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있어요 #24]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그랬나...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소설 '갈매기의 꿈'은 꽤나 종교-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비약하지 않더라도 비행 역사를 살펴보면 그 안에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일종의 판타지이다. 더 높은 곳이 더 미지의 세계이니까.
고도가 높을수록 공기는 희박해진다. 왕복엔진(자동차 엔진처럼 실린더 안에 피스톤이 왔다 갔다 하는 엔진)이 높이의 한계에 부딪히자 터보차져 엔진이 나왔고, 터보차져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게 되니 터빈 엔진이 나왔다. 아예 공기가 없어 올라가지 못하게 되니 산화제를 이용한 로켓 엔진이 개발되어 지구밖에까지 다녀왔다. 그러고 보면 인간들 정말 대단하다, 징글징글하다. 한계에 이르러도 도무지 포기란 걸 모르니 말이다. 어쨌든 인간의 욕망 블라블라는 그만하고, 그저 B787 여객기 운전사답게 상업용 운송 항공기 수준에서 이야기해보겠다. 갈매기 조나단 때문에 좀 흥분했는데, 이제 캄 다운하고 쉽게 쉽게 가보자. 큐.
단거리 비행기는 고도를 낮게, 장거리 비행기는 고도를 높게 순항한다. 무조건 낮게, 높게는 아니고, 적정 고도를 찾는 것이다. 단, 네댓 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은 적정한 '높게'가 대체로 '가능한 높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높이 날아야 경제적이야
높이 날면 좋은 것은 '연비' 이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면 연비가 좋아지듯, 비행기는 고고도를 순항하면 연비가 좋아진다. 여기서 비행 공부 좀 해본 항덕 학생의 반박.
"아닌데요, 고고도는 저고도에 비해 같은 속도를 유지하려면 엔진 파워가 더 들어가야 하는데요!!"
그것도 맞다! 비행기가 같은 속도를 유지할 때, 높이 올라갈수록 엔진 RPM이 더 올라간다. 엑셀을 더 밟아야 하니 연료를 더 쓸 수밖에. 비행기가 올라갈 수 있는 한계 고도를 그 비행기의 서비스 실링(Service Ceiling)이라고 하는데, 그 고도를 유지하려면 엔진은 거의 풀파워까지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보잉, 에어버스의 제트 운송기는 서비스 실링 대신 최고 고도(Maximum Altitude) 라는 용어를 쓰는데, 단지 엔진 출력만의 문제가 아닌 기내 여압, 버펫 마진(buffet limit: 개념이 좀 어려우니까 패스) 등 다른 요소도 고려한 개념이다. 우리가 보통 여행할때 타는 운송용 제트기의 최고 고도는 대체로 40,000 피트 ~ 43,000 피트(12,200 미터 ~ 13,1000 미터)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공기가 희박하면 그만큼 저항이 줄어들어 시간당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진다는 점이다. 덴버에 있는 쿠어스필드 야구장을 투수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이 구장은 다른 구장에 비해 공기의 저항이 적다 보니 투수가 던지는 공은 브레이킹이 잘 걸리지 않아 구질이 밋밋해지고, 반면에 타자가 제대로 때린 타구는 쭉쭉 뻗어 홈런이 되기 일수이다. 1,600미터 고도에서 작은 야구공이 받는 힘의 차이가 이 정도니 육중한 비행기라면 더하지 않겠나. 공기가 희박할수록 더더욱 쭉쭉 뻗을 것이다.
또한, 학생이 말하는 속도란 비행기가 실제 이동하는 속도가 아니라 기체와 부딪히는 공기의 속도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고도에서 두 비행기가 같은 공기 속도를 유지할 경우, 높은 곳의 비행기가 낮은 곳의 비행기보다 시간당 더 먼 거리를 날아가게 되므로 실제 이동 속도가 더 빠르다. 공기가 더 희박하기 때문이다. 같은 공기 속도를 유지했는데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 연료도 그만큼 아낄 수 있다. 실제로 비행할 때는, 고고도로 비행할 때보다 저고도로 비행할 때 더 빠른 공기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자가용도 아닌데 비행기 배차 시간은 맞춰야 하지 않겠나.
