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코엑스를 가다

20대 중반의 나를 만난 특별한 시간

by 맘디터

싱가폴에 거주하는 저자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고, 미팅이 잡혀서 코엑스로 향합니다.

네비게이션을 열고 시동을 건 후에, 음악을 재생합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내부순환도로가 꽉 막혀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문득 제가 거의 20년 만에 코엑스를 방문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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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코엑스에 한번도 안 간거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유가 생각납니다.

20대 중반에 사귀었던 한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과 항상 시간을 보냈던 특별한 장소가 바로 코엑스였습니다.

하물며 그 사람에게 장난 같은 청혼을 받았던 곳도 바로 코엑스였습니다.

20대 몇 년에 걸친 어설픈 풋사랑은 모두의 예상대로 낯뜨거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고, 저에게 코엑스는 바로 그 사람을 생각나게 만드는 장소였던 겁니다. 그 장소를 제 발로 찾아갈 리가 없죠. 정말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 남자도 아니고 코엑스도 아닙니다. 바로 그 시절의 제 모습이 조금 더 어른이 된 제 눈에는 영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20년 만에 코엑스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길 잃은 송아지처럼 횡설수설하며 약속장소를 힘겹게 찾아갑니다.

지도가 나올 때마다 멈추어 지도를 살피고 어렵게 도착한 별마당도서관 스타벅스 앞에 초면의 저자가 서 있습니다. 악수를 하고 함께 조용한 까페로 이동하여 대화를 나누는데, 저자가 저에게 선물을 건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금색 종이로 포장된 싱가폴 커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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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납니다. 20대 시절의 잿빛으로 물든 코엑스에 대한 기억이 이 선물 포장지 하나로 황금빛 선물을 받은 특별한 장소가 되어 버린 겁니다. 코엑스 곳곳에 켜진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들, 사람들이 설레는 표정들, 저자와 함께 마신 보라색 레몬에이드.. 지금 눈 앞의 황금빛 현실이 20년 전의 페이지 낱장을 힘겹게 다음 장으로 넘기는 순간입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진 않지만 이 황금색 커피상자를 하루종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코엑스를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별마당도서관을 지나는데, 20년 전에 서성이던 반디앤루니스가 생각납니다. 20대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지, 그 책들을 보며 마음 속의 무엇을 해결했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시절에 항상 추위를 느꼈던 어린 내가 있었기에, 아줌마가 된 지금의 나는 따뜻한 현실을 만드는 뜨개질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네가 있었기에 내가 있다고, 너의 그 많은 실수가 있어서 지금의 나는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20대 시절에 고생한 제 자신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 엄마의 글을 매일 기다리는 나의 극성 1호 팬인, 우리 둘째 봄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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