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동그라미는 대체 언제쯤 곁눈질을 안할까?

여기서도 드릉드릉하는 질투심.

by comma

여기서 지낸 지도 벌써 4개월 차.

이제는 구글맵 없이도 제법 이곳저곳 다닐 수 있고,
일이며 집이며 나름대로 잘 적응한 상태다.

이렇게 또 살만해지다 보니
나는 다시 슬슬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동족혐오'라는 감정을 꽤 쉽게 느끼게 된다.

특히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서 그 감정이 더 쉽게 생기는 것 같다.
(왜 한국인 앞에서 영어 쓰는 게 더 어렵다는 이야기, 많이들 들어봤을 거다.)


내가 분명히 한국어로 먼저 인사했음에도
굳이. 정말 굳이. 영어로만 대답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듣다 보면 모국어가 확실히 한국어인 사람인데도
왜 같은 한국인에게 영어를 고집할까?

물론 그게 매장 규칙일 수도 있고,
본인만의 철학이나 기준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내 안에도 있었던 걸 느꼈다.




여기 와서 느낀 건,
한인타운에 사는 사람이나 한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듯한 시선이 있다는 거였다.

본인들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는데
계속 그런 시선을 마주해야 한다면
그건 참 비참한 일일 것 같았다.

마치 “나는 해외살이 실패자야”라는 딱지가 붙는 것처럼.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요즘, 여기서 알게 된 몇몇 한국인들의 태도에
내가 꽤 실망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한국에서는 내가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현재에 집중하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예를 들면,
면접 보러 간 곳에서 한국인 매니저가
“영어도 못하고 실력도 없는 애들이 이력서를 넣는다”고
에둘러 이야기하던 일.

내 취업 소식이 살짝 아니꼬웠는지
연락을 씹고,

자기 자랑거리가 생길 때만 뜬금없이 연락하는 친구.

해외살이 외롭다고 당일에 만나자더니
약속 시간 다 되어 연락 두절,
몇 시간 뒤에야 “다른 일정이 있었다”고 말한 사람.

내 얘기엔 아무 관심 없고
본인의 성장 이야기만 툭 던지는 사람.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나도 점점 관계에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얼마 전,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유럽인이
자기가 하기엔 일이 너무 시시하다고
자기 감정을 필터 없이 내뱉었을 때,
우리 모두가 당황했던 것처럼.

그런 경험들이
관계에서 ‘서열 매기기’가 특기였던

나의 녹슬지 않은 실력을 다시 깨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부터 이미 이곳에 취업해서
꽤 높은 연봉을 받고

영국인 동료들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알콩달콩 지내는 사람을 보면
‘아, 나랑은 다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그의 이야기를 더 이상 관심있게 보고 싶지 않게되고


SNS에서만 알던 누군가는
처음엔 나보다 더 적응 못하는 듯 보였지만
지금은 멋진 직업도 갖고 이곳저곳 여행하며
삶을 즐기는 걸 보면서

그녀의 약점을 찾아보려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나를 내어주지 않기로 마음먹고,
조금씩 수동적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읽씹하고
은근한 타이밍에 무시하는 식으로.




지금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얻었을 것은 아마
내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함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을 잠시 내려놓고 여기 온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영어 그리고 여행.


그리고 그걸 통해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동그라미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내 우주를 잘 지키고 가꾸기 위해
이런 환경에 나를 밀어 넣었다.


영어 때문에 겪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줄이고,
조금 더 쉽게 많은 곳들을 여행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것들을
조금 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고
꽤 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내 동그라미는
계속 곁눈질하느라
오늘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아간다.

언제쯤 나만의 동그라미는
그저 그 형태를 유지한 채,
나만 바라봐 줄까?





keyword
이전 06화여기서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