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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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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11. 2022

발행도 야근도 미루고

소설 The Bankers_나초, 타코, 부리또 그리고 살사소스


We recommend a No-Go today.”

   


지난밤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기준 금리 인상에 대한 발언을 남긴 이후였다. 후폭풍은 거셌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도 아침부터 얼어붙었다.     



오늘은 수출입은행의 외화채 발행 예정일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다섯 개의 외국계 투자은행이 주관사로 선정되어 있었다. 오늘 아침의 Go/No Go Call 진행 담당은 씨티은행(Citi)이었다. 시장 상황에 관한 검토 발언이 끝나자마자 진행자인 씨티의  전무가 오늘 발행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었다.

     


음성으로만 진행되는 컨퍼런스 콜이었으나 모두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짧은 정적이 흘렀다. 발행을 미루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쌓이는 오더북(Order Book)의 양 차이가 난다. 때문에 기획재정부에서도 하루 정도는 더 준다. 주관사도 발행사도 웬만해서는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변경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오늘 시장 상황이 나쁘다.     



더구나 업계의 실력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씨티의  전무가 말하지 않는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의 한 증권사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거듭 갈아치우다가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수석 졸업했다고 들었다. 미국까지 간 김에 아쉽다고 하버드 로스쿨도 졸업하고 뉴욕 변호사 시험도 통과했다고 했다. 뉴욕의 로펌과 골드만삭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전무를 씨티 서울사무소가 겨우 데려온 지 2년쯤 되었을 것이다. 원래는 부대표 자리를 제안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본인이 전무 직함을 원했다고 했다. 올해 쉰여덟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주관사들이 속속 동의하고 발행사인 수은 측에서도 결정을 내렸다. 결국, 오늘의 발행은 내일로 미뤄졌다. 시장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새벽 세 시 퇴근을 각오했던 우리는 한숨 돌리고 야근도 덩달아 내일로 미뤘다.    






“안 할 것 같았어. 요즘 시장이 왜 이 모양이냐. 나는 커피나 한잔 들고 올게.”



박 이사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최 대리와 둘이 남겨졌다. 최 대리가 나를 의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이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아침 일찍 63빌딩의 아쿠아리움으로 나섰던 날이. 이제 집으로 가자며 아이 손을 잡는데 최 대리와 마주쳤다. 그 옆에  전무가 있었다. 인사는 나누었다. 다른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당황하기도 했고, 아이가 떼쓰기 시작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주말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김 전무와 공생관계인 박 이사는 과연 모건스탠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 최 대리와  전무는 그날 아쿠아리움에 왜 같이 나타난 것인지. 엄청 물어보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들. 혹시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최 대리가 내 옆으로 의자를 밀고 와서는 소곤거렸다.     



“주말에 모건스탠리 친구를 만났는데요, 박 이사님이 안 간다고 말씀하셨대요. 그리고 혹시 점심에 약속 없으시면 저랑 나가실래요?”     



체면상 최 대리의 제안을 옳다구나 하며 덥석 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의 물음표 가득한 머릿속을 마치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이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걸어오는 센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때 박 이사가 커피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박 이사가 점심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최 대리와 나는 조용히 대화를 나눌 곳이 필요했다. 우리는 사무실 근처의 멕시칸 음식점에서 타코와 부리또를 포장해서 오기로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최 대리의 보폭에 맞춰 느긋한 척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윤이가 엄청 귀엽더라요.”

최 대리가 나초와 살사 소스를 먼저 꺼냈다.

“그날 말 잘 들었는데 하필 그때 심술을 좀 부렸어. 집에 갈 때쯤 되니까 피곤하고 배고팠나 봐.”      

코를 찌르는 매콤한 살사 소스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치킨 타코와 비프 부리또의 향기까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콜라에 얼음을 안 넣길 잘했다. 얼음이 녹으면 콜라 맛이 영 밍밍해진다.     






“궁금하셨죠?”

바사삭, 최 대리가 살사 소스를 듬뿍 찍어 나초를 먹으며 말했다.     

“응? 뭐가?”

사실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씨티의  전무, 저희 엄마예요.”     



“크흡”

빨대를 꽂아 콜라를 쭉 들이키던 참이었다. 콜라가 코로 넘어가는지 코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괜찮으세요?? 놀라셨죠. 죄송해요.”

최 대리가 얼른 휴지를 건네주었다.     

“어 괜찮아. 죄송하긴. 좀 놀라긴 했어. 뭐야, 너 뉴스에 나오는 낙하산이냐? 또 하나의 다이아 수저야?”

“아니에요. 하아. 얘기하려면 좀 길어요. 제가 주말 내내 고민해 봤어요. 부장님께 속을 털어놓을지 말지요.”

“야. 안 털어놔도 돼. 남의 무거운 이야기 내 속에 담는 거 싫어해. 내 인생도 충분히 무겁거든.”

이건 진심이었다.     



“제가 부장님이랑 밤낮으로 함께한 지 다섯 달 정도 되었잖아요. 저는 부장님이 형 같고 참 좋더라구요.”

훅 들어오네. 고백이야? 형이라고 불러도 돼. 근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냐?”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서요. 아, 그리고 전무가 엄마라는 건 아무도 몰라요.”

“알았어. 이런 건 소주 마시면서 하는 거 아니야? 어쨌든 대낮에 시작해보자.”     



