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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an 12. 2024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족

그래, 괜찮아~ 가볍게 잘 넘어가자~

주말에 굴보쌈을 먹고, 정확히 24시간 후부터 변기에 머리를 숙이고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굴이 나를 배신할리가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서, 10년 만에 먹어본 초콜릿과자에 체한 거라고 버티다가, 결국 병원에서 노로바이러스 감염으로 추측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시각 남편도 설사를 시작했어요.


굴을 우리만 먹어서 다행이라고, 우리가 토하고 설사하는 건 아이들 아픈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부부가 안도하고 있을 때, 엄마아빠의 발병 3일 만에 우리 집 첫째 아기곰이 구토를 시작합니다. 어제저녁에 먹은 닭고기가 체한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지만, 아이가 토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직감합니다. "감염됐구나."


아이는 12시간 동안 7번을 토하더니 결국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병원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전형적인 노로바이러스 감염입니다. 굴을 안 먹었어도 간단한 신체접촉으로 전염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네요. 잠시 후에 엄마인 저의 죄책감을 눈치채셨는지, "꼭 엄마아빠가 아니더라도 친구나 학원에서 감염될 수 있어요"라고 소아과 선생님 특유의 위로를 해 주시네요.


수액과 영양제를 꽂고 아기들 사이에 누워있는 예비 중1 우리 집 첫째 곰.

엄마아빠가 다니는 내과에 가자고 했더니, 자신이 오래전부터 왔던 소아과를 고집했고,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들 사이에서 결국 수액을 맞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기들 사이에 청소년이 누워있는데도,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아빠들의 마음과 중학생이 되는 큰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하다가 말고 뛰어온듯한 정장차림의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을 애처롭게 안은 모습, 아기를 바라보는 미안한 표정.

우리 집 아이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며, 공부스트레스로 자꾸 손톱을 뜯는 건 아닐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안하고 애처로운 내 마음...

주사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아빠의 마음은 이렇게 다 비슷해 보입니다.


아이에게 말합니다.

"아기 안고 있는 엄마아빠의 표정 봐.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첫째 곰은 그냥 침묵합니다.


'엄마 마음도 같아. 이렇게 네가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사실 엄마 눈에 너는 아직도 연약한 아기란다'

이런 제 마음을 숨기고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딱딱하게 말합니다.

"괜찮아.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가볍게 잘 넘어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눈을 뜬 아이가 저에게 말합니다.

"엄마.."

"왜? 많이 아파?"

"나 메가 xx 아이스티 마시고 싶어"

"너 아직 덜 아프구나"

결국 사춘기 아들과 40대 중반 엄마의 기싸움이 오늘 하루도 쉬지 않고, 소아응급실에서도 시작됩니다.


톨스토이의 책에서 위로받았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이의 반은 부모가 지키고, 나머지 반은 신이 지킨다."

너의 반을 지키는 엄마아빠와 너의 나머지 반을 지키는 신의 숨결을 잊지 말라고, 너는 완전하다고, 힘내라고.

지금 이 시간 소아응급실에 함께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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