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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Feb 03. 2022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샤스타 데이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면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신발을 내 것인 줄 착각하고 그 신발을 덥석 집어 나의 두 발 앞에 내려둔다. 하지만 그 신발에 한쪽 발만 넣어봐도 이내 깨닫게 된다. 그 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같은 신발이더라도, 심지어 사이즈가 동일하더라도 내 발에 길들여지지 않은 신발은 잠시만 발에 닿아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 발과 하나가 되어 내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온 신발이기 때문에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내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영미권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라는 의미의 관용구로 ‘in one’s shoes’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고 한다. 이 표현이 활용된 서양 속담으로 아래와 같은 말도 있다.



Don’t judge a man
until you have walked
in his shoes.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직접 경험해보기 이전까지 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그렇다. 눈으로 보기에는 같은 신발처럼 보이지만 내 발이 그것을 체험해봤을 때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래서 남의 처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데 살면서 나는 참 여러 번 그런 실수를 범하곤 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그랬던 것 같다. 내게는 부모로서의 삶이 지금껏 한 번도 내가 신어보지 못한 새 신발 같다. 갓난아이의 엄마, 유치원 꼬마의 엄마, 처음 학부형이 된 엄마, 사춘기 아이를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한 엄마. 이 모든 엄마 체험이 나에게는 새로운 스타일의 각기 다른 신발과 같다. 심지어 그 신발은 편안한 운동화가 아니라 걷기 힘든 높은 하이힐처럼 느껴졌다.


  이웃집 엄마는 뾰족구두를 신고 아이 손을 잡은 채 우아하게 워킹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밤이면 다 까져서 쓰라린 내 발뒤꿈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있을까? 남들은 육아는 물론이고 커리어 유지에 자기 계발까지 야무지게 다 해내고 있는데, 나만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어디 가서 힘들다고 하소연하자니, 남들도 다 키우는 아이인데 혼자 유난 떠는 것 같아 속시원히 말 꺼내기 힘들었다. 원래 아이를 뱃속에 품는 순간부터 모성애가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와 엄마라는 사람은 모든 걸 다 이겨내는 게 정상인 것 같은데, 내 몸에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혼자 자괴감에 빠져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불현듯 오래전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타공인 멋진 엄마이자 살림꾼이셨던 우리 엄마는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아침이면 두 아이의 도시락을 싸 두고 아침잠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어하는 사춘기 남매를 깨우느라 고군분투하셨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어느 날 갑자기 돌쟁이 아기를 안고 생전 살아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이사를 가셨다. 그곳에서 엄마는 두 살 터울의 남매를 데리고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매일 남편 밥상을 정성스레 차려주신 분이셨다. 엄마는 가족들 돌보는 일에만 정성을 들이신 게 아니라, 늘 집안을 깔끔하게 치워두셔서 우리 집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 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매사를 능숙하게 해내는 분이셨다. 살림과 육아에 있어서 한 번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엄마 밑에서 자라서일까, 나는 주부와 엄마로서의 역할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늘 강인해 보이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시던 엄마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처음 본 건 내가 중3 때였다. 그 당시 아빠는 해외 파견 중이셨다. 그래서 고3 수험생 오빠의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시간이면 엄마가 학교 앞으로 차를 끌고 가 오빠를 데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나는 그냥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와 오빠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초인종 소리가 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엄마는 없고 오빠만 현관문 앞에 서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빠를 데리러 가는 도중 엄마가 접촉 사고를 냈는데 상황 수습이 빨리 되지 않아 엄마가 급하게 이웃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오빠만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엄마의 목소리를 당장 들을 수는 없었지만 오빠한테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엄마의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날 사고로 상대방 차는 폐차시킬 상황이 돼서 엄마는 많이 놀라셨다. 게다가 상대방 차가 역주행 방향으로 불법 주차를 해둔 상태여서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했다. 엄마는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사고 수습을 하기 위해 보험 회사에 여러 차례 통화를 하고, 경찰 조사에 진술하는 등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을 처리하셨다. 그렇게 힘든 상황을 보내다가 아빠와 국제 전화를 하게 된 날, 엄마는 수화기를 붙들고 엉엉 우셨다. 늘 씩씩한 엄마라서 처음 겪는 힘든 상황도 거뜬히 이겨내고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차마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못했던 고충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 모양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강인한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는 타고난 모성애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자식을 위해 참고 노력한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는 이렇게 뻔한 세상의 이치를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중3 때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때도 이런 깨달음은 없었다. 한 번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중3 아이가 엄마 역할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당시 엄마의 눈물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파온다. 왜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엄마는 무조건 강해야 하고, 왜 엄마는 뭐든 다 참고 이겨내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안 보는 곳에서 조용히 흘렸을 엄마의 엄청난 눈물을 생각하니 참 죄송하다. 그리고 그 힘든 엄마 역할을 멋지게 해낸 우리 엄마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하다.


  지난봄 딸아이와 둘이 떠난 여행길에서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예쁜 들꽃을 만났다. 길 양쪽에 나란히 줄지어 서서 우리 모녀를 반갑게 맞아주는 기분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꽃 검색을 해봤다.


샤스타 데이지
꽃말 : 만사를 인내하다.

 

  샤스타 데이지의 꽃말을 보니 갑작스레  친정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라고 무조건 강인하고 아름다운 모성애를 보여주는  아니듯, 꽃이라고 당연히 예쁘게 활짝 피어야 하는  아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시간, 줄기가 자라 꽃망울을 올리고 꽃잎을 활짝 기까지 얼마나 많이 견디고 애썼겠는가? 이렇듯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결말은 당연한  아니다. 수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빚어낸 결과다. 나는  앞으로 지금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엄마 체험을 하게  것이다. 사춘기의 절정을 맞이한 아이의 엄마,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는 엄마,   성인 자녀를  밖에 내보내고 노심초사 걱정하는 엄마, 자녀를 독립시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엄마. 앞으로 경험하게  다양한 엄마 역할이 처음부터 내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신발을 신으면 그게  발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많은 발걸음이 필요했던 것처럼 새로운 역할은  내게 인내의 과정을 요할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능숙하게 해내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지는 말자.  신발이 마치  발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드는 그날까지 참고 걷다 보면 나의 모성애도 아름답게 빛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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