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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은 걸까

전라북도 익산시 고등학교 기숙사

by 좋아해 Feb 20. 2025

  “엄마랑 아빠가 둘이서만 살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어. 너희들을 키워야 하니까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거야.”  

  이 말속에는 딴짓하지 말고 바르게 크라는 의미가 담겼을 테지만,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 커다란 짐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을 갉아먹으며 자라고 있는 느낌이랄까.


  부모님을 덜 힘들게 할 방법을 고민했다. 내게 들어가는 돈이 줄어들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가지고 싶은 것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맨 처음은 설탕이 콕콕 박힌 알사탕이었고 어떤 땐 스티커였고 또 언제는 다이어리였으며 딱지, 공기, 학종이 등등 가지고 싶은 것들은 매번 모습을 바꿔 내게 다가왔다. 깔끔하게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유행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들을 갖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동시에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는 착한 아이도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욕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다.

 

  돈이 없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 나는 많은 것들을 훔치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졌다. 그렇게 사탕, 종이 인형, 친구의 수첩, 과자나 동전 같은 것을 훔쳤다. ‘아무도 안 써서 먼지가 쌓여 있으니까.’ ‘저 친구는 수첩이 여러 개 있으니까.’라는 식으로 훔쳐도 되는 이유를 셀 수 없이 만들었고 스스로를 꾸역꾸역 합리화했다.


  초등학교 6학년, 친구와 함께 팬시점에 갔다가 오백 원짜리 미니 편지지를 훔쳤다. 훔치는 일은 단순하고도 쉬웠다. 그저 툭! 내 손에 있는 가방에 물건을 떨구기만 하면 됐다. 태연하게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삐비빅 삐비빅! 요란하게 경보음이 울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고 한 아저씨가 다가와 내게 이것저것 묻더니 창고로 데려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저씨는 뺨을 때렸다. 한 대, 휘청이는 나를 바로 잡고 또 한 대, 다시 또 아저씨의 손이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간 순간, 친구가 다급히 말했다.

  “아저씨! 누가 일부러 넣었을 수도 있잖아요!”

  “아까 물어봤을 때 전부 계산한 거라고 했잖아! 모르는 물건이었으면 그때 말했겠지! 어디서 편을 들어! 니들 어느 학교야? 부모님 연락처 대!”

  나는 다급하게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아저씨,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너무 가지고 싶어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

  함께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아저씨를 말리셨고 나를 다독이셨다. 이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내 조용했다. 정적을 깨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까 맞은 데는 괜찮아? 많이 아팠지?”

  아픈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는 그 애를 붙잡고 애원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 돈은 없는데 너무 가지고 싶어서 그랬어. 친구들이나 부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줘. 이렇게 빌게. 제발 부탁이야.”

  나는 아저씨께 손 모아 빌었던 것처럼 친구를 붙잡고 빌고 또 빌었다. 아까보다도 더 절박하게. 잘못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웠다.

  

  그날 이후 친구와 급격하게 멀어졌다. 친구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애가 내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내 가면을 벗겨내고 나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애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웠다. 최선을 다해 그 애를 피해 다녔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우린 서로 다른 중학교에 배정되었고 드디어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진심으로 기뻤다.


  잘못이 들키지 않아서였을까. 욕심은 또 흘러넘치고 말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인터넷 강의가 큰 유행이었는데 기숙사 컴퓨터실은 항상 만석이었다. 친구들은 공부 환경을 업그레이드했다. PMP라는 강의용 모니터, 음악은 물론 동영상 재생까지 되는 MP3도 등장했다. 컴퓨터실이 한가한 시간에 내 일정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을 자유롭게 다룬다는 사실은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집중이 잘 안 되는 것도, 친구들이 새로 산 전자기기를 자랑하는 게 꼴 보기 싫은 것도 전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MP3만 있었어도...’

  MP3만 있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슬아의 MP3였다. 왜 하필 슬아였을까. 슬아는 말이 없고 착한 친구였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가 희미했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거의 없었다. 나는 가장 만만하고 약한 존재를 골랐고 툭, 슬아의 MP3를 훔쳤다.


  한 달쯤 지났을까. 기숙사 방장이 회의를 하자고 3학년 전체를 불러 모았다. 화장실 규칙이나 새벽의 알람 문제들을 이야기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고 있는 친구도 있겠지만, 슬아가 MP3를 잃어버렸대.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중에 한 명이 가져간 것 같아. 슬아가 많이 속상해하고 있어. 이번 주까지 돌려주었으면 해.”

  아이들은 웅성웅성거렸고 내 심장 역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내 고막을 쿵쿵 울리며 뛰는 심장 때문에 들킬 것 같았다. 가끔 다른 사람의 심장소리가 내게 들릴 때가 있는데 친구들도 이 소리를 들었을까.


  모두가 잠든 그날 새벽, 슬아의 MP3를 돌려놓았다. 친구들은 아침에 MP3를 발견하고 여기저기 소식을 전하며 기뻐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했다며 환호했는데 그 ‘우리’ 속에는 MP3를 훔친 ‘나’도 들어있었다. 돌아온 MP3를 보면서 친구들은 확신했을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군가 가져갔던 게 분명하다고. 그럼에도 친구들은 그 누가 훔쳤든 안 훔쳤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아침의 작은 소란 이후, 그 일은 단 한 번도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우리 속에 섞여 있던 나는 여전히 그들의 친구였다.


  그렇게 별일은 없었다. 처음 사탕을 훔쳤을 때도, 문구점에서 뺨을 맞았을 때도, MP3를 훔쳤을 때도 결과적으로 별일은 없었다. 별일 없이 넘어갔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여 부끄러움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온갖 핑계를 대가며 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는데 이제 그만 훔쳐도 되지 않을까. 사실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고 있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낮추어 본 것도 나였고, 부모님의 바람을 멋대로 해석한 것도 나였다. 그로 인해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나였으나, 거기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탓하기 바빴다. 들켰을 때 내 편을 들어준 친구에게 최선을 다해 도망치기도 했고, 심지어 MP3를 훔쳤을 땐 가장 약한 친구의 것을 가져갈 만큼 비겁한 사람도 나였다.


  내가 훔쳤던 많은 것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지고 싶어서였다. 스스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탑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둘러싼 모래성 같은 거였다. 사실은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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