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여신을 아시나요?

그녀를 조심하세요

by 맘디터

저는 2007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났습니다.

말이 멋있어서 트래킹이지, 등산 장비 하나 갖추지 않고, 영어 한 마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고난이 이미 저와 손가락 걸고 약속한 채 기다리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포카라에서 수만 계단의 울레리를 걸어 올라 푼힐에 도착했을 때 저는 고산병이 왔습니다.

속이 미식거리고 두통이 심한 숙취 같은 증상이었습니다.

푼힐을 지나 처음 맞이한 마을에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데 네팔 사람보다 더 네팔 사람 같은 그 모습에 실망했고, 그 남자는 얼굴이 팅팅 붓고 보라색으로 변한 저의 모습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창피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친구들과 어울려서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친 그 남자는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저와 대구카톨릭대 학생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에 합류합니다.


그는 동 트는 새벽에 일어나서 만화책을 읽는 특이한 취미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왜 이 아름다운 시간에 멋진 8등신 외국인들 사이에 끼어서 저런 B급 만화책을 읽고 있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응가가 토끼로 변하는' 내용의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는 모습은 정말 유구무언입니다.


제가 트래킹을 했던 5월은 안나푸르나의 우기입니다. 걷는 내내 소나기를 맞고, 밤 하늘의 별 하나 볼 수 없는 우중충한 풍경에 말이 안나왔습니다.

그 날도 어느 롯지(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아궁이에 앉아 네팔 할머니 옆에서 불멍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 할머니께서 혼자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데, 옆에 있던 젊은 포터가 말합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안나푸르나는 질투가 많은 여신의 산이래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올라오면 갈라놓는다네요."

"저는 사랑하는 연인이 지금 한국에 있는데요? 그 사람과 안 오길 잘했네요."

"안나푸르나는 질투도 많지만 마음이 고운 여신이래요. 같은 상처를 가져서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행복한 남자와 여자를 이어준다네요."

"네..."


인연이란 기이해서 8등신 미녀를 사귀고 있던 그 남자는 정확히 2년 후에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곰탱이 여자. 고산병으로 침을 질질 흘리던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 여자는 임상심리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자상한 남자 말고,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네팔리안 보다 더 네팔리안 같은 그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때 이야기를 하며 서로 같은 한국인이라는게 얼마나 창피했는지 막 인신공격합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1988년 같은 해에 남자의 집에, 우리 집에 큰 사고가 있어서 1년 동안 남자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의 사고로 방임처럼 1년 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옆모습을 떠올리면 그 분이 과연 사람은 맞았던 걸까 제 눈을 의심합니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안나푸르나 여신은 아직도 살아서 서로가 창피했던 남자와 여자를 굳이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결혼 12동안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잉꼬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나푸르나 여신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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