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자취방
스무 살이었다.
스물, 이라는 단어에는 생그러움이 담겨있다. 서른은 왠지 모르게 설운 느낌이고 마흔은 마흔대로 마음이 무겁다. 쉰은 슬프게도 쉬어버린 느낌, 예순은,,, 그만하자. 나이에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내게는 스물이라는 단어는 싱그럽고 어리고 예쁘다. 무언가를 배우기에 딱 좋을 만큼 체력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만, 그 체력과 머리를 믿고 펑펑 놀기에도 딱 좋은 나이였다.
대학교 입학이 확정되고 학교까지 어떻게 통학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수능을 치른 지 얼마안 된 파릇파릇한 새내기였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을 생각이었다.
“엄마,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할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자취방을 알아보자. 우리 딸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는 기숙사에 들어가.”
그리하여 나의 대학 생활은 자취방 계약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중간에 한 번 성적이 떨어져서 쫓겨나긴 했지만) 자취를 하니 모든 것이 새로우면서도 어려웠다. 방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를 외치던 사감 선생님이 없었고 (10분 안에 의자에 앉지 않으면 출석 점수가 깎였다) 늦은 시간까지 경쟁하듯 잠을 자지 않던 친구들이 없었다. 대학 생활은 모든 것을 온전히 내 의지로 조절하고 결정해야 했다. 덕분에 기상 시간은 자꾸 늦어졌고 당연하게도 공부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그동안 스스로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자기 주도성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여전히 의문이다). 친구가 책상에 앉아 있으니까, 일어나기 싫어도 억지로 일어나야 했으니까, 담임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으니까, 성적이 떨어지면 기숙사에서 쫓겨나니까, 이러저러한 생존의 이유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움직였다. 더군다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만’할 줄 알았기에, 대학 생활 속의 넘쳐나는 자유가 혼란스럽기도 했다.
나는 점점 느슨해져 갔다. 수업 시간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종강 이후 길고 긴 방학에는 집에도 내려가지 않고 자취방에서 놀았다. 하루 종일 영화만 보기도 했고 3일 정도 전화기를 꺼두고 스스로를 삭제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누가 연락을 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곤 했다(새벽 감성 때문이었을까... 이불킥이다, 정말).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몸무게가 10키로 이상 늘어났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마침내 특정 과목에서 D를 받고 말았던 그 학기의 성적을, ‘대학 생활 잘 즐겼다’는 훈장으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자유라는 건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너 고양이 좋아해? 고양이 키워보지 않을래?”
동아리 선배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머릿속에 귀여운 고양이가 떠올랐고 큰 고민 없이 덜컥 키우겠다고 답했다.
“근데, 두 마리인데 괜찮겠어? 하얗고 예쁜 애들이야. 애교도 많고 순해.”
“네, 키워볼게요. 도전!”
“그럼 동아리 실에 고양이들 데려다 놓을 테니까 네가 데려가.”
생명에 대한 책임을 도전이라고 여겼던 그때의 나는, 썸남을 데리고 동아리 실로 들어갔다. 하얀 털뭉치 두 마리가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쏘아보았다. 고양이에게는 이동장이 꼭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고, 발톱을 세우는 네 발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용감하게도(무식하게도). 몇 번의 실패 끝에 고양이들을 붙잡아 밖으로 나왔다.
“도와줘서 고마워.”
“근데 두 마리나 키울 수 있겠나? 사료값도 장난 아닐 텐데...”
그 순간 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며 쌩 지나갔다. 내 손에 잡혀 있던 고양이는 깜짝 놀라 튀어 올랐고 순식간에 내 어깨를 발판 삼아 옆에 있던 썸남의 등에 매달렸다. 황급히 고양이를 들어 올리자 발톱에 썸남의 바람막이가 딸려왔다.
“으아악! 안 돼. 내 옷! 이거 비싼 긴데!”
썸남은 절규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들은 나와 살게 되었다. 이름은 점백이와 안백이. 둘 다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점백이는 얼굴에 점처럼 까만 털이 있어서 점백이었고 안백이는 점을 안 가지고 있어서 안백이가 되었다. 아기 고양이들은 나보다 더 천방지축이어서 밤만 되면 우다다를 했다. 좁은 원룸의 창문과 책상과 벽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뛰어 다녔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내 얼굴 위로 뛰어내렸고 치킨을 시키면 자기들도 달라고 얼굴부터 들이밀었다. 과제를 하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놀아달라고 책상 위에 올라와 내 손을 깔아뭉개곤 했다. 예쁘고 정이 많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 덕분에 방탕한 대학 생활을 정리하고 사람이 되었다.
는 전개였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였을까. 고양이들이 귀여웠던 건 딱 하루뿐이었다.
좁은 원룸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옷과 침구류에서는 고양이 오줌 냄새가 배었고 하얀 털들이 소리 없이 눈처럼 쌓여갔다. 고양이들은 사람 음식에 관심이 많아 밥 상 위에 매번 올라왔는데, 안백이를 밀어내면 점백이가 음식을 핥고 있었고 점백이를 쫓으면 안백이가 올라왔다. 결국 밥을 먹을 때마다 고양이들을 화장실에 가두었다. 점백이랑 안백이는 문을 열어 달라고 애옹애옹- 거렸다. 처음에는 마음이 쿡쿡 찔렸지만 이내 ‘밥 먹을 때만 화장실에 있으라고 하자. 사람 음식이 고양이 몸에도 좋지 않을 테니까.’라며 타협을 거듭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밥 먹을 때 말고도 여러 번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마침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를 선언한 건, 고양이들과 함께 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마침 아파트에 살고 고양이를 길러 본 경험이 있는 언니에게로 점백이는 입양을 갔다. 그 언니는 주변을 수소문해 안백이의 입양까지 도와주었다. 언니는 내게 점백이(이젠 이름이 달라졌지만)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무 예쁘지? 내가 요즘 얘 때문에 살아.”
“밥 먹을 때 언니 음식 먹으려고 하지 않아?”
“맞아. 막 얼굴 들이미는데 귀여워 죽겠어. 그래서 밥 먹을 때 얘한테도 추르(고양이 간식) 줘. 그러고 옆에서 같이 먹어. 귀엽지?”
“언니 대단하다. 과제할 때 귀찮게 하지는 않아? 키보드 위에 올라와서 막 손 덮어버리고 모니터 화면 가리고.”
“그러면 낚싯대 같은 걸로 놀아주면 돼. 귀가 새빨개질 때까지 놀아주면 지쳐서 한쪽에서 자더라고. 귀엽지 않냐?”
핸드폰 속 점백이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내가 귀찮고 힘들다고 여긴 고양이와의 생활은 언니에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부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장 비겁하고 손쉬운 방식으로 밀어내기만 했던 나와는 달리,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존중하며 함께하고 있었다.
자유라는 건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선택하는 일인 것 같다. 더불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조율해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유라는 명분을 무기 삼아 물건을 쇼핑하듯 선택지만 고르고 있지 않았었나. 언제쯤 어른이 되려나. 스무 살, 나이로는 성인이 되었지만 좋은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던 그때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