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지리산에 오르다

둘째 출산후 내게 찾아온 산후우울증과 지리산 트래킹

by 맘디터

2013년 봄에 둘째 공주를 출산하였습니다. 가족 모두 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상도 못한 고운 딸이 저희 부부에게 찾아온 겁니다. 매일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고, 둘째라 순산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첫째처럼 난산을 하였습니다. 온 침대에 피가 범벅되었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꽃 한 송이가 핀 것처럼 어떻게 만져야 할지 모르겠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닳을까봐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KakaoTalk_20220729_095332432_03.jpg 생후 한 달 된 둘째 딸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온 겁니다. 매일 바라보던 하늘이 달라보였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내 감정과 생각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매순간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공감대왕이 트레이드 마크인 제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기 어려웠고, 내게 늘 똑같이 잘해주는 사람들의 말과 표정도 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잠들어도 누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아 벌떡 벌떡 일어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남편은 늘 다정했고, 모든 걸 도와주시는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가 항상 옆에 계셨기에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말씀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호르몬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이때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이 내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데 어떻게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떠오릅니다. "지리산 종주를 떠나자." 한 마디로 미친 겁니다. 출산한지 얼마 안되어 골반뼈가 삐걱거렸기에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한 마디로 산후조리를 포기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속이고 가야 했기에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은 어두운 얼굴로 며칠을 고민하더니 저를 도와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많은 고민 끝에 배낭을 챙겨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지리산 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10.jpg 흔들리는 버스와 흔들리는 사진, 흔들리는 내 마음

남편에게 코스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나를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연이은 출산으로 호르몬이 요동친다고 해도, 내가 내가 아닌 건 아니니까,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야 했습니다.

새벽 3시에 하차해서 택시를 타고 늘 가던 노고단이 아닌 낯선 길로 한참 갑니다. 어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음정마을이라는 곳에 택시가 멈추었고 남편의 뒤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 올라갑니다. 지리산 음정마을-벽소령 코스가 시작된 겁니다.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09.jpg 음정마을-벽소령 코스

새벽 4시의 지리산은 내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합니다. 그냥 흙을 밟은 느낌을 따라 앞 사람의 실루엣을 보며 걷는 거예요. 저는 헤드라이트를 켜면 오히려 풍경이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불을 끄고 걷는 편입니다. 걸을 때마다 무릎이랑 골반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자궁에 고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하염없이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 칠흙같은 야간 산행에서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너 괜찮아?" "너 괜찮아?" "너 괜찮아?"

새벽 5시가 다 되어 일출이 시작되자 음정-벽소령 코스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08.jpg 새벽 5시, 음정-벽소령 코스

이 코스는 이런 완만한 길을 계속 올라가는 구간이었습니다.

"지리산에 이런 구간이 있다고? 난 처음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편이 산후조리를 하다 말고 지리산에 올라가겠다는 저의 이야기에, 지리산 국립공원에 여러번 문의를 하고 상의를 해서 이 코스를 알아낸 거였습니다.

아이들도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하고 아름다운 코스를 계속 걷다 보면, 벽소령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너덜길이 나옵니다. 이 너덜길은 남편도 저도 각자 해내야 하는 숙제이기 때문에 서로 말 없이 약간 멀리 떨어져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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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골반이 부서지고, 뼈 마디가 닳는 느낌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지만, 비를 맞으며 이를 악물고 올라갔습니다. 내가 나를 찾으면 그 뿐이었습니다.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06.jpg 2013, 비 내리는 벽소령 대피소

그렇게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비 내리는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남편과 준비해간 라면을 끓여먹고 하염없이 지리산을 바라봅니다. 남편이 저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장터목까지 강행할 것인지, 하산할 것인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터목 구간을 꼭 보고 말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그건 남편에게 할 짓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 엄마 젖을 기다리는 둘째 딸도 걱정되고, 산후조리 중인 제 몸도 걱정되고 초보아빠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갔을까요.. 고생 하나 안하고 곱게 자란 어린 남자가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이런 상황에 맞닥드리니 남편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속이 탔을까요.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라고 작게 말하였습니다.

맑게 개인 벽소령과 인사를 나누고 등을 돌려, 하산을 시작합니다.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05.jpg 벽소령-음정마을 하산길

너덜길을 조심히 내려와 음정마을로 하산을 하는데, 어둠속에서 올라온 숲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어느새 제 한 걸음 한 걸음에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조용히 들어와 있다는 행복감과 내가 이 나무들처럼 여전히 푸르고 강하다는 자신감이 제 안에서 고개를 듭니다.

산을 타고 올라간 너덜거리는 제 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제 마음을 일으켜 세운 겁니다.

하산을 거의 끝날때쯤 저는 지리산을 향해 팔을 크게 뻗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아!"

KakaoTalk_20220729_095053884_04.jpg 나는 이제 괜찮아, 정말이야, 고마워 지리산아

서울로 돌아와 둘째에게 젖을 물리는데, 저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우울하지 않은 게 아니라 우울한 마음에 맞서는 감사함과 즐거운 마음이 같이 올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끔 제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너 괜찮아?"

"너 정말 괜찮아?"

만약 내가 나에게 "나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는 지리산 종주에 오를 겁니다.

20대 시절의 에너지 넘친 종주, 산후조리 중 음정마을-벽소령 트래킹, 그 후에 다시 남편과 올랐던 종주길...

이렇게 지리산은 내가 별 힘이 없어보이는 그 초라한 순간마다 저를 잡아주고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수천 수만년의 시간을 품은 지리산도 저와 만나는 그 짧은 순간이 싫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리산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너 괜찮아?"

"너 정말 괜찮아?"


-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 중에 올라갔던 지리산 트래킹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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