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초보가 겁없이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나다

43세 아줌마가 되었어도 내게 살아숨쉬는 그날의 기억들

by 맘디터

16년 전에 아무 준비 없이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났습니다.

당시에 진로와 회사 업무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자주 가던 인사동 술집의 얼음산 그림을 보며 결심했던 여행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다시 회사생활을 시작했고, 결혼하기 전인 2010년까지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수많은 여행들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그 당시에는 그런 걸 정리할 시간에 하루라도 더 많이 여행을 가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복구한 예전의 SNS에서 수많은 사진을 발견하였고, 16년 만에 여행기를 정리합니다.

나는 이 당시에 사진을 왜 이렇게 찍었을까?ㅋㅋㅋ

설레는 마음을 안고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많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전부 네팔 사람들 뿐입니다. 숙소도 교통편도 예약하지 않고 무조건 떠난 저는 그제서야 제가 위험에 놓였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 순간에 한국 사람 2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들의 행선지를 물었더니 카트만두 중심가에 있는 친구네 집(숙소를 운영하는)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차를 얻어 탔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숙소가 정해졌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카트만두 시내를 돌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아침에 이상한 새소리에 눈을 떴는데 정말 진보라색 꽃으로 만개한 나무 위에 엄청 큰 새가 앉아 있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카트만두에서 머물 것인가, 조용한 시골로 떠날 것인가 고민하다가, 책에서 본 포카라 행을 결정하고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저는 이때까지 트래킹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데, 인사동 술집 그림으로 보았던 히말라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날개 끝이 이렇게 가까이 보일 정도로 작은 비행기였다
너무 가까이에서 히말라야를 만나니까 두렵고, 내가 신전을 향해 가는 기분이었다

포카라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었는데 복도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자다가 뱀이 나올 수 있습니다."

뱀이 나오면 둘 중에 하나는 죽는다는 각오로 항상 긴 나무막대를 끌어안고 잤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을 빈둥빈둥 노는데 당시에 남자친구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다가 와"라는 한 마디에 자존심이 상하여, 결국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결심합니다. 등산 스틱, 방한복 등 장비 하나 없는 맨몸으로 가이드를 구해서 바로 다음날 나야풀로 출발했습니다.

나야풀에서 만난 아름다운 광경

나야풀에서 울레리로 넘어가는데 울레리의 지옥계단이 제 앞에 펼쳐집니다. 딱 3500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되는데, 좁은 계단의 한 쪽에는 당나귀들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저는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녹초가 되어 거의 저녁에 도착한 숙소는 전기도 없었지만 내가 누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울레리 숙소 사진. 사진이 너무 흐리다 ㅠ.ㅠ
울레리 계단과 첫 숙소

당시에 찍은 사진을 보니 저렇게 가파른 돌계단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야풀의 아름다움은 까마귀 삶아 먹듯 사라져 버리고, 돌계단을 오르며 나의 선택을 후회 또 후회했었네요.

울레리에서 새벽에 출발해 종일 걷다가 도착한 곳은 푼힐에 가까운 마을입니다. 푼힐 전망대가 유명한데, 270도 각도로 펼쳐친 히말라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예요. 저는 푼힐에서 첫 고산증을 경험하였는데,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숙취 같은 증상이었습니다. 식은 땀이 나고, 속이 미식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얼굴이 팅팅 부은 상태로 돌아다닌 푼힐에서 저는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네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더라고요! 그 남자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는 3주 동안 한국인을 한번도 못만났고, 한국말을 너무 너무 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만난 한국 사람 상태가 거의 대왕 블루베리처럼 보랗게 뜬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 한국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저와 어느 대학원 생이 합류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을 같이 떠납니다.

이 나무 숲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정말 여러장 찍었는데 다 포커스가 나갔네요~~


트래킹 내내 반복해서 먹는 음식들
난과 커리, 볶음밥 등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고산병의 문제로 하루에 6시간 이내의 산행을 지키며 올라갑니다. 그래서 죽을만큼 힘들다가도 곧 맞이할 휴식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어요.

