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톨프슈타이네
베를린은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작은 동판을 만날 수 있다.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발밑에서 반짝이는 빛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아래로 내려다보면 작은 정사각형 금속판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점검용 금속판인 줄 알았는데 글자를 보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모르는 독일어지만 허리를 숙여 읽어보게 된다.
"Hier Wohnte.......히어 보흔터......"
"음....여기 살았다. 그리고 이름이고, 년도...... 그다음은 뭐라고 적은 거지?"
혼자 걷다 자전거가 오는지 두리번거리며, 나는 한참 동안 그 작은 동편을 들여다봤다. 들여다봐도 알 수 없는 글자들에 결국 번역기를 켰다.
"아..... 추방되었다고? 유대인들의 기록인가?" 그제야 느낌이 왔다.
"역시...... 베를린의 흔적은 다르구나."
누군가의 집 앞, 길 한복판, 사람들의 발밑에서 베를린은 지금도 조용히 기억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작은 동판의 이름은 바로 슈톨프슈타이네(Stolpersteine)이다. 독일어를 직역하면 걸림돌이다. 나치에 의해 추방되고 살해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1992년 독일 쾰른에서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는 “한 사람의 이름이 다시 읽힐 때, 그 사람은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한 문장이 이 작은 돌들을 유럽 30개국, 10만 개의 거리로 퍼지게 했다.
사진 속 '걸림돌'에는 루스터 가족과 아이헨 가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살았던 프란치스카 루스터(결혼 전 성 실버만), 1884년생.
1943년 3월 20일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살해됨.”
“여기 살았던 하인츠 아이헨, 1917년생.
1939년 크라쿠프(폴란드)로 추방되어 살해됨.”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묵직하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무언가가 천천히 꿈틀거렸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지만, 삶 속에서 그 기억을 함께 어우르며 살아가는 베를린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잊힐만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기억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시간 내서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하루 중 집에서 잠시 잊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길을 걸을 때마다 다시 마주하게 된다. 기억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 있고, 그들은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그 모습이 마치 삶의 조화로움을 일깨워주는 교훈 같다. 역사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발밑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