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함 소망과 고통의 노랑-노랑이 어때서
노랑을 좋아하는 사람들
생후 3개월 된 아기는 빨강색과 노랑색 등을 좋아하며 특히 밝은 노랑색을 좋아한다. 아기의 안전을 위해 노랑으로 완전무장의 겹겹히 비오는 날은 특히 노랑장화, 노랑우산, 노랑색 가방비닐, 노랑모자 심지어는 팬시 제품 까지도 노랑색 일색이다. 어린이 집 앞을 지날 때 건물만 보아도 그 곳이 어린이 집인지 담박에 알 수 있다. 아기들이 자라서 어린 아이가 되면 노란색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줄어 들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들도 노랑색이 유치하다는 생각을 한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자주, 주황 순으로 좋아하고 어른이 되면 파랑, 빨강, 초록, 보라, 주황, 노랑 이 된다. 노란색을 좋아한 사람은 그 만큼 갓난 아기처럼 순수한 시절에 좋아했던 색이다. 노랑은 사랑과 지혜 창조 그리고 결혼식, 약혼식 등 축제와 행복에 의 초대 를 받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성인들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후광으로 노랑색을 채워 넣었다. 성인을 그릴 때 항상 노랑색인 황금빛으로 그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해 볼까? 노랑은 지성과 지식, 행복을 상징하는 색이다. 노랑은 젊은 층보다 노년층에 인기가 더 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뺍는다는 말도 있다.
노랑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표정 또한 여러 감정을 표현해 내는 마술사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 토크, 인터뷰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옷 차림을 보면 오늘은 깨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얼마든지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무언의 표시도 연예인들의 노랑색 의상에서 엿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노랑색이 남들에게 억지 웃음을 주며 비냥거림을 당하는 색은 아니며 왕족, 황가의 색이며 귀족의 색이기도 하다. 상황에 다른 연출에서 노랑색은 명도가 고명도에서 중명도로 넓은 면적을 차지 하므로 확대하거나 과대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절한 소망과 고통의 색
원기 왕성한 젊음과 활력을 상징하는 노랑이지만 영화 나 회화 속에서의 노랑의 상징하는 이미지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노랑색 하면 단순하고 아직도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 소년 소녀 같지만 그 안에는 말 못하는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바라기는 누가 보아도 노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황색혁명 당시의 코라손 아키노도 해바라기에 비유되곤 했었다. "해바라기" 하면 동명의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소피아 로렌 주연하고 빅토리오데 시카가 감독한 전쟁영화로, 행방불명 된 남편을 소피아 로렌은 찾아 가는 영화이다. 여행 도중 소피아 로렌이 우크라이나 지방의 광활한 해바라기 밭에 넋을 잃은 모습으로 망연학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상으로 비취지는 해바라기는 푸른 하늘과 대비 되어 온통 노랑색 천지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행방불명된 남편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초점없이 먼 곳을 응시한다. 나 역시 명화극장을 통해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넓은 해바라기 밭에 서 있던 소피아 로렌은 기억이 난다. 영화 속의 해바라기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그 어떤 말 보다도 몇 곱절 애절한 이별의 아픔이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드는 것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과 재회하지만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이제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에 더 비통해 한다.
노랑색은 불황이 없다.
초등학교 주변에서 종종 보는 일일지만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을 건너 갈 수 있도록 들어주는 깃발도 노랑색이며 교통안전 조끼도 노랑색이다. 불경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면 여기 저기 에서 바겐세일 할인 포스터를 내 붙이는데 대부분이 노랑색이다. 보행인의 시선을 끌어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도 노랑이 제일이다.
노랑은 멈추게 할 수 있고, 힘차게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색채이론에서도 검정바탕의 노랑색, 노랑색 바탕의 검정색은 명시성1 이다. 그래서 노랑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 제일 먼저 노랑색을 멀리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이다.
노랑은 눈에 띄는 데는 제일이지만 고급스러운 색은 아니다. 나라마다 색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있다.
중국은 노랑을 황금의 색이라고 해서 고급스럽게 여긴다. 노랑은 아니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블루는 신뢰 객관성의 의미가 아니라 여성이 블루데이라고 말을 하면 나 오늘 시간 있어, 같이 시간 보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고 한다.
노랑을 사랑하는 남자
오스트리아의 화가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비움가르텐에서 태어났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금세공사이며 판화가였지만 그리 성공하지는 못해 클림트의 어린시절은 가난하고 우울했다.
다른 화가들처럼 클림트 역시 1892년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으로 정신적인 동요를 겪으며 인상파와 상징주의 등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클림트의 작품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클림트도 노랑색, 황금색이 없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관능적인 작품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는 성과 사랑, 죽음에 대한 풍성하고 때로는 매혹적이며 애로틱함도 마음껏 느끼게 해 준 천재화가 이다.
노랑색 만이 줄 수 있는 관능적이라고 하지만 요염한 귀여움이 아닐까 한다.
클림트는 1918년 1월 11일 갑작스런 뇌출혈이 있은 후 같은 해 2월 6일 일련의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향년 56세였다. 노랑의 애절함과 작은 고통 속에서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