중간에 머물렀던 고요한 마을 숙소.. 내가 저 그림의 일부였다는 게 행복하네요


뱀부에서 뭐 했는지 기억이 안나요ㅋㅋㅋ 거머리에 물렸던 거 같기도 하고~~~

촘롱 마을이 생각나는데, 음식이 엄청 엄청 맛있었거든요. 촘롱은 ABC코스에서 큰 마을에 속하는데, 트래킹할 때 구경하기 힘든 빵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한국라면과 김치를 정말 원없이 먹을 수 있었던 곳입니다. 촘롱에 며칠 머물고 싶었지만 바로 다음날이 되자 저는 AI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다시 자동으로 여행길에 오릅니다. 드디어 제가 가장 기억이 남는 그 코스가 나옵니다. 바로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줄여서 ABC) 사이길. ABC 최대한 난코스입니다. 저 평평해 보이는 길이 왜 난코스냐고요? 저 구간은 산소가 지상의 60프로밖에 안 되어 고산증이 많이 오는 코스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자신감으로 무장한 제가 그 말을 새겨 들을리가 없죠. 새벽 4시부터 저 길을 걷는데, 제가 자꾸 제자리 걸음인 거예요. 영화 <나이트메어>처럼요. 즉 발을 길게 세게 내딛어도 그 노력이 무색하게 발이 내 코 앞으로 떨어지고 내가 생각하는 속도가 전혀 나질 않아요. 진짜 고산증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즉 MBC에서 호되게 겪었습니다. 결국 저의 모든 자신감은 강제로 해체당하고 다시 주눅모드로 돌입.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사실 산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거였다 ㅠ.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깨달음

내 몸이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고민하다가 조금씩 적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산소가 부족해서 나같은 등산 초보는 복잡한 사고를 할 수가 없음) 멍 하니 걸어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눈 앞에 이런 간판이 나타납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야, 나 도착한거야? 정말 전 세계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로 저 작은 가게 안에 모여 있습니다.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난리난리입니다. 왜 안 좋겠어요~ 무사히 여기까지 도착했는걸요. 저는 조용히 빠져 나와서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이런 모양입니다.

안나푸르나가 거인처럼 아니 벽처럼 하늘도 전부 가리고 서 있더라고요. 진짜 거대한 하늘벽이 떡 하니 눈 앞에 서 있습니다.

'안나푸르나가 저렇게 하늘을 다 가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싶어서 올라가는 거 아닐까?'

높은 지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느낄 줄 알았던 저는, 안나푸르나 하늘벽 앞에서 잔뜩 위축되어 "베이스캠프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라고 깨달으며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에서 만났던 한국남자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저보다 못생기고, 저보다 성격도 별로지만 우리가 웃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남매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엄청 나빴거든요. 그런데 부부가 되었네요ㅎㅎ2년 간 알고 지내다가 남편이 청혼 비슷한 첫 마디를 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이런 나를 믿고... 결혼해 줄 수 있어?"

"내가 널 왜 믿냐? 내가 나를 믿고 결혼하는 거지"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제 입을 꽉 틀어 막아버리고, 함께 긴 여행을 떠나는 남자를 향해 "당연히 너를 믿지, 너도 너 자신을 끝까지 믿어야 해~"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고 싶네요.


내가 다시 27세로 돌아간다면 저 무모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는데, 저는 또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50대에도 앞으로도 계속 무모한 여행을 할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내가 나에게 느끼는 경외감. 내가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여행의 그 모든 순간들.

20대에 매일 출퇴근 했던 회사와 회사 사람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여행의 모든 순간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아마도 여행의 모든 순간 순간들이 제 생명 깊은 곳에서 저를 지탱하고 있었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병고, 인간고 등 다양한 괴로움을 겪지만 가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지금은 숨쉴 수 있는 공기가 넘치잖아. 행복하지~"

남편은 ABC도 많이 변했을 거라고 아쉬워하지만, 나의 ABC트래킹은 이렇게 한 장의 빛바램도 없이 생생하게 저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여행의 모든 순간에 출연해주신 아름다운 지구, 우주가 빚어내는 시간, 인연이 된 사람들에게

영원히 감사하면서 살아갈 겁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저와 함께 지구와 우주와 사람을 사랑하면서, 함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실까요^^


- 다음 회에는 부부가 신혼 여행으로 찾아간 동남아 최고봉 코타키타발루 트래킹을 올려 드릴게요~~





keyword
이전 01화안나푸르나 여신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