공기 밀도만 따지면 무조건 높이 올라가는 것이 정답이지만, 엔진이 공기가 희박한 고고도에서 얼마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 또 비행기 중량이 얼마나 무거우냐에 따라 높이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정풍과 배풍이 얼마나 부느냐도 고려해야 한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정풍이 엄청 불면 허무하지 않겠나. 따라서 적정 순항 고도의 산출에는 엔진, 무게, 바람, 온도 등의 함수관계가 있다. 뭐 그리 어려운 계산은 아니고, 비행 컴퓨터나 성능 표의 그래프를 활용해서 상황에 맞는 적정 고도를 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적정 고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낮은 고도보다는 아무래도 높은 고도를 택하는 것이 대체로 경제적이다.
무게에 따라 적정 고도도 달라. 한 번에 올라가지 말고 스텝-바이-스텝으로.
가능한 높게 나는 것이 유리하지만, 무거운 비행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올라가면 위험하다. 여분의 엔진 추력이 없어 비행기의 기동성이 약해지고 잘못하면 실속(Stall)할 수 있다. 그래서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허용 가능한 정도의 높은 고도를 선택해야 한다.
단거리 비행은 상관없지만, 장거리 비행은 적정 고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2시간 동안 기름을 활활태워야 하니 연료를 10%만 아껴도 엄청난 비용을 세이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높이 올라가야 하겠는데, 장거리 비행이라 연료를 가득 실으니 몸이 천금같이 무겁다. 하지만 도착할 때 즈음이면 연료를 시원하게 다 태워서 엄청 가벼워져 있을 것이다. 시간당 6톤의 연료를 태운다고 가정하면, 12시간 뒤에는 72톤의 연료를 소비하게 되는데, 많게는 항공기 무게의 25%~30%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이륙하자마자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비행기는 점점 가벼워지고 올라갈 수 있는 고도도 점점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무게가 줄어들면 더 높은 고도로 순항고도를 변경하는데, 이것을 긴 시간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하여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최종 순항고도까지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그것을 스텝 클라임(Step Climb), 혹은 순항 상승(Cruise Climb)이라고 한다.
단거리 비행은 다르다. 무조건 높이 올라가는 것이 세이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장거리 비행기들처럼 높은 고도로 올라가려면 더 오랫동안 상승을 해야 하는데, 자동차가 언덕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기도 상승을 할 때 더 많은 연료를 소비한다. 예를 들어, 장거리 비행 고도인 39,000 피트(11,800 미터)까지 상승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제주로 가는 1시간짜리 비행에서 39,000피트까지 올라가 버리면 비행시간의 절반을 상승만 한 게 된다. 강하해서 착륙하는 것도 보통 30분은 걸리니 올라오자마자 다시 내려가야 한다. 연료 효율 때문에 고고도까지 꾸역꾸역 올라간 것인데 숨고를 새도 없이 바로 내려가 버리면 의미가 없지않나. 기왕 올라왔으면 두세 시간은 순항을 해줘야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제주까지 갈 때는 보통 26,000 피트(7,900 미터) ~ 27,000(8,200 미터) 정도까지만 올라간다.
높이 올라가면 더 쾌적하다? 아니다?
