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손과 황금손
똥손과 황금 손-난 별종인가 엄마가 특이한가, 지금까지도 납득불가.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이런 말을 입에 조차 올리지 않았다. 살기가 갑갑하네 뭐 먹고 살아야하지.
지금은 입만 열면 일은 해야 하는데 어디서 일을 하지 이 나이에 오라는 대는 없고 매월 내야 하는 고지서는 변함없이 내 얼굴 앞에 뒤 밀고 . . . . 엄마가 보고 싶다. 아니, 황금손을 빌리고 싶다.
한 두달 전교육 신청 한 것을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 스마트 폰에 문자가 찍혔다. " 감정노동 교육 & 힐링 마크라메화분걸이 만들기 프로그램" 참여 하란다.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마침 시간도 맞고 해서 프로그램에 참여 했다. 서양 매듭 마크라메를 보여 주는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실기의 경우는 강사의 지도에 따라 손과 머리를 동시에 빨리 빨리 잘 움직여야 한다. 강사 " 매듭묶은 위를 풀고 가지런히 흔들어서 꼬인 부분 풀어 주세요, 매듭 한 가락으로 U자 모량을 만들고 남은 긴 줄로 7번만 꽁꽁(칭칭)돌려 주세요. 동그라미를 만들어 사이로 넣고 위에서 힘껏 당겨 주세요. 위에 남은실과 아래에 남은 실을 가위로 짤라서 보이지 않게 하고 끝은 가위 끝으로 밀어서 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강사가 내 자리로 와서 시연을 해 준다. 알겠다. 강사가 돌아서 다른 자리 가기도 전에 모르겠다. 4는 만들어 교차되며 그 자리에서 밑으로 넣고 잡아 당기고 반대쪽을 하라고 한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나도 이제 제법 용감해져 지고 있다. 몇번이고 용기를 내어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 쪽하고 나면 또 잊어 버린다. 분명 이해는 되는데 손이 말을 안 듣는다.
엄마가 한 말을 강사도 똑같이 한다. "왼쪽은 괜찮은데 오른쪽 방향이 자꾸 틀리네요. 네 왼손잡이라서요, 아 그래서 힘이 없고 손이 어색하군요. 네 그럼 오른손으로 하는 연습을 많이 할까요. " 엄마가 틀린게 아니구나, 오른손을 시작으로 해야 하는데 왼손으로 시작하니 아래외 위가 반대 모양이 나와 엄마도 가르쳐 주면서도 기분이 안 좋았구나. 손도 느리고 솜씨도 없고 왼손 방향으로 해서 뜨게질(코바늘, 대바늘뜨기), 수 놓기 등. 가르쳐 주는 사람도 배우는 서로 힘들었다. 아무리 가르쳐 줘도 잘 따라 오지 못하면 엄마는 답답해서 내 자수며 대바늘을 대신 해 버렸다. 그런 날은 풀이 죽어 있거나 반대로 엄마에게 빡빡 기어 오르며 " 엄마는 어른이니까? 잘 할 수 밖에 없잖아, 난 아직 어리고, 엄마가 나에게 잘 가르쳐 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엉터리로 가르쳐 주니까 그렇지" 나 대신 열심히 놀리고 있든 바느질 감을 획 던지고 " 너 마음대로 해, 숙제를 해 가지고 가든지, 말든지" 엄마는 엄마대로 골이 나고 나는 나대로 골이 나서 바느질 감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내 방으로 확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 때부터 서러워 눈물반 콧물 반 울다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가방을 챙겨 보면 판매 해도 될 만큼 잘 만든 완성된 작품이 들어 있다.
엄마는 그 당시에 일로 화가 날 때만 화를 내고 그 다음에는 그 일을 들추 내거나 뒤집는 성격은 아니다. 밤새 시간을 들여 만든 완성품을 가방 안에 넣어 놓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와 나에게는 어제도 그 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만 있을 뿐이다. 그 전에도 엄마는 왼손잡이 솜씨없는 똥손의 딸로 인해 불 같이 화를 내고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들다가 내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다가 잠이 들면 엄마는 혼자서 조용히 완성품을 만들어 가방에 넣어 두었다.
오늘 마크라메 화분걸이 만들기를 하는 도중에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의 황금손길을 느끼고 싶어진다. 엄마를 잠시라도 소환해 보고 싶다. 어떤 가수의 노래가사처럼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 처럼"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이북 만두 만들기, 빈대떡, 바느질, 공예 등. 좀 배워 두었다면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기에 실기 강사로 각광을 받고 다닐 수 있다. 무식한 똥고집으로 여자가 솜씨가 좋으면 고생문이 훤하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고생안 하고 잘 살거다. 끝까지 무식하게 배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림 솜씨, 음씨 솜씨, 노래 솜씨, 공예 만들기 등. 하나 같이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두 여인 천하 사이에서 아버지는 이쪽 편도 저쪽 편도 못 들고 눈치를 많이 보았다. 평상시에 아버지가 했든 말이 있다. " 정이야 엄마처럼 일은 안해도 배워 놓으면 손해는 안 본다. 시간 날 때 배워 둬라."
한번씩 후회가 된다. 아니 자주 후회를 하고 있다. 음식 장사, 공방이라도 할 수 있는데. 무슨 똥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하여간 나는 똥손이네. 누구는 금손인데, 난 똥손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코에 내가 걸렸다.
엄마 금손 덕분에 우리가 배 곯지 않고 밥도 먹고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바느질, 완구, 음식장사, 여자로서 안 해 본것 없이 다 하며 우리 삼남매를 키웠다. 지금이라도 소환한 엄마가 내 앞에 있다면 울며 애원하며 고집도 안 부리고 가르쳐 주면 머리를 풀 가동하며 베워 보련다. 엄마는 학교 방과 후, 특할시간에 사용 할 준비물을 일일이 낱개 포장까지 하며 학교에도 납품도 했다.
화분 걸이 하나 만드는데도 목이 뻐근 거리며 뻣뻣함을 느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살아야지.
고마워 엄마, 보고싶네 금손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