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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Apr 14. 2022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채워야 할 것

필러 플라워

  올해 들어서 새롭게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랜선 지인들과 우리 고전을 매월 한 권씩 선정해서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다. 혼자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친구들 덕분에 매달 숙제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고, 고전에 담긴 다양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총 3권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책은 정약용 선생님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를 떠난 뒤 아들, 형님, 제자들에게 깊은 속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들이다. 폐족(죄를 지어서 벼슬이나 출셋길이 막힌 집안)이 된 불우한 신세의 아들들이 걱정스럽지만, 자식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학문에 정진하여 지혜를 쌓을 수 있도록 권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이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정약용 선생님은 어린 나이에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조선 후기 최고의 수재로 유명하다. 그는 비록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고 오랜 기간 귀양 살이를 했지만, 유배지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학문의 의미를 깨우치는 시간이 오히려 화려했던 젊은 시절보다 더 의미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자신이 과거 급제 후 나랏일로 바쁘다 보니 독서에 전념할 수 없었고, 스스로가 지은 시나 문장은 과거 시험 답안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못하고, 좋을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기에 자식들에게는 과거 시험의 제약 없이 참다운 공부길을 걷길 조언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부모로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공부법을 권해야 할지 고민이 돼서 독서모임 친구들의 의견을 구했다.



효율적인 학습
vs
깊이 있는 탐구



  “중고등학교에 가면 시험 대비 위주의 학습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책 한 권을 제대로 볼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만약 내 아이가 시험 대비를 하며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제대로 이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부모로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내 질문에 독서모임 친구 중 하나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효율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엄마가 아이와 함께 정한 것일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큰 착각 속에 빠져있었고, 내가 만든 질문 안에서도 나의 편협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버렸다.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 한번 잘 보는 것과 나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 이 둘 중에서 어떤 자세가 아이의 인생을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갈지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내 생각이 옳고 내 계획대로 해야 아이가 더 빠르고 쉽게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친구의 질문이 내 생각의 범위를 좀 더 넓혀주었다.


  “당대 최고의 천재 아빠 밑에서 자란 아들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빠의 조언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요?”


  억울하게 귀향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이지만, 자식들 입장에서는 그 탓에 출세길이 아예 막혀버렸으니 속상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양용 선생님께서는 대쪽같이 근엄한 조선 시대의 아버지답게 자식들에게 독서에 힘쓰고 아버지의 글을 세상에 전할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시대의 분위기와 정황 상 그들에게는 선택의 길이 별달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요즘의 세상에는 다양한 기회가 열려있다. 그런데 나는 내 생각만으로 아이에게 길을 제시하고, 나의 잣대로 아이를 평가하려 들곤 한다. 심지어 내가 천재도 아니면서, 아이보다 고작 30년 먼저 세상을 경험해봤다는 이유로 이래서 될 일인가 싶다.


  독서 모임을 하고 나니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그래서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복의 중심에 아이가 아니라 엄마인 나를 세워두었던 건 아닐까? 나의 성장 배경과 생활환경 안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틀에 갇혀서 아이를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다. 아이의 인생을 논할 때만큼은 아이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꽃 장식을 할 때는 각 화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잘 고려해야 한다. 어떤 꽃을 주 화재로 할지 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부화재를 선택해야 잘 어우러진 꽃 장식을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될 꽃이 돋보이게끔 도와주는 조연이 되는 꽃을 필러 플라워라고 부른다. 영어로 채우다(fill)라는 말에서 와서, 필러(filler) 플라워는 꽃과 꽃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주 화재로 쓰이는 얼굴이 큰 꽃들과는 달리 잔잔한 꽃들로 이루어진 화재를 필러 플라워라고 부른다.


  부모의 역할 또한 필러 플라워와 유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필러 플라워 역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서 빛을 발할 때도 있다. 꽃이야 종류를 막론하고 다 아름답고 예쁘니까…. 하지만 중심 꽃과는 다르게 필러 플라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꽃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일을 내가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날은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야 하기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인공 곁에서 매력 있는 배경이 되어주는 필러 꽃처럼 말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아름답게 빛날 수도 있지만…


화려한 중심 꽃들을 더 빛나게 해줄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있는 듯 없는 듯 주위를 배회하기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내 역할을 바꿀 줄 아는 잔잔한 꽃들처럼, 나도 그렇게 잔잔하고 은은하게 아이의 주위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틀을 깨버리고, 그 안에 살랑이는 작은 꽃들을 가득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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