높이 올라가면 쾌적하다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썬더 스톰 구름이 많이 생기는 등 기상의 변화가 심한 지역은 주로 공기가 많고 온도와 기압의 변화가 큰 대류권이고, 성층권으로 들어가면 기류가 비교적 스무스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 상식이지만, 성층권에 들어가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상승하는 기온 역전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내려가는데 온도가 올라가니 기류가 보다 안정적이 되는 것이다. 대류권계면은 적도지역에서는 보통 16,000 미터 ~18,000 미터, 중위도는 10,000 미터 ~ 12,000 미터, 고위도 지역은 6,000 미터 ~ 8,000 미터 높이에 형성된다. 따라서 중위도 지역은 3만 몇천 피트 이상만 올라가도 이미 성층권에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고고도를 싫어하는 사람은 태양과 가까이 있을수록 우주방사선 피폭 양이 많아진다고 믿으며, 오존층 안에서 비행하는 것을 마치 오염물을 거르는 필터 안에 있는 것처럼 여겨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잘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모두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론적인 근거를 설명할 수 없으니 이 부분은 패스. 대신 조종사의 입장에서 보면, 고고도로 갈수록 희박한 공기 때문에 비행기의 기동성이 떨어져 조금 불안하다. 물론 오토파일럿(Auto-Pilot)이 나보다 운전을 잘하겠지만, 만약 수동 조작을 해야 하거나 갑작스러운 돌풍을 만나 비행기의 속도가 불안정해지면 꽤 긴장된다(앞선 에피소드 '오토파일럿으로 비행하면 조종사는 뭐해요?' 참조하시라) 비행기는 빡빡한 공기쿠션이 받쳐주는 저고도 보다 흐물흐물한 쿠션밖에 없는 고고도에서 훨씬 예민하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 이론과는 좀 동떨어진 비유이지만, 자동차 주행을 할 때 고속도로가 빠르고 편하기는 하지만 고속 운전이 더 조심스럽고 살살 다루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질문이 뭐였지?
이거 문제다. 질문은 간단한데 아무리 일문 다답이라지만 원래 질문이 뭐였는지 헤매는 것을 보니 나 심하게 TMI 하나보다. 아무래도 오리지널 질문에 대해 간단한 대답이라도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원래 세 가지 같은 종류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첫째, 보통 비행기는 어느 높이 까지 날 수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타는 여객기는 보통 40,000 피트 ~ 43,000 피트 (12,200 미터 ~ 13,100 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둘째, 비행기는 보통 몇 미터 높이에서 비행을 하나요? 제주 갈 때와 외국 갈 때를 비교해 주세요.
셋째, 장거리 비행은 계속 같은 고도로 비행하나요?
이 두 질문은 같이 답변하겠다. 위에서 블라블라 한 이유로 제주와 같은 단거리 노선은 26,000 피트(7,900미터) ~ 27,000 피트(8,200미터) 정도로 비행하고, 동남아, 동북아 같은 중거리 국제선은 중량이 그리 무겁지 않으니 처음부터 38,000 피트(11,600 미터) ~ 41,000 피트(12,500 미터) 정도까지 올라간다. 10시간 넘게 나는 장거리 국제선은 연료를 많이 실으니 이륙중량이 무겁다. 그래서 처음에는 32,000 피트(9,800 미터) ~ 36,000 피트(11,000 미터) 정도로 순항을 시작해서 무게가 가벼워짐에 따라 단계별로 조금씩 순항고도를 상승시킨다. 중거리 노선과 마찬가지로 38,000 피트(11,600 미터 ~ 41,000 피트(12,500 미터) 정도가 최종 순항 고도가 된다.
경제성을 따져 최적의 고도로 비행하려고 해도 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비행기들이 같은 항로를 비행하다 보니 관제사가 매번 내 입맛에 맞는 고도를 배정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항로상에 제트기류와 같이 엄청 센 바람이 있거나, 뭐 기타 등등, 적정 고도를 결정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가 많다. 스크루지 영감처럼 연비만 따지면서 비행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고도를 정할 때 다른 고려 사항이 10이면 연비는 90인 것 같다. 나도 연료 신경 안 쓰고 스포츠카 붕붕 타고, 탑건처럼 애프터버너에 기름 활활태우면서 쌕쌕 날고 싶은데, 내 비행기에 앉으면 그거 안된다. 결국 자린고비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게 더 프로다운 것이니까. 연료는 돈만 세이브해주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회도 세이브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