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안할까
해외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다름 아닌 바로 '언어'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언어의 한계는 생각보다 더 큰 장벽으로 느껴진다.
가끔 1:1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나의 속도에 맞춰주기도 하고
나에게만 집중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대화가 잘 이뤄진다고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이야기하거나
원어민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냥 그들이 웃을 때 대충 따라 웃고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이다.
그런 나를 발견할 때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진다.
일을 할 때는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긴 하는데
이것마저도 어느 날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30년 이상의 눈치와 짬바로
오감을 이용하여 일을 할 뿐
업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참 많다.
(오감을 이용해 일하는 것도 내 능력의 하나라고 생각하며...ㅎ)
나의 이런 부족함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걸 물어볼 때면
상대방들도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 주곤 하는데
그럴 땐 그저 동료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이 한없이 답답하게 느껴지다 이내 곧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서글픔이 올라온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이고
노력을 해도 지금 잘 못 알아듣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양해를 구하고 다시 묻자, 괜찮다
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경우가 너무 많다.
며칠 전에 친구의 제안으로
친구의 친구들과 함께 근교여행을 다녀왔다.
이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꽤 잘 알아듣는다고 생각을 했고
친구들과의 여행이니 힐링이나 하고 오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충격적으로 내가 대화에 하나도 끼지 못하는 걸 느꼈다.
그들은 계속 웃고 떠드는데
나는 도대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도대체.
그렇게 영어의 덫에 빠져 하루 종일 피곤하고 여행 내내 낮이건 밤이면 그냥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무리들 중에 한 명이 이런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친절하게 개인적인 질문도 해주고
다른 활동할 때도 나를 챙겨주곤 했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우면서도
사실 정작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한 내 친구에게서 나는 은근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꼈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종종 본인의 친구들과 함께 만나서 놀기를 제안하는데
정작 셋이 만나면 그녀는 셋이 같이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친구만 보고 대화를 한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이 친구가 나를 불편해하나? 아니면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러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나를 따돌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는 잘 챙겨주는데
그저 약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나랑 공통점이 많이 없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추측하는 중이다.
나랑 둘이 간 여행이 최고였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절대로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는 생각이 안 들지만
그냥 기본적인 성향인가 라는 생각은 떠나질 않는다.
이 일들을 통해 한 가지 더 생각난 것이 있는데
내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회식할 때마다 느끼는 그 불안함이 불현듯 떠올랐다.
회식은 한국어로만 하고 우리는 같은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이지만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많이 달랐다.
나는 항상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내 얘기를 편안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고 언제나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물어오면 얼굴이 빨개져서
질문을 한 사람조차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질문해 준 게 고마우면서도
내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입을 여는 게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환경이나 사람에게서만
오직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생각
나를 받아줄 것 같은 곳에서만 비로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나 인 것 같다.
이런 내가
영국에서 와서 언어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 문화에 빠져들고 싶어 문을 두드리고
눈앞에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고 소중한 일상이다.
그리고 이런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누구보다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 하기에
오늘도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그대로 정진하는 나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잘했어 정말.
괜찮아. 아주 훌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