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선택이 가져온 결과
사실 나는 한 번도 영국에 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여행을 간다고 해도 영국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그러다 외국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을 때,
영어권 나라 중에서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영국뿐이었다.
물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같은 옵션도 있었지만,
다른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결국 영국을 선택하게 됐다.
나는 미국식 영어를 배워왔고,
미국 영어를 좋아했고,
영국 영어는 한 번도 내 취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영국이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게 된 사람이 영국인이 되었고,
지금은 현지에서 두 명의 영국 친구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가 느낀 영국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피하고,
항상 칭찬이나 사과를 입에 달고 산다.
(예: “Sorry” 혹은 “Lovely”)
의외로 욕도 많이 하고,
그리고 정말 수다스럽다.
내 동료는 20대 영국인 두 명인데,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할 때 말이 많은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과 잘 소통할 줄 아는 것,
그리고 너무 진지하지 않은 것.
이게 내가 영국에서 느낀 가장 큰 문화다.
내 동료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너무 진지하거나 조용한 사람은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래서 항상 음악을 틀고 노래하고 춤추고,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심각해질 뻔한 일도 웃으며 넘긴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모든 걸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작은 일에도 두려움이 많던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괜찮으니,
겁먹지 말고 툭 내려놓고,
솔직하게 표현해보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별거 아니네.
다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네.
예전엔 ‘밝은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하느라 지쳤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없고,
또 그렇게 힘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느낀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서도
에너지가 조금 남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아직 원하는 모습에 닿지 못한 나조차도
결국 나의 일부다.
어차피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게 될 거라는 걸 아니까,
지금의 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