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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계획형 인간이 받아들임을 배우기까지

by comma

나는 MBTI에서 ‘J’가 굉장히 높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 걸 싫어하고,
모든 걸 내가 알고 통제할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사람들은 내가 도전을 잘하는 사람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도전하기 전에 엄청나게 조사하고 준비한다.
안 그러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좋아서 계획하는 게 아니라
두렵고 불안해서 계획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엔 좀 달라졌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불안이 조금씩 줄어든 걸까.


이제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되겠다’는 감각이 생겼다.

특히 해외에서는 모든 걸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체력도 안 되고,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자주 겪었다.


그래서 이제는
“최선을 다하되, 집착은 하지 말자”
이 문장을 내 삶의 기본값으로 삼고 있다.

다가오는 여행도 최소한의 것들만 빠르게 정리하고,
그다음은 그냥 운에 맡긴다.
그리고 요즘은 그 ‘운’을 믿어보려는 마음이 커졌다.


벌써부터


“결혼 못하면 어쩌지?”
“나이도 많은데, 아기 못 낳으면 어쩌지?”
“재취업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곤 한다.

마치 인생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해외여행 가서 유명 관광지만 부지런히 찍고 오듯
정작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나 여기 가봤어.'와 같은 도장만 찍고
지친 마음만 들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렇게 애쓸 힘도,
애쓰고 싶은 의지도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낀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는 이미 충분히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 안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으며
내 안식처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예전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
계획을 짜고, 또 짜고, 또 확인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기 싫어서
괜찮은 척, 의연한 척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만큼만 계획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냥 솔직하게 실망하고,
그 감정을 흘려보낸 뒤
또 나만의 방식으로 다음을 그린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


생각보다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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