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의 한 노인
저는 음악에 특별히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에 대해 대단한 애피너티(affinity)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클래식을 듣는 것이 고상한 것 같아서 흉내를 내봤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정확한 판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시절 당시의 FM 방송은 하루 종일 클래식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FM 방송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죠. 간간이 듣기는 했지만 클래식에 대한 깊은 지식도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개업을 하면서 조금 사치하여 오디오를 장만했습니다. 마크레빈슨 앰플리파이어와 프리앰플리파이어, 씨디플에이어는 마이크로메가, 스피커는 에딘버러였습니다. 한참 들을 때는 씨디도 많이 사모았지만 애청하고 있는 목록은 초보자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곡들을 들자면 베토벤, 멘델스존,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으로는 말러 1번, 챠이콥스키의 비창, 브람스 교향곡 1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막스 브루흐의 콜니드라이, 브람스 첼로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 정도입니다.
악기는 사람마다 친화력이 다르겠지만 저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들으면 감정적으로 반응이 가지만 웬일인지 피아노 소리는 그다지 마음으로 전달해 오는 것이 적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라디오나 티비에서 피아노가 내는 유장한 멜로디에는 귀가 끌리는 적은 있었습니다.
우연히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의 선전을 알리는 거리의 깃발을 보자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 무리해서 예약을 하여 부산문화회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뜻밖에 고등학교, 대학 1년 후배의 J와 고등학교 동창 K를 만났습니다. J는 의사로 성공하여 거부가 되었고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노래도 잘 부르고 집에 수억대의 오디오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2,30년만에 만난 K도 S병원의 산부인과과장을 역임했고 클래식도 상당한 조예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과 낄낄거리고 웃다가 관람석으로 들어갔습니다.
브이아이피석은 제게 가당치 않고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백건우라고 생각해서 무리해서 R석을 구입했습니다. 들어가니 앞에서 네 번째 줄로 정가운데였습니다. 청중은 거의 90퍼센트가 여성으로 보였고 공교롭게도 저의 줄은 저 혼자 빼놓고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제 눈 앞에서 15미터 정도 앞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습니다. 멀리서 그 유명한 steinway & sons라는 렛텔이 노랗게 반짝거렸습니다. 천장 위에서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등이 일곱 줄로 이루면서 아래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무대는 높고 깊은 네모난 상자를 이루고 있었고 벽에는 주황색의 줄이 세로로 죽죽 내려쳐져 있었습니다. 피아노의 아래는 이상하게도 그 부분만 네모나게 밝게 보였습니다. 까만 옻칠을 한 것 같은 피아노의 본체는 반짝반짝 빛나면서 피아노 자체를 비쳤습니다. 누군가의 상체가 그곳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대 전면의 천장 부근에 조그만 마이크 두 개가 세 가닥의 줄에 의해 아래로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스피커 무대 양 옆에 반원 모양으로 불룩하게 튀어져 나왔습니다.
풍경 소리 같은 종소리가 울리면서 무대가 잠시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면서 이제는 오로지 피 아노만 조명이 내려 비쳤습니다. 피아노가 오롯이 정물이 되었습니다.
무대의 왼쪽에서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나타났습니다. 연미복에 반백의 머리가 두정부에서 내려와 목근처에서 한번 웨이브를 했습니다. 두정부는 이제 머리 숱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연미복 안에는 나비넥타이 대신에 터틀넥의 하얀 옷을 입었습니다.
작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건반을 눌렀습니다. 손가락이 길다고 느껴지면서 손 자체에 조명이 내려 앉아 유난히 하얗게 보였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오디오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유가 적당한지 모르겠으나 생선으로 말하면 펄쩍펄쩍 뛰는 생선으로 요리를 하는 것과 이미 죽은 생선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의 차이라고 할까요. 분명히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소리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간간이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났습니다. 한참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다고 문득 백건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무심한, 감정을 넣지 않은 웬 노인이 그저 건반을 툭툭 치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달관을 한 경지 같았습니다. 갑자기 빠른 템포로 손가락들이 좌우로 움직이는데 그것은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떼였습니다. 살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물길을 박차고 쉴사이 없이 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뜬금없이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피아노의 바퀴가 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황금색 바퀴였습니다.
갑자기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디선가 가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잘못 들었겠지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코고는 소리였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입장하여 잠시 코를 곤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정말 일생에 몇 번 가지 않는 음악회라고 한다면 몰라도 수시로 이런 데에 오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 곡목은 잘 모르겠고 그 곡목들에 대해 아는 지식도 피상적인 저에게 인터미션이 되자 이것은 스토리가 있는 음악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수백 명 혹은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정적 위를 건반의 소리가 깨뜨리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산전수전 다 겪은 무욕의 한 노인이 건반을 건드리고 있는데 그는 결코 몰입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리와 어떤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때로는 격렬한 소리를 낼 때에는 머리와 몸을 흔들면서 건반을 두드렸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그는 툭툭 소리를 뱉고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현란하게 튀는 듯한 손가락의 놀림보다는 오히려 느리게 건반을 누르는 것이 저는 더 좋아 보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목이 간질간질 하고 기침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기침을 그것도 연속적으로 하면 완전히 저는 죽을 죄인이 되는 셈입니다. 침을 억지로 계속 삼키면서 기침이 나는 것을 억제했습니다. 한참을 그 짓을 하니 기침이 사그러들었습니다. 진땀이 났습니다.
패루치오 부조니,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프레데릭 쇼팽의 곡이 끝나고 백건우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박수 소리가 진동했습니다. 옆에 있던 웬 여자는 벌떡 일어나서 우우 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점잖게 박수를 천천히 쳤습니다.
백건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늙어 보였고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청중의 그 요란한 박수 소리에도 그는 그다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이런 음악회를 했으니까 익숙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는 무대에 들어와 다시 인사하러 나왔습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일어났다가 살아졌습니다. 순간 저는 백건우가 사람에 대해 ‘샤이’(shy)하는 성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콜을 끝내고 다시 무대로 들어갔다가 나온 백건우는 열 손가락을 활짝 펴고 흔들었고 미소가 조금은 더해진 것 같았지만 그것조차 박수 소리에 묻혀버렸습니다. 그의 나이가 저보다 두 살 위인 걸로 알았는데 이미 저보다 고수 같았습니다. 희노애락을 다 통달한 인생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