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노을 진 구름이 되어 만날 수 있을지
내가 진주에 온지 벌써 2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동문이어서 아내들도 자기들끼리 각별히 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문자를 받고 형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딱 일년 전에 발병하여 그동안 화학요법에 반응이 좋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 모두들 어느 정도 낙관적인 기대도 하였는데 요근래에 와서 항암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였으며 지금 떠나는 것을 서러워하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둘째 장가 가는 것 못 보고 가는 것도 마음 걸려 하셨고요.
상가 식탁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J형과 만난 지도 28년이 넘어가지만 내가 이분이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다 동의를 했습니다. 형은 세상 말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었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것이 아니라 픽 웃어버리며 모든 것을 지워버렸습니다. 도무지 어떤 사람에 대해 험한 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용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형과 친밀하게 지내서 따로 술 한잔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유심히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격이 자그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감기에 걸려가 형에게 진찰을 받아도 그저 실없는 웃음을 날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처방을 내리고는 나를 돌려 보냈습니다. 혈압약을 탈 때도 실례인 줄 알면서도 간호사를 시켜서 약을 타와도 한번도 내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그 관용하는 마음이 오늘 내 마음에 더 떠오릅니다. 나 같은 자에게는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만 형은 주위에 항상 따뜻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사람 사는 게 뭔지요. 생명이 떠나는 순간 우리 몸의 세포는 생명력을 잃고 정지합니다. 동시에 분해하기 시작하여 부패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무덤 옆의 황토와 같게 될 것입니다. 화장한다면 뼈 가루 속의 원소가 다 분해되어서 흙속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다 흘러가 버리겠지요. 생명을 가진 세포 속에서 우리의 의식 혹은 영혼이 생성되었던 것인데 그 의식은 죽음과 함께 세포처럼 사라지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일 것입니다. 영혼은 영생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 결정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것을 따지기보다 이 주어진 한생 동안 형과 함께 시공을 같이 하고 숨을 쉬고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이 내게 추억이면서 마음에 잔물결처럼 남아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눈을 뜨자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하여 내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순간 형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아침 햇살을 보았고 형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모차르트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건널 수 없는 시공간 속에서 존재하면서 나에게는 형과의 추억만이 나뭇잎처럼 바람에 흔들릴 것입니다. 형이 있는 그 곳에서는 어쩌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쳐다보면서 한뼘만한 인생 속에서 시달리는 우리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위대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나에게 주어진 힘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언제 우리가 황금빛 노을 진 구름이 되어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이 지상에서의 짧은 만남이 내 마음 속에 언제까지 떨림이 있는 나뭇잎의 몸짓이나 무심히 부딪치는 파도처럼 내 마음에 와서 부딪칠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간밤의 비바람 때문에 내 발부리에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노란 은행잎이 세상을 하직하는 형으로 보였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