 정말 살뜰히 챙겨주셨다. 여덟 살 아이에게 이혼을 미화시키려는 (이혼은 잘못도 자랑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아버지도 싫었지만 본인 동생에게 알려야 할 상견례 소식을 (비겁하게) 상견례가 뭔지도 모르는 여덟 살 조카에게  상견례했다는 문자를 보냈고 이후의 행보도 어른답지 못해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속이 좁은 나는 결혼식에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뚱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무례하게 대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형님은 나에게 얘기를 하자고 했고 나는 불만을 털어놨고 지난 8년간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한 사람(시아버지)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형님은 미안하다고 했고 울먹이는 나를 안아주면서 잘하겠다며 아주 어른스럽게 대화는 끝이 났다. 그 이후로 연락은 하지 않고 있다. 서로에게 좋은 소식만 들려오길 바라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을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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