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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Sep 26. 2024

엄마와 함께

시간의 질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자비롭지 않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엄마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다니던 동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한 후 진료의뢰서를 받아 대학 병원으로 갔다. 작년 안과병원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대학병원에서 다시 해야 할 각종 검사와 긴 대기 시간이 염려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약을 잡고 처음 가는 날 펑펑 눈이 내렸다. 평소라면 탐스런 눈송이가 반가웠겠지만 얼마나 심각한 건지 가늠할 수 없는 병원 가는 길은 심난했다. 


 엄마는 쉰한 살부터 당뇨를 앓았고 혈압도 높았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엔 통풍까지 잦았다. 퉁퉁 부은 발로 절룩이며 걷는 엄마는 점점 작아지고 쇠약해져 갔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아픈 사람들로 북적이는 병원에서 내분비내과와 신장내과 두 곳의 진료와 검사를 하루 종일 받았다. 내과 두 곳의 의사들은 엄마에게 현재 상태를 쉽게 말해주지 않았고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예약을 잡았다. 어떤 약이든 오래 투약하면 신장이 망가진다고 한다. 하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먹는 약이 다른 장기를 상하게 하는 현대 의학이라니. 


 지쳐 돌아온 엄마는 ‘투석을 받으라고 하면 안 할란다, 내는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죽을란다.’라고 했다. 치료받지 않고 죽겠다는 엄마 옆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걱정은 결과를 듣고 하자고 말했지만 마음은 내내 덜거덕거렸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할 거 같았지만 딸인 나는 죽겠다는 엄마가 밉고 동시에 가여웠다. 결과는 심각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투석받을 정돈 아니었다. 하지만 신장 기능이 더 나빠지지 않게 식단관리를 철저히 하고 혈당과 혈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당뇨와 만성 콩팥병의 식사요법에 대해 병원 부설 센터에서 교육도 받았다. 교육을 받고 나온 후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거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어딨노. 매일 지키기가 어렵지.’라고 했다. 


 한동안 엄마는 소금과 각종 양념이 거의 빠진 밥상 앞에서 한숨을 쉬다가 다시 마음을 내어 운동할 요량으로 산책을 나가고 다시 무기력하기를 반복했다. 자주 힘들다, 기운 없다, 이렇게 천천히 말라죽어야 하나, 참 징글징글한 죄가 많은 병이다를 내뱉다가 밑도 끝도 없는 발작적인 짜증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픈 엄마는 당신이 먹을 간을 세지 않은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아들의 밥상을 차렸다. 아버지는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걸 보여주듯 홀로 평안했고 매일 일하러 나가 엄마의 불안한 상태를 느낄 틈이 없는 동생은 나보다 덤덤했다. 

 여든한 살 자의식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노인 여성 엄마를 보면서 정신은 말짱한 채 몸이 병들고 고통스러운 것과 치매라 부르는 인지기능 저하로 정신 줄을 놓았으나 신체 활력은 여전한 것 중 무엇이 더 고통일까 종종 생각한다. 

 요즘 엄마는 자주 집안 여기저기를 정리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정리에 쓰려는 거처럼 베란다 창고와 부엌의 찬장과 안방의 장롱을 열어 오래된, 쓰지 않는 그릇이거나 양푼들, 김치통과 세트로 사놓은 냄비와 프라이팬들, 뭔가 애매하게 고장인 듯 고장이 아닌 것 같은 낡은 소형 가전들과 옷들을 하루에 하나둘씩 분리수거하고 폐기물 신고처리를 내게 부탁한다. 그러면서 버릴 수 없는 자신의 육신을 허망해한다. 

 아무리 잘난 인간도 늙음은 비껴갈 수 없고 시간의 질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자비롭지 않다. 이 잔인한 우주의 질서가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치는 걸까. 늙음은 어느 순간 왔다가 단번에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몸은 서서히 시들어 망가지고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늙음과 죽음은 단계별로 찾아온다. 누구나 예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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