최 대리가 부리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콜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어요. 아니, 뭐 좋고 말고 할 게 없었어요. 엄마는 본인 삶이 바빴거든요. 엄마 머릿속에 제가 어느 정도 들어있었는지 저는 모르죠. 저는 시터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그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가 아니라는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알았어요. 그때 엄마가 미국 간다고 할머니를 잘랐거든요.”

“그랬구나. 아빠는?”

“저희 아빠도 나름 유명한 사람이래요. 늘 바빴죠.”     



언젠가  전무 관련 기사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남편은 경제학자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워싱턴 D.C.의 IMF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키운다고 했었는데. 그 아들이 여기 있었구나.

  


“미국에서도 시터 손에 자랐어요. 거기서도 엄마는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빴어요. 아빠는 미국에 살긴 했는데 일 때문에 다른 곳에 있었어요. 한 달에 두세 번 만났죠. 그래도 미국에서는 가끔 가족 여행도 가고 그랬어요.”



가족 여행. 나도 그랬다. 미국 살 때 간 기억밖에 없다. 올랜도의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날 좋았는데. 한 번은 배를 타고 멕시코에 갔었다. 엄마가 비싼 크루즈선이라고 했다. 나는 토했던 기억만 난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이렇게 많은데 도대체 왜 이곳에 살 때는 가족 여행 한번 못 가봤을까.      



“좀 크고 나니 엄마에게 화가 나서 감정 조절이 잘 안 됐어요. 엄마의 삶에서 내가 짐 같았거든요. 엄마는 본인 공부, 본인 경력이 중요했으니까요. 그래서 10학년 올라갈 때 아빠에게 가서 살겠다고 했어요.

“야, 먹어가면서 말해.”

나는 바지에 흘러버린 시뻘건 소스를 물티슈로 닦았다.     



“10학년이면 다 컸잖아요. 엄마 품에 있을 때도 별건 없었지만…. 제가 계속 조르니 아빠랑 살도록 해 줬어요.”

“좀 더 안정감을 찾았어?”

“그런 것 같았는데…. 충격을 받았죠.”

“왜?”

“아빠에게 엄마가 모르는 여자가 있었어요.”

“그랬구나….”     



나는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럴 때는 그냥 들어주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전학생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직한 사람도 그래. 요즘 나는 자꾸 머리가 빠져.”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해보려고 한 말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하루는 배가 너무 아팠어요. 선생에게 잘 얘기하고 일찍 집으로 왔어요. 아빠는 회의가 많아서 전화를 못 받을 때도 많다고 대충 둘러댔더니 보내주더라구요. 침대에 누워 이어폰 꽂고 노래듣고 있었죠.”     



최 대리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타코도 콜라도 다 먹었다. 남은 나초를 내가 다 먹어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얼마 후에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났어요. 누가 왔나 싶어서 나가봤어요.”

“그랬더니?”

“회의 중일 거라고 믿었던 아빠가 양말, 바지, 허리띠에 셔츠까지 다 벗어던지고 어떤 여자랑 소파 위에서 정신없이 섹스하고 있었어요. 제가 멍하게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래에 깔려있던 여자가 저를 발견하고는 소리 지르고, 허겁지겁 옷 찾고…. 난리였죠.”     



최 대리는 그의 삼선 슬리퍼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자는 급히 사라졌고 아빠는 한마디만 했어요.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아, 엄마도 아빠도 다 싫었어요. 그래서 대학은 홍콩으로 갔어요. 아는 사람 없는 곳,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서 살고 싶었거든요. 부모님은 둘 다 제게 아무런 말을 못 하더라구요.”     






최 대리는 홍콩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홍콩에 있는 투자은행에서 퀀트(Quant) 관련 인턴을 하다가 서울넘어왔다. DCM의 정규직 채용 공고를 보았고, 오랜만에 서울로 돌아오고 싶기도 했다고. 나는 퀀트가 더 잘 벌 테니 다시 바꿔보라고 가끔 말했다. 우리는 드래곤스 백(Dragon's Back)을 하이킹한 일이나 탄탄면 맛집을 찾으러 다녔던 홍콩의 추억을 나누곤 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엄마랑 같은 업계를 선택했어?”

“투자은행은…. 그러게요. 부모님이랑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공대에 갔는데 결국 투자은행으로 왔네요. 근데 엄마가 서울로 돌아올지는, DCM으로 올지는 정말 몰랐어요. 대학 휴학하고 입대한다고 한국 왔을 때도 아무도 안 왔었거든요.”

“준우야. 너 많이 외로웠겠다.”     



아주 잠깐, 최 대리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다.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좋은 모습. 노력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그렇게 엄마는 갑자기 나타나서 요즘 저보고 미안하다고 해요. 왜 사람이 바뀌었는지,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따로 살아요. 처음에는 안 만났어요. 이제 와서 뭐 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2주에 한 번만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해요. 제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걸 말해보래요. 밥만 먹으러 다니다가 지난 주말에 처음 아쿠아리움에 가봤어요. 친구들이 다녀왔다고 하면 부러웠거든요.”     



사람이 바뀌었는지.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이 말이 날아와서 박혔다.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된다.   



저는 그날 다윤이가 부러웠어요. 엄마나 아빠 손 잡고 아쿠아리움에 놀러 가기. 저도 다윤이처럼 평범하게 자라고 싶었는데….”  



세 개 남은 나초는 최 대리 먹으라고 남겨두었다.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인물과 사건,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IMF는 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 DCM은 Debt Capital Markets‧채권자본시장 부서의 약자입니다.

사진은 Pexels에서 검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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