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so Oct 18. 2023

현관문 사수 궐기대회

이혼 후 택배를 합니다 08

현관문 사수 궐기대회


이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본 것은 택배상자, 신선식품이 든 로켓플래시백, 작고 가벼운 것을 담는 비닐 폴리백이다. 그리고 비슷하게 대면한 것이 있다면 아파트 현관일 것이다. 고객님이 대문을 열면 수줍게 맞이할 기쁨(택배)을 위해 보기 좋게 두려 하지만, 귀신 등판할 것 같은 광경엔 헉하고 물러나게 된다. 자전거나 두는 전유물이었는데 다소 살풍경하고 유니크하게 변모하게 된 그곳. 여러분들께 쇼킹 대한민국 현관문 사수 궐기대회의 초대장을 살포시 날려볼까 한다.


1. 서낭당형


보자마자 입틀막 하게 되는 참으로 뜨악한 케이스다. 엘리베이터 열리기 전부터 음습한 기운이 스멀스멀 비져나오는 서낭당형. 통일되지 않은 컨셉이 가던 귀신도 발목 잡게 할 광경. 의문스러운 옷가지와 신발이 굴러다니고 장독이니 항아리니 박이니 희귀한 시골아이템이 위풍당당히 자리 잡았다. 반쯤 죽어가는 기이한 식물과 마늘 파 양파자루들이 한켠을 차지하는 것은 기본 옵션. 사람 되고 싶은 곰 호랑이가 더부살이하면 딱 좋을 모양새. 여기 도달하면 심장 바운스와 함께 우이씨가 절로 터져 나온다. 경악 대종상 발군의 후보로 분류해야 마땅하다.


2. 렌트샵형


렌터카인지 카센터인지 모를 다양한 이동수단으로 빼곡한 이곳. 이쯤이면 업체각인데 단지 내에서 돈 받고 대여해도 되지 싶다. 이 댁은 대체 몇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설마 다 타는 걸까? 버리지 못한 건지 아이가 많은 건지 알 수 없다. 주로 씽씽카, 킥보드, 애 자전거, 어른 자전거, 유모차, 간이 유모차, 롱보드, 날아라 슈퍼보드 등이 즐비한데 택배 둘 곳이 없어 바구니에 넣어 드릴까 진지하게 고민될 지경이다. 골라 타는 것도 일이겠다 싶은 배스킨자전쓰 렌트샵 형도 입이 떡 벌어지긴 매한가지다.


3. 이삿짐센터형


이 유형은 예술점수 10점에 기술점수 10점을 더해주어야 한다. 어디서 구했는지 복도 코너바리에 켜켜이 프레임 짜서 꼭대기까지 수납을 처리했다. 그 덕에 틈 없이 꽉 찬 짐으로 현관 센서가 무용지물인 수준. 주로 캠핑 장비나 커다란 짐들이 적재되어 있다. 현관도 어느 정도 노출이 된 구역인데 저리 미관을 해쳐도 되는가 내가 유교걸인가 특이점이 온다. 왠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대반전으로 모델하우스처럼 모든 것을 수납했을 것 같다.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삿짐센터 능력치를 보유한 그들. 살며시 투잡을 권한다.


4. 별채형


옆집 세대가 없는 탑층에서 주로 보이는 유형. 또는 구조상 복도 공간이 낭낭한 세대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 오면 배송하다 말고 한숨 때리고 싶은 욕구가 든다. 잠 못 자고 뛰쳐나온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보기 좋다는 뜻은 아니다. 부부싸움 하거나 말대꾸하다 쫓겨나는 구성원이 있다면 여기서 며칠 묵어도 나이스 할 별채형 현관. 기본 옵션으로 일단 커다란 소파가 놓여야 한다. 그 많던 거실은 어디로 갔을까? 선반, 원목 발판, 피아노의자, 우산꽂이 같은 것도 배치되어 있어 얼핏 보면 작은 응접실인지 헷갈릴 정도. 기다란 오브제에 듬성듬성 꽂아둔 조화까지 얹으면 기가 막히다. 당신에게만 주어진 보너스 공간으로 착각하여 한껏 꾸며놓으셨다. 하지만 투머치,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 따스한 우리집형


마지막 후보군. 고백하자면 나는 이 세대들의 팬이다. 존심 상하게 배아프기까지 했던 따스한 우리집형. 맞닥뜨리면 미소가 물신 피어나는 집주인의 온기를 품은 현관들. 보는 이들의 꿈마저 실어줄 것 같은 드림캐쳐가 대롱대롱한 대문. 지민이의 행복한 우리집입니다 삐뚤빼뚤 푯말 걸린 대문. ‘여보 오늘도 고생했어요 사랑해요.’ 소담한 문구가 있는 대문들. 그랬다. 아이러니하게 천차만별 현관사수궐기대회 중 가장 상념에 빠뜨리는 유형이다. 바보 같은 비약이지만 이 문을 열면 서로의 쉼이 되는 그림 같은 가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지 못하는 나를 작은 슬픔에 젖게 했다. 하지만 쌉싸리한 못난 자격지심도 문틈을 비집고 나오는 포근한 집 냄새에 금세 녹아버리고 만다.


독자님들은 어떤 세대에 영광의 대상을 수여하실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현관을 품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실제로 마주하면 개성이 차고 흘러넘쳐 나처럼 심사를 포기하게 될 테지만.


새벽녘 피치 못하게 현관 사수 궐기 대회를 1열에서 관람하노라면 집주인들의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온갖 쓰레기와 똥 기저귀를 내놓은 세대와 한 병드시란 메시지와 가지런한 생수병을 내놓은 세대가 같을 리 없기에. 그 문짝을 보며 여러 생각에 빠져들었다.


밖과 안을 가로지르는 네모의 공간. 나를 분리하는 벽이자 보호하는 벽. 어쩌면 우리는 문밖에 새어 나가는 마음을 걸어둔 건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괜히 현관 얼룩을 물티슈로 박박 닦으며 지저분한 마음을 정돈했다. 또 어떤 뉴페이스가 등장할지 기대하며 새로운 문을 힘줘 밀어 본다. 도로시의 빨간 구두처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전 07화 사라진 하인즈 케첩을 찾아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