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책장
독일에 도착해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간이 도서관'이었다. 대단한 걸 발견 한 것처럼 설레였지만, 막상 다가가 보니 모르는 독일어 책만 가득해서 조금 속상했었다.
사진에 보이는 보라색 박스로 설치된 것은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Offener Bücherschrank(오프너 뷔허슈랑크)", 거리의 간이 도서관'이다. 직역하면 ‘열린 책장’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가져가거나 넣을 수 있는 공유형 책장이다. 보통은 버려진 전화 부스, 목재 캐비닛, 철제 책장을 개조해서 공원, 버스정류장, 광장 등에 설치한다. 운영비가 들지 않고, 시민 자율 관리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런 '간이 도서관'은 길을 가다보면 구석구석 세워져 있다. 동네에 몇 개씩 설치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동네에 하나 씩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교가 있는 동네 간이 도서관이 제일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되고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 나는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보라색 책장 앞에 섰다. 자전거를 타고 온 한 이웃이 자신의 책을 꽂아 넣고, 다른 책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한참 동안 눈길을 끌었다.
책을 고른 그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괜히 멋져 보였다. 자신의 책을 공유하고, 또 이웃의 책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멋있게 느껴졌다.
또 어떤 날은, 집에 있는 책을 가득 들고 와서 도서관에 채워놓고 가는 풍경도 보았었다. 버리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힘을 쓴다는 건 그만큼 삶을 따뜻하게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인터넷으로도 쉽게 책을 빌릴 수 있고 무료나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동네 한가운데 ‘열린 책장’이 존재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깨에 힘을 주고 꼭 한 권이라도 빌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은 그림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 이름과 비슷한 단어가 써 있어서 “어? 뭐지?” 하고 손이 갔다. 막내의 이름은 헨젤의 스펠링에 U자만 추가하면 되기에 진짜 비슷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헨젤과 그레텔(Hänsel und Gretel)' 이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 동화책이지.”
그리고 독일어에서 ‘S’가 ‘즈’로 발음된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 헨젤을 'Hänsel'로 쓰는 거다.
가장 얇고 작은 책을 읽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는 자신감이 될 것 같았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맨 뒤쪽에 'Raclette & Co'라고 적힌 얇은 요리책도 먹어 본 음식이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책이라 글보다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부담 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끌레(Raclette)'는 스위스의 전통 치즈 요리다.
겨울이 시작되면, 유럽의 가정에서는 이 따뜻한 치즈 요리를 겨울 보양식처럼 즐긴다고 한다.
다음엔 맛있는 라끌레 이야기를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