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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Dec 30. 2021

하늘나라에서 입금된 용돈

스타티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6년 반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하늘나라에서 내게 용돈을 보내주신다. 마치 크리스마스 날 아침 트리 밑에 과연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트리 앞에 다가가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12월 25일이면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은행 계좌를 확인해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타 엄마는 빨간 양말 속에 용돈 봉투를 넣어 주시 듯 내 계좌로 돈을 보내주셨다.

 

  야무지게 재테크를 잘 못 하던 나는 휴면 계좌 관리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3년 전 겨울날, 갑자기 엄마가 오래전에 만들어주셨던 주택청약 통장이 생각났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엄마가 이다음에 집 장만할 때 쓰라고 만들어주신 통장이었다. 살다 보니 나는 신축 아파트 청약을 넣어볼 기회는 없었고, 오래된 아파트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만들어주신 청약통장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몇 년을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나는 그 통장을 떠올리게 됐다. 오랫동안 묵혀뒀던 청약통장에 돈이 잘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한참에 걸쳐 은행 홈페이지 비밀번호를 찾아 힘겹게 로그인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청약통장에 돈이 잘 보관되어 있던 것은 물론이고, 그 옆에 있던 안 쓰던 일반 계좌에 돈이 꽤 들어있었다. 입금내역 조회를 해보니 청약통장에 대한 이자가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반 계좌에 입금되어 쌓여있었다. 갑자기 공돈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나는 또 다른 이유로 흥분했다. 그 돈은 마치 천국에서 내려온 엄마의 용돈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기도 어쩜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자가 들어오는지...


  엄마의 의도는 나의 집 장만에 도움을 주시려 했던 거지, 이렇게 내가 연말마다 엄마를 추억하라고 만들어주신 통장은 아니었을 텐데...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후로 나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하늘에 있는 엄마랑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마구 설레고 좋다. 올해는 기준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그만큼 이자 금액도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통장에 찍힌 숫자의 크기보다도 엄마의 용돈을 올해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게는 연말의 기쁨이다. 당장 크리스마스에 만날 수 없어도 엄마가 바다 건너 해외 어디쯤에는 살아계신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우리 엄마는 살아생전에 늘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고, 내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가득 채워주신 분이셨다.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면 항상 친구들이 내 도시락 반찬을 부러워할 만큼, 매일 반복되는 도시락 싸는 일에도 엄마는 정성을 듬뿍 담아주시곤 했다. 지금은 비록 엄마가 곁에 안 계시지만, 나는 엄마한테 받은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매일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거로도 모자라서 돌아가신 이후에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내게 용돈을 보내주신다. 신랑 눈치 보지 말고 연말에는 너 갖고 싶은 거 작은 거라도 하나 사라며, 딸한테 비자금을 쥐어주시는 것 같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우리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니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스타티스가 떠오른다. 꽃집에는 흰색, 노란색, 핑크색  다양한 색깔의 스타티스가 있지만 나는 종종 보라색 스타티스를  오곤 한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세련된 외모를 갖춘 엄마한테 보라색 옷이   어울렸던 기억에 나도 모르게 보라색 꽃에 손길이 가는  같다. 얇은 종이처럼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드는 스타티스 꽃잎은  신기하게도 쉽게 바스러질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꽃은 드라이플라워로 자주 쓰이는데, 꽃을 말려서  달을 두고 감상할  있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오랜 기간 유지한다. 마치 강인한 모성애처럼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온갖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 스타티스 꽃잎과  닮았다. 그래서 스타티스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인가 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엄마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며 다짐해본다. 내가 엄마한테 받은 커다란 사랑을 내 아이에게도 꼭 전해주어야겠다고... 아이의 마음에 엄마의 사랑을 가득 저축해주어야겠다. 그 사랑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크게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아이한테 큰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 해도 넘치는 사랑과 그 사랑에 이자까지 붙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날과 크리스마스에는 꼭 선물이 전달될 수 있도록 괜찮은 금융 상품도 알아봐야겠다.


  "엄마, 고마워요. 제게 영원한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제 딸에게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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