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택배를 합니다 09
너나 먹지 지지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10초간 생각의 시간을 드려본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이에겐 사랑 충만하게, 어떤 이와는 지독한 악연으로 복잡다단한 군집의 관계를 이루고 계실 테다. 와보지 못했던 세상에 발디디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저냥 일상의 반복되었는데 이 바닥을 겪어보니 삼라만상 단편극이 하루 단위로 펼쳐지고 있었다.
다행히 좋은 기억부터 떠오른다. 이리 일찍 시작하냐며 격려를 건네는 목소리에는 인자한 빛이 감돈다. 주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데 본인 세대 택배를 챙겨가겠다 내가 드린다 실랑이하는 정겨운 바이브도 가능하다. 간혹 시간에 쫓길 땐, 양해 구한 뒤 정차하기도 하는데 선뜻 열림 버튼을 누르는 호의. 그 손짓하나가 내겐 신의 구원이다. 솔직히 한번 보고 치울 경우의 수엔 품 들이지 않는 게 어른의 관계 맺기. 냉랭함이 기본 옵션인 사람들에 비하면 이런 분들은 고매한 품격마저 느껴진다.
반대 케이스로 가본다. 일단 언행에 거침이 없으시다. 택배고 뭐고 엘리베이터를 왜 잡냐며 이 시간에 꼭 해야 하냐 역정 내시는 분(새벽이 아니라시면 대체 언제가 좋을까요), 무례한 시선으로 마구 스캔하며 대놓고 구경하시는 분, 수레 때문에 좁다는 짜증이 기본 옵션으로 장착된 주민들도 더러 있다. 한 번은 바퀴 소리가 싫다며 다짜고짜 본사 클레임과 경찰 신고를 운운하며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성품은 아무리 잘 만든 제품도 소음이 불가피하여 결국 대표님의 특수 제작 수레를 빌려야 했다. 소문 들은 우리 기사님은 택배 안 시키면 말을 만다며 편 들어줬지만 까만 새벽에 샤우팅 내지르는 장정은 겁부터 덜컥 난다.
외에도 기구한 사연 많지만 잊지 못할 일화가 있다.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내 안의 덩어리가 울컥한다. 보통 아래부터 배송을 시작하면 간혹 주민들이 타시곤 한다. 이른 출근 하시거나 쓰레기를 내놓거나 산보 또는 담배 태우는 세대이다. 그 여자분은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셨다. 역시나 땅 꺼지는 한숨과 함께 탑승. 그럴 때면 괜스레 민망하여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남은 수량을 카운팅 하거나 지도를 확대하며 시선을 떨구지만 좁은 공간에서 진득하게 붙어오는 눈. 아예 내게로 몸을 돌려 주시하는 느낌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이 시간이 끝나길 바라지만 야속하게도 시계는 늘 상대적이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어 죄송하다는 멘트를 전하려는 찰나였다.
“쯧쯧쯧! “
저 정도면 아프지 않을까 싶게 혀를 찬다. 순간 가까스로 버텨오던 둑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면 답답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역지사지해 보면 바쁠 땐 얼마나 짜증이 치밀어 올랐던가. 일분일초가 급한데 층마다 정차하는 이가 야속했더랬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이제는 역으로 물불 가리지 않는 철면피가 돼야 한다.
덜 붐비는 새벽에 일하고 있고, 누군가 타면 올스톱하고 그곳으로 갔다 다시 일하는데, 성격 급한 분들에겐 핑계든 변명이든 통할리 만무하다. 난 그저 아묻따 대역죄인일 뿐. 멈추지 않는 혀놀림에서 멀어지려 노력하며 모멸감을 애써 누른다. 허나 여운이 오래가서 알바를 시작하고 가장 마음 힘든 날이 되고 말았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기록적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인즉, 더 기록적인 날이 있었다는 소리다. 참 요지경 대박 알바천국이다. 그날은 상품 입고 차량이 일찍 와서 평소보다 빨리 일을 시작했다. 기사님께 상황을 고지받고 후다닥 끝낼 심산으로 서둘렀다. 평소 루틴대로 수레에 첫 동의 물건을 싣고 기세 좋게 출발하는데 안개가 잔뜩 끼어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가로등도 유독 침침해 유명한 쫄보는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 상가 편의점 쪽, 역광의 형체가 내게 저벅저벅 다가온다. 방향이 정확히 이쪽이라 뭐지? 확인하는 순간 얼음처럼 그 자리에 붙박였다. 놀라면 몸이 굳는다는 공식을 경험치로 얻는다. 빤스런이고 뭐고 뻣뻣한 고드름이 된 까닭은 걸어오는 형체의 목이 90도로 꺾여있기 때문이었다. 귀신인가 싶어 뜨악하는 와중에도 터벅터벅 가까워지는 걸음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쿵. 쾅. 쿵. 쾅.
심장소리가 내 귓등에 퍼진다. 사고회로가 정지한 내 앞에 우뚝 멈춘 형체가 이제 말까지 한다.
“저기, 이거요. 이거 드세요, 네.”
더듬더듬. 그렇지만 씩씩하게 내뱉은 말소리에 푸른 입김이 일었다.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맑은 음성이었고 스무 살쯤 돼 보이는 그 여자애는 내게 ‘오렌지에이드’라 적힌 음료를 내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몸을 온전히 가누기 어려워 보였지만 걸음만큼은 야무진 아이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건넸다. 평소 목소리 톤이 ‘미’ 정도라면 ‘라샵’ 정도 치겠다 싶은 높은 음성. 벅찬 감정으로 연신 두 번째 세 번째 감사를 전했다. 두려움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단 몇 초의 시간. 누군가에겐 혀를 차는 경멸의 시간이 누군가에겐 단번에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시간이 된다. 쇼케이스에서 막 꺼냈는지 오렌지에이드가 송골송골한 이슬을 뿜는다.
찰나의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얼핏 봐도 기역자로 꺾인 목 때문에 이목을 집중시킬 것 같은데 활동하기 편한 시간이 지금인 걸까, 혹시 이것을 전해주기 위해 기다린 건 아닐까, 1+1 제품을 샀을까, 먹으려고 샀다가 날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준건 아니겠지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너나 먹지 지지배.’
기특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난 아무래도 좋으니 네가 좋은 것을 했으면 하는 생각. 내가 그 애의 몫을 뺏은 건 아닐까 하는 오지랖이겠지만 솔직히 그 예쁜 마음 하나로 기이할 정도로 도파민이 솟구친다. 험난한 세상에 한 번씩 이 기특한 마음을 전하며 지금처럼 씩씩하게 걸어갔으면 한다.
육신이 삐뚠 사람보다 마음이 삐뚠 사람이 산재한 시대. 그렇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고 한다. 그게 삶의 묘미라며 힘내서 더 잘 살아보라 한다. 유난히 시원했던 새벽의 오렌지에이드는 그렇게 고맙게도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리고 깊은 상처를 안아주는 다시없을 위로가 되었다. 나도 오렌지에이드 같은 사람이고 싶다. 묵힌 갈증을 날려주는 싱그러운 여운이 감도는 존재. 이토록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전한다.
으이그~ 너나 먹지 지지배. 다음에는 언니(또는 이모)가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