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쓰담 30. 서두르지 않기
빠르게 달리는 세상에서, 멈추는 일은 종종 뒤처지는 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멈춤의 순간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내 마음이 나를 부르는, 아주 작은 숨결 같은 목소리.
오늘, 우리는 잠시 멈춰 서 보기로 한다.
서둘지 않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언제부턴가 삶은 ‘빨리’라는 단어를 노래처럼 반복하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들은 나를 재촉하는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만들었고,
나는 그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했다.
속도는 내 능력이 되었고, 멈춤은 곧 무능력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문득 발끝이 무거워졌다.
마치 오래 들고 있던 짐이 손가락 끝에서 저릿하게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내 일상은 어느새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다다름도 바라지 않았는데, 나조차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가야 한다’는 마음만 앞서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멈춰 섰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다.
마치 모든 불빛이 꺼진 무대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늘 지나치기만 했던 공간과 시간의 숨결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멈춘 곳은 특별하지 않은 장소였다.
학교 운동장 한 켠, 아무도 앉지 않는 오래된 벤치.
낡은 나뭇결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고,
햇살은 서둘지 않고 벤치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물결처럼 번져왔고,
누군가 교실 문을 닫는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금세 고요 속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멈춤이라는 건 공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소음이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들렸다.
말도 없이 나를 다독이던 마음의 미세한 떨림.
빠르게 달릴 때는 결코 들리지 않던 속삭임이었다.
“지금 이 자리도 괜찮아.”
“조금 느려도 괜찮아.”
멈춰 선 시간이 길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내 안에 조용한 색을 남겼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바람,
그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흔들리던 나뭇잎,
그리고 그 흔들림조차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오후의 빛깔.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은 도착이 아니라 리듬이라는 것을.
속도가 아닌, 내가 들고 있는 방향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지금 이 멈춤도 네 길의 일부야.”
“흘러가는 시간을 쫓지 말고, 네 시간을 살아도 돼.”
그 말은 마음 한구석에 잔잔히 내려앉아
금세 사라지지 않는 온기가 되었다.
마치 늦겨울 끝자락에 피어난 작은 꽃이
누가 보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나는 것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이유가,
그 조용히 자리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