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째 단상 - 쉼에 대하여
“쉬엄쉬엄하면서 해”
주변에서 청년세대가 힘들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으셔서 그런지 요즘 어머니는 전화를 마칠 때마다 항상 내게 쉼을 권한다. 공부하고 있을 때면 뭉클하고, 쉬고 있을 때면 죄책감을 느끼는 말이다. 진심으로 아들이 쉬었으면 좋겠기에 한 말이지만, 정말 내가 쉴 수 있을까? 어머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껏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쉬면 불안하다. 내가 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중반이라 불안한 거 아니야?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불안했다. 방학 숙제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수능과 과제와 군대와 취업으로 쭉 펼쳐진 마라톤 코스에서 주저앉고 쉰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그맣게 멀어져만 가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보며 불안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뒤처지면 큰일 나니까. 큰일이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위에서 큰일 난다고들 하니까. 불안에 잠식될 바에 차라리 쉬지 않기를 택한다.
두 번째로 쉬는 방법을 모른다. 가성비와 효율의 나라에선 쉼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볼 때도 될 수 있으면 더 빨리 보는 게 이득이므로 영상의 속도를 2배로 올린다. 머릿속에 뭐가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더 많이 봤으니 잘 쉰 것만 같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쉼을 채우고 싶지만, 이왕이면 성과가 남는 것이 좋다고 말하니 남에게 보이는 쉼이 주를 이룬다. ‘이왕 일본어 공부할 거 자격증을 따보렴.’ ‘너의 직무에 연관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하면서 쉬어봐.’ 무엇이 나를 쉬게 할 수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쉼을 흉내 내기만 한다.
마지막으로 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너무나도 부정적이다. 쉼의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마땅한 이유 없이 쉬는 행위는 죄악에 가깝다. 대학에서 번아웃을 겪어 1년 동안 휴학한 동기는 면접관에게 그냥 힘들어서 쉬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멈춰있었던 1년을 설명하지 못하면, 지난 20여 년간의 세월이 부정당한다. 면접관뿐 아니라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부족하고 게으르니까 쉰다는 사회적 관념은 단 한 번도 변한적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년들은 극복이 아닌 포기를 택했다. 쉬면 불안하고, 쉬는 방법을 모르고, 쉼에 박한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기를 택한 것이다. 2030세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쉰다는 건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청년을 대표할 자격은 없지만 쉬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 중 한 명으로서 나 역시 답답하기만 하다. 나름 열심히 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 주변에선 쉬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들 한다. 사는 걸 열심히 하라니. 참 웃긴 말이다.
쉼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거나 자신만의 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뻔한 말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나조차도 그렇게 쉬지 못하는데 누군가에게 쉼을 강요할 자격이 없다.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거짓말에 일찌감치 크게 데여버린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절대 쉬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다들 버티면서 살아가니까…. 라는 말에 체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쉬지 못하는 삶이 안